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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감염병

    연애소설 읽는 노인

      치과의사들에게 추천하는 책이 책은 치과의사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인류에겐 이 저린 오랜 역사가 있다는데 첫 페이지부터 치과의사가 나온다. 기이한 방법으로 구강 마취하는 법, 생니를 빼달라고 내기 거는 사람과 협상하는 법(금이 생긴다), 1년에 배가 두 번 들어가는 밀림에 진료소 차리는 법, 기성복처럼 이미 만들어진 틀니를 입에 맞게 골라주는 법이 있다. 구강 소독은 언제나 술이고 입에 맞는 틀니는 형편에 맞게 고르게 한다. 꽉 끼는 것 같아 입을 다물 수 없다고 하면 까탈스럽다고 하고, 너무 헐거워 재채기할 때 튀어나올 것 같다고 하면 감기에 걸리지 말라고 한다. 아프다고 기를 쓰는 환자에게는 “젠장, 가만 있지 못해! 이 손을 떼란 말이야. 아프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이게 다 누구 탓인데? 생각해봐. 아픈 게 내 잘못이야? 천만에! 이렇게 이가 썩고 아픈 것은 내가 아니라 이놈의 정부 탓이라고! 내 말 알아듣겠어?”라며 모든 허물을 정부에 돌린다. 한데 이 욕쟁이 치과의사를 사람들은 손꼽아 기다린다.이 책은 또 뭐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는 초보 독자에게도 적당하다. 일흔 넘은 노인이 대통령 선거의 투표 용지를 읽게 되면서 자신이 글자를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읽을 것이 없는 밀림에서 읽을 거리를 찾기 시작한다. 신부님이 졸다가 떨어뜨린 책을 슬며시 주워 읽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성프란체스코 성인에 대해 얘기해주는 신부님께 “신부님은 그런 걸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묻자 “책을 읽었으니까”라고 대답한다. 그러고는 “세상에는 수백, 아니 수천만 권의 책이 있고 그 책들은 이 세상의 모든 말과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라고 덧붙인다. 예를 들면, 모험에 관한 것이나 과학에 관한 것이나 기술에 관한 것이나 사랑에 관한 것. 노인은 또 묻는다. “사랑에 관한 책은 어떤 것입니까?” 신부는 곤란한 듯 답한다. “그 책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게 유감일세. 이른바 연애소설이라곤 겨우 두 권밖에 읽지 못했거든.” 노인은 간절하게 요청한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무슨 내용이었습니까?” 신부는 “그러니까 말이지….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 사랑하고, 나중에는 그들의 행복을 가로막는 숱한 어려움을 헤쳐나간다는 이야기라네”라고 말한다. 아, 노인은 책 한 권 갖지 못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책을 구하자. 약이 되는 이야기 책이 책은 밀림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데도 유익하다. 보아뱀에게 먹히지 말아야 하고, 살쾡이 가족은 건드리면 안 된다. 호기심 많은 원숭이와 박쥐 똥을 피하는 법을 배워야 똥 세례를 피할 수 있다. 우기에 걷는 법은 평소와 다르다. 무기 없이 원숭이와 앵무새를 생포하는 법도 있다. 기발하다. 이 방법으로 뱃삯을 마련한다. 순식간에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는 아마존의 장례는 예측불허다. 인생의 허무와 감탄을 자아낸다. 밀림에서는 말라리아로 사망하기 쉽다는 것도 알고, 그때의 고열이 뼈를 깎는 통증으로 느껴질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노인이 보기에 ‘늙어감’은 고독한 짐승에게 사로잡히는 일이다. 그때의 해독제는 연애소설이다. 200쪽도 안 되는 책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이야기는 인생을 살 만하게 한다. 사람들은 왜 이야기에 몰두하는 것일까? 사람들의 이야기는 왜 끝이 없는가에 대해 이 책만큼 유쾌한 답을 제시하는 것도 없을 듯하다.