Medical : 우리들의 일상생활, 주변 속에서 다양한 질병, 의학 정보를 만나보세요.
상세페이지
[책과 감염병] 연애소설 읽는 노인

 

 

치과의사들에게 추천하는 책


이 책은 치과의사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인류에겐 이 저린 오랜 역사가 있다는데 첫 페이지부터 치과의사가 나온다. 기이한 방법으로 구강 마취하는 법, 생니를 빼달라고 내기 거는 사람과 협상하는 법(금이 생긴다), 1년에 배가 두 번 들어가는 밀림에 진료소 차리는 법, 기성복처럼 이미 만들어진 틀니를 입에 맞게 골라주는 법이 있다. 구강 소독은 언제나 술이고 입에 맞는 틀니는 형편에 맞게 고르게 한다. 꽉 끼는 것 같아 입을 다물 수 없다고 하면 까탈스럽다고 하고, 너무 헐거워 재채기할 때 튀어나올 것 같다고 하면 감기에 걸리지 말라고 한다. 아프다고 기를 쓰는 환자에게는 “젠장, 가만 있지 못해! 이 손을 떼란 말이야. 아프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이게 다 누구 탓인데? 생각해봐. 아픈 게 내 잘못이야? 천만에! 이렇게 이가 썩고 아픈 것은 내가 아니라 이놈의 정부 탓이라고! 내 말 알아듣겠어?”라며 모든 허물을 정부에 돌린다. 한데 이 욕쟁이 치과의사를 사람들은 손꼽아 기다린다.


이 책은 또 뭐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는 초보 독자에게도 적당하다. 일흔 넘은 노인이 대통령 선거의 투표 용지를 읽게 되면서 자신이 글자를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읽을 것이 없는 밀림에서 읽을 거리를 찾기 시작한다. 신부님이 졸다가 떨어뜨린 책을 슬며시 주워 읽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성프란체스코 성인에 대해 얘기해주는 신부님께 “신부님은 그런 걸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묻자 “책을 읽었으니까”라고 대답한다. 그러고는 “세상에는 수백, 아니 수천만 권의 책이 있고 그 책들은 이 세상의 모든 말과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라고 덧붙인다.


예를 들면, 모험에 관한 것이나 과학에 관한 것이나 기술에 관한 것이나 사랑에 관한 것. 노인은 또 묻는다. “사랑에 관한 책은 어떤 것입니까?” 신부는 곤란한 듯 답한다. “그 책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게 유감일세. 이른바 연애소설이라곤 겨우 두 권밖에 읽지 못했거든.” 노인은 간절하게 요청한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무슨 내용이었습니까?” 신부는 “그러니까 말이지….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 사랑하고, 나중에는 그들의 행복을 가로막는 숱한 어려움을 헤쳐나간다는 이야기라네”라고 말한다. 아, 노인은 책 한 권 갖지 못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책을 구하자.

 


약이 되는 이야기 책


이 책은 밀림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데도 유익하다. 보아뱀에게 먹히지 말아야 하고, 살쾡이 가족은 건드리면 안 된다. 호기심 많은 원숭이와 박쥐 똥을 피하는 법을 배워야 똥 세례를 피할 수 있다. 우기에 걷는 법은 평소와 다르다. 무기 없이 원숭이와 앵무새를 생포하는 법도 있다. 기발하다. 이 방법으로 뱃삯을 마련한다. 순식간에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는 아마존의 장례는 예측불허다. 인생의 허무와 감탄을 자아낸다. 밀림에서는 말라리아로 사망하기 쉽다는 것도 알고, 그때의 고열이 뼈를 깎는 통증으로 느껴질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노인이 보기에 ‘늙어감’은 고독한 짐승에게 사로잡히는 일이다. 그때의 해독제는 연애소설이다. 200쪽도 안 되는 책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이야기는 인생을 살 만하게 한다. 사람들은 왜 이야기에 몰두하는 것일까? 사람들의 이야기는 왜 끝이 없는가에 대해 이 책만큼 유쾌한 답을 제시하는 것도 없을 듯하다.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는 2020년 4월에 스페인에서 코로나19로 사망했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초기이고 당시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대유행이 있었다. 1949년에 태어나 71세였으니 심한 폐렴이 왔다면 피해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2년 3월엔 국내에서만 하루 확진자 30만 명이 연일 넘어섰다. 저문 인생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에게는 힘없이 스러지는 달이 되었다. 그나마도 세 번이나 되는 백신 접종에 이 정도라는데 초점 잃은 눈빛을 보면 마음이 아리다.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육체에 진한 고독이 느껴진다.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가야 하는 육체인지라 집중 치료는 무의미한 고통에 욕심인 경우가 태반이지만, 참으로 많은 노인이 돌아가시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코로나19에 노인은 바람 앞의 등잔불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도 그렇게 갔다.


아마존의 노인은 늙어감의 고독을 연애소설을 읽으면서 상대하였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 중에도 책을 보는 분이 있다. 성경이 가장 많지만 무협지와 소설 등 각양각색이다. 환자들이 책을 읽고 있으면 회진 중에라도 꼭 물어본다. “그 책 뭐예요? 재미있나요?” 질병이라는 인생의 곤경에 이야기책이 약이 되기도 한다.

 

글 감염내과 최영화 교수
 

  • 글자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