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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감염병] 체호프 단편선

 

 

안톤 체호프는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원래는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개업까지 한 의사였다. 대학 때부터 글을 발표하다가 문필 생활에 전념해 작가로 활동하던 20여 년간 1,000여 편의 소설과 희곡을 발표했다.


그의 단편은 등장인물이 가난한 사람부터 귀족까지 다양하고, 직업도 각양각색이며, 이야기도 너무 많아 인생의 편린을 쉴 새 없이 적어내어 세상에 뿌린 듯하다. 우리나라에 체호프 전집이 있다면 1,000여 편의 이야기로 넉넉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선집뿐이다.


의뢰받은 원고를 쓰기 위해 짬을 내어 책을 펼쳐보니 이야기들이 팬데믹에 비추어 다시 읽힌다.

 


우수(憂愁), 누구에게 내 슬픔을 이야기하랴?


마부 이오나는 아들이 죽은 지 일주일이 되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아들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아들이 어떻게 병에 걸렸고, 얼마나 괴로워했으며, 죽기 전에 무슨 말을 남겼고, 어떻게 죽었는지.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쌓이고 쌓여 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슬퍼하며 한숨 쉬고 통곡할 것이다. 그러나 손님들은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사람은 다 죽는데 뭐….”


코로나19로 폐렴이 심하면 호흡부전 때문에 기도에 관을 넣고 기계호흡을 시작한다. 기계호흡이 필요할 정도로 중증인 환자의 30~40%는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것이 코로나19다. 가족이 코로나19로 격리되어 치료를 받던 중 악화해 중환자실로 이송된 후 끝내 기계호흡까지 하게 된다면 이는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예고다. 환자도 보호자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하면 격리에서 죽음까지 대략 2~4주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다. 코로나19로 가족을 잃은 보호자들이 슬픔을 어떻게 나누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주대학교병원 집중치료실에서 최선의 치료를 받다가 돌아가셨다고, 여한이 없다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밤의 적(敵)


9월의 저녁, 그것도 9시가 지났는데 의사 키릴로프의 집에 왕진을 요청하는 젊은 귀족이 왔다. 그날은 의사의 외동아들이 디프테리아로 죽은 날이다. 이 병은 오늘날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누구나 맞는 소아 예방접종 때문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고 싶다. 운전 중 안전벨트를 매는 것처럼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시라. 백신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코로나19 교통사고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안전벨트다. 호흡기 전염병인 디프테리아였기에 하인들은 아침부터 집 밖으로 내보내고 오직 부인과 의사만 있다. 남자는 부인이 매우 위급해 마차를 가지고 왔다며 자신의 집에 가자고 한다. 의사는 도저히 왕진을 갈 수 없는 상황이다. “용서하세요. 나는 갈 수 없습니다…. 5분 전에 내 아들놈이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귀족은 사정한다. “나는 당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내가 이런 순간에 당신의 주의를 차지하려고 한다는 것이 나로서도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내가 누구에게 찾아가야 하겠는지. 당신 말고는 여기에 다른 의사가 없잖아요. 제발 가십시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사정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픈 것이 아닙니다!” 의사의 아들이 죽었다는데 계속 가자고 사정하는 이 귀족의 뻔뻔함이 얄밉다. 그렇지만 어쩌면 이 귀족의 모습은 내과도 아닌데 계속 전공의를 파견해달라고 요청하는 코로나19 진료팀의 모습일 수도 있다. 아, 슬프다. 우리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갑자기 필요해진 코로나19 중증환자 치료 병동에 얼마나 많은 인력이 필요한지 사전에 알고 팬데믹 현장에 투입된 의료인은 없을 것이다. 대개 집중치료실은 서서히 계획해 확장하고, 확장한 만큼 병상에 필요한 인력을 계산해 채용하고, 차출 후엔 교육해서 대응하는 방식이다. 집중치료실을 드나드는 의사는 위중한 환자를 보는 몇 개 과에 한정되어 있고, 대다수 임상과는 중환이 되면 그런 과로 옮겨 치료한다. 원천적으로 코로나19 중증 폐렴에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인력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에 의사만이 의사 노릇을 할 수 있으니 어찌할 것인가. 각 병원의 인력은 천차만별이고 병원 내부 사정에 따라 대응 인력이 다르다. 2년이 넘는 지금도 끝나지 않는 코로나19로 인한 긴 당직과 진료에도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과를 불문하고 응급 요청에 응해준 전공의들 덕분이다. 그들의 이름을 기록에 남겨 감사를 표한다(2020년 12월 18일부터 2021년 12월 12일까지).

 

 

 

 

글 감염내과 최영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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