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는 2020년 4월에 스페인에서 코로나19로 사망했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초기이고 당시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대유행이 있었다. 1949년에 태어나 71세였으니 심한 폐렴이 왔다면 피해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2년 3월엔 국내에서만 하루 확진자 30만 명이 연일 넘어섰다. 저문 인생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에게는 힘없이 스러지는 달이 되었다. 그나마도 세 번이나 되는 백신 접종에 이 정도라는데 초점 잃은 눈빛을 보면 마음이 아리다.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육체에 진한 고독이 느껴진다.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가야 하는 육체인지라 집중 치료는 무의미한 고통에 욕심인 경우가 태반이지만, 참으로 많은 노인이 돌아가시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코로나19에 노인은 바람 앞의 등잔불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도 그렇게 갔다. 아마존의 노인은 늙어감의 고독을 연애소설을 읽으면서 상대하였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 중에도 책을 보는 분이 있다. 성경이 가장 많지만 무협지와 소설 등 각양각색이다. 환자들이 책을 읽고 있으면 회진 중에라도 꼭 물어본다. “그 책 뭐예요? 재미있나요?” 질병이라는 인생의 곤경에 이야기책이 약이 되기도 한다. 글 감염내과 최영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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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리닉 스토리

    예방가능사망률 제로(0), 그 꿈을 향한 비상

     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가 새로운 날개를 달았다. 이름하여 응급의료 전용 헬기 AW169다. 새 날개를 얻은 센터는 환자가 필요한 곳까지 더욱 빠르고,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예방가능사망률 제로’라는 그들의 목표에도 한층 더 가까워졌다. 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의 새 식구가 된 중형 헬기 AW169헬기 한 대가 아주대학교병원 지상 헬기장 위로 사뿐히 내려앉는다. 헬기가 착륙하면서 주변으로 잠시 바람이 일고, 그 위로 의료진이 내뱉는 안도의 한숨이 작은 바람을 더한다. 의료진은 헬기가 완전히 착륙하자마자 달려와 센터 안으로 신속하게 환자를 이송한다. 새 식구로 들어온 지 이제 막 넉 달여 된 응급의료 전용 헬기(이하 닥터헬기)와 의료진의 호흡이 제법 척척 맞는다.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에 새로 들어온 닥터헬기 기종은 AW169. 2012년 개발된 최신 쌍발 헬리콥터로 응급환자 수송, 원양 수송, 조난 구조 등 임무에 최적화된 기종이다. 센터가 2019년 보건복지부 주도의 닥터헬기 구축 사업으로 지원받은 H225보다 크기는 작지만, 응급환자 수송에 최적화된 만큼 성능은 한 수 위다.  첫째, 기동성이 좋다. 촌각을 다투는 응급상황에서 특히 중요한 부분이다. 중형 기종 AW169는 헬기의 몸체가 작아 예열에 필요한 시간이 짧다. 따라서 응급 현장으로 빠르게 출동할 수 있다. 둘째, 하향풍이 적다. 하향풍이란 비행체가 낮게 날면서 프로펠러가 일으키는 바람을 말한다. 환자 또는 의료진과 의료 장비 가까이 헬기가 착륙하는 경우 자칫 바람에 의해 안전사고나 재산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다. 그러나 AW169는 하향풍으로 인한 사고 위험이 적다. 셋째, 출입구 위치가 낮다. 기체가 클 경우 그만큼 출입구와 지상 간 높은 단차가 발생하고, 환자가 헬기에서 타고 내릴 때 위험 부담이 발생한다. AW169는 이러한 부담이 적다. 마지막으로, 응급의료 전용으로 제작한 헬기 의료용 침대를 적절한 위치에 고정하고 환자를 돌보기에 용이하다. 기존 대형 헬기의 경우 구조상 의료용 침대를 고정하기 어려웠고 환자를 돌보기에 제한적이었다. 따라서 환자와 의료진의 안전을 보장하기도 어려웠다. 이것은 헬기를 이용한 환자 이송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가 닥터헬기 기종을 AW169로 변경하면서 환자 이송은 더욱더 용이해지고 의료진의 안전까지 확보하게 됐다. 환자를 가리지 않고 24시간 빠르고 안전하게닥터헬기 운영체계도 확 바뀌었다. 아주대학교병원은 올해부터 일출~일몰 시각까지 경기남부권역 닥터헬기 계류장소를 병원 내 지상 헬기장으로 바꿨다. 덕분에 닥터헬기가 출동 요청을 받은 후 10분 내 이륙해 사고 현장까지 25분 안에 도착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2011년 헬리콥터를 이용해 처음 응급환자를 이송할 당시, 용인에 있는 계류장소에서 소방헬기가 병원에 들러 의료진을 태우고 응급 현장에 가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출동 시간만 3분의 1가량 줄어든 셈이다. 소방헬기 출동 빈도가 적은 일몰 시각 후에는 경기 소방특수대응단 소속 소방헬기가 아주대학교병원 의료진과 동승해 인계점으로 출동하는 형태로 24시간 출동 체계를 유지한다. 이송 환자 범위도 늘었다. 올해 1월부터는 중증외상환자 이외에도 급성 심·뇌혈관질환을 포함한 응급환자도 닥터헬기로 이송할 수 있게 되었다.  새 기종, 새로운 운영체계 도입 후 효과는 확연히 드러났다. 지난 3개월(1월~3월) 동안 닥터헬기 출동 건수는 전국 최다 이송 횟수 78회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의미가 큰 것은 골든아워(Golden Hour)를 지키게 되었다는 점. 골든아워란 사고 후 1시간 이내, 응급치료 성공 가능성이 높을 때를 의미한다. 헬기가 빠르고 안전하게 환자를 이송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었다는 것은 환자가 제때 치료받을 기회를 얻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지난 1월 경기도 화성에서 교통사고로 심각한 수준의 중증외상환자가 발생했으나 닥터헬기 출동 32분 만에 아주대학교병원에 도착해 즉시 응급 개복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 정경원 소장은 “앞으로도 아주대학교병원과 소방 당국, 지역 의료기관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경기 남부에서 발생하는 중증외상환자가 언제나 제때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다. 특별한 죽음이 없는 세상을 위해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의 중점 관할 지역인 경기 남부는 도시와 농어촌, 산업단지가 혼재되어 있다. 지리적으로 산간과 해안 지역, 다수의 섬도 포함한다. 그만큼 사고 양상도 다양하다. 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가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것도 그래서다.다행인 것은 앞서 언급했듯 센터가 사고 발생 시 위협으로부터 더욱더 빠르게 환자를 지켜내고 있다는 것. 2020년 2월, 정경원 소장이 부임한 이래 센터의 방어벽은 한층 공고해졌다. 첫째, 센터 볼륨에 맞게 의료 인력을 확보했다. 현재 센터에는 25명의 외상 전담 전문의와 300여 명의 간호사, 방사선사, 행정 직원, 보안 직원 등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응급환자 발생 시 특수 영역 분야에 지원하는 기타 임상과 의료 인력을 더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둘째, 의료진 근무 환경을 개편했다. 의료진 각각의 선호 분야를 고려해 전담 팀을 구성하고, 해당 팀의 책임자를 지정해 팀별 관리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의료진 교대 근무 체계도 더 세분화했다. 또 별도 항공의료팀을 운영해 현장 대원과 직접 소통하는 등 소방 당국과 긴밀한 협조 체계를 갖추었다.근무 환경이 의료진 맞춤형으로 개선되면서 그 혜택은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갔다. 의료진이 받는 육체적·정신적 부담이 줄면서 수술 후 환자가 일반 병동으로 이동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서비스 질도 크게 개선된 것. 그 결과 센터는 보건복지부 권역외상센터 평가에서 2015년부터 7년 연속 최상위 등급(A등급)을 달성했다. 경기 남부 지역 예방가능사망률도 크게 감소했다. 예방가능사망률이란 쉽게 말해 ‘적절하게 치료받지 못해 사망하는 중증외상환자의 비율’을 말한다. 센터 설립 이전 우리나라 중증외상환자의 예방가능사망률은 30%를 웃돌았지만, 현재는 한 자릿수까지 낮아졌다. 특히 센터의 외상 진료에 관한 정량적·정성적 지표를 미국 상위 510개 외상센터들과 비교했을 때 5위 이내, 2배의 생존율을 나타냈다. 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의 의료 수준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경원 소장의 꿈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앞으로 우리의 목표는 예방가능사망률 제로(0)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적절한 환자를 적절한 방법으로 적절한 곳에서 치료하는, 이 삼 박자가 잘 맞아야겠죠. 대규모 재난이 발생해도 환자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규모와 자원도 더 확보해야 합니다. 이번 닥터헬기 변경 및 체계 개선은 우리가 꿈을 향해 계속 날아가는 데 좋은 날개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사건 사고의 연속이다. 영원히 안전한 장소도, 안전한 시간도 없다. 그러나 어떤 일이 벌어져도 누군가 나에게 달려와 치료해줄 수 있다면 언제 어디에 있든 안심할 수 있다. 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가 만들고픈 세상의 모습도 그러하다. 예방가능사망률 제로, 그 꿈을 향해 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 닥터헬기는 오늘도 힘차게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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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감염병

    유럽의 교육

      최고의 칭찬과 악담을 남긴 <유럽의 교육><유럽의 교육>은 공군 조종사이자 외교관이며 작가였던 로맹 가리가 30세이던 1944년 영국에서 출판한 첫 책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공군 조종사로 참전하면서 밤에 썼단다. 한 편 한 편이 아름답고 훌륭해서 장 폴 사르트르는 ‘최고의 레지스탕스 소설’이라고 했다는데 많은 비평가가 단 한 권의 책의 저자로 그칠 거라고, 두 번 다시 <유럽의 교육>과 같은 수준 높은 작품을 쓰지 못할 거라고 했단다. 최고의 칭찬인 듯 최고의 악담이다. <유럽의 교육>의 주인공은 열네 살 야네크다. 형 둘이 전사하자 의사인 그의 아버지는 숲에 구덩이를 파고 은신처를 만들어 야네크를 머물게 한다. 그러고는 독일군이 진주해 있는 마을로 돌아간다. ‘아버지는 왜 숨지 않느냐’는 야네크의 물음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마을에 환자가 많거든. 티푸스(typhus) 말이야. 기근이 들면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는 법이지. 나는 그들과 함께 있어야 한단다. 이해하겠지? 엄마와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마을엔 절대 오지 마라. 네가 가진 식량이면 몇 달은 버틸 수 있어. 먹을 게 떨어지거나 견딜 수 없이 외로워지거든 그때는 빨치산을 찾아가거라. 체념하고 함부로 굴면 안 된다. 늘 반듯해라. 엄마가 가르친 대로 따르거라.” 이 부분을 읽자니 내 아들 생각이 난다. 내 아들에게 해줄 말도 이와 같다. 작품엔 항독 전쟁과 관련된 많은 사연이 있고 질병도 있다. 결핵으로 죽는 특급 호텔 주인의 아들, 늘 설사를 하면서도 산을 떠나지 못하고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변호사, 연인과 함께 교수형에 처해지는 폐렴을 앓는 장교, 매독을 걱정하는 소녀와 병사들…. 생존과 죽음에 대한 걱정보다는 전쟁 중인데도 불구하고 남겨야 할 그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 문학과 음악과 인간의 선의가 책 속에 담겨 있다. 로맹 가리는 비평가들의 악담을 받았음에도 1956년에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상(Le Prix de Goncourt)을, 1975년에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하고 두 번째 공쿠르상을 받는다. 나는 이 작가의 <자기 앞의 생>도 훌륭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연명의료나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의 참고서가 될 만하다.  책 속에 담긴 질병 ‘장티푸스’1980년 로맹 가리가 자살하기 몇 개월 전에 캐나다 라디오 프로그램과 한 대담이 책으로 나온 것이 <내 삶의