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al : 우리들의 일상생활, 주변 속에서 다양한 질병, 의학 정보를 만나보세요.
상세페이지
[책과 감염병] 네메시스

 

 

책 속에 기록된 전염병 ‘폴리오’


사는 게 힘들다고 느껴질 때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제일은 ‘나보다 못한 사람도 많다’는 상대적 우월감을 북돋우는 일이다. 시간도 돈도 들지 않고 몸 쓸 일도 없이 마음만 조금 바꾸면 된다. 물론 유효기간이 짧다는 단점이 있다.


코로나19 중환자를 돌보는 나는 과거의 여러 유행을 생각하면서 그 병이 도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하며 지낸다. 어린아이에게는 코로나19가 경증이란 사실 때문이다. 나이 든 사람의 생명이 어린아이의 생명보다 가벼운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지만 아이들이 죽어가는 유행병이었다면 더욱 괴롭고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폴리오(예전 용어로 ‘소아마비’)의 교과서적 병명은 급성회색질척수염이다. 신경뉴런의 회색질에 급성으로 발생하는 염증이다. 대다수는 증상 없이 지나가고 일부는 경증으로 앓는데, 1% 이내의 환자에게 열이 나면서 감기나 장염처럼 시작해 마비가 일어나고 심할 경우는 호흡마비로 사망하는 병이다. 우리나라도 1960년대 초까지 매년 1,000~2,000명이 발생했고, 많은 부모가 아이의 팔다리가 마비되어 불구가 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1983년 5명의 환자가 보고된 후 새로운 환자가 발생했다는 보고가 없으며, 2000년 동아시아는 토착 폴리오 발생이 없는 지역으로 선언되었다.


주로 어린아이에게 문제가 되었던 폴리오 유행은 <네메시스>를 읽으면 알 수 있다. 이제는 고인이 된 미국 작가 필립 로스의 마지막 소설로, 2010년 작품이다. 시대적 배경은 폴리오 백신이 나오기 전인 1944년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발생한 폴리오 유행이 한창이던 때다. 미국은 1916년 대유행을 겪은 바 있다. 당시 미국 북서부 여러 주에서 폴리오가 유행하면서 감염 환자가 2만7천명 이상 발생했고 6,000명이 사망한 것이다. 이런 과거가 있는 상태에서 1944년 다시 유행이 시작되었을 때 부모들은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첫날 아침, 두 아이가 잠에서 깼을 때 열이 높고 목이 뻣뻣했다. 둘째 날 저녁 무렵엔 팔다리에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숨 쉬기도 힘들어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두 아이 모두 몸이 완전히 마비되었고 더는 혼자 힘으로 숨을 쉴 수 없어 철폐(원통형 금속 인공호흡기) 안에 들어가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이야기는 아이들을 돌보는 체육 교사의 과도한 자책으로 이어진다. ‘네메시스’는 분수를 넘어서는 모든 종류의 과도함을 응징하는 그리스 여신의 이름이다. 아마도 작가는 체육 교사가 폴리오에 감염되어 죽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자신의 잘못이라며 지나치게 자책하면서 스스로의 인생을 망가뜨렸다고 지적하는 것 같다.

 


폴리오 사망률을 낮춘 고무 주머니


나는 책의 주제보다 당시 사회상이 반가웠다. 폴리오 유행 시 얼마나 많은 혼란이 있었는지, 방역은 어땠는지 참고 자료로 소중해서다. 당국에서는 폴리오의 원인을 모르니 더러운 소와 감염된 우유 때문이라며 사용하는 모든 것을 살균하라 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오물과 흙과 쓰레기를 치우고, 방충망을 수리하고, ‘파리 잡기’ 캠페인을 벌이고, 병을 옮기는 파리를 파리채로 죽이라고 무료로 파리채를 나누어주었다.


환자가 발생한 집 앞에는 “뉴저지주 뉴어크 보건국. 접근 금지. 이 집에는 폴리오 환자가 있음. 보건국의 고립 및 격리 규칙이나 규제를 어기는 사람 또는 허가 없이 의도적으로 이 카드를 제거하거나 훼손하거나 차단하는 사람에게는 50달러의 벌금을 부과함”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졌다.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매일 새로운 환자의 수와 위치를 알려주었다. 놀이터가 폐쇄되고 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구역을 폐쇄하기도 했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면서 서서히 유행이 가라앉았다.


당시 방역 당국도 걱정거리가 많았을 것이다. 격리를 결정하면 얼마 동안 그 집을 격리한단 말인가? 문헌에서는 40일까지 격리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그렇게 격리를 하든 안 하든 발생률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가구 단위 격리가 중단되었다.


1952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폴리오 유행은 매우 유명하다. 평상시에는 연간 10명의 폴리오 환자가 입원했는데, 1952년 8월부터 12월까지 3,000명의 폴리오 환자가 발생하면서 하루 30~50명의 호흡마비 환자가 입원한 것이다. 철폐의 수도 턱없이 부족했지만 철폐에 넣더라도 사망률은 80%였다. 임기응변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할 때 마취과 의사 비외른 입센(Bjørn Ibsen)이 기관절개를 하고 절개 부위에 튜브를 넣는 방법을 제안하고 성공한다. 이 방법을 알게 되자 의대생들이 대규모로 동원되었다. 침대마다 의대생들이 옆에 서서 몇 초마다 한 번씩 고무 주머니를 눌렀다 뗐다 하며 튜브를 통해 어린 환자의 폐로 산소를 불어 넣는 동작을 6시간 동안 반복했다. 이런 일이 6개월 동안 지속되었는데, 1,500명이 넘는 의대생들이 16만5천 시간 이상 고무 주머니로 인공호흡을 시행한 덕에 폴리오 유행이 끝날 때쯤에는 사망률이 90%에서 25%로 줄었다. 다행히 다음 해에는 기계가 제작되었다. 고마운 인공호흡기.

 

 


4교대로 6시간 동안 고무 주머니를 눌렀다 떼었다 하며 산소를 주입했을 의대생들의 모습을 나는 능히 상상할 수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위출혈 환자의 위세척을 인턴들이 시간 맞춰 교대해가며 24시간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 연원이 이 코펜하겐의 의대생 인간 호흡기일까?


지금 코로나19 중환자실엔 인공호흡기도 있고, 고유량 비강 캐뉼러도 있고, 에크모(ECMO)도 있다. 의대생들은 다행인 줄 알라.

 

 

 

 


감염내과 최영화 교수

 

  • 글자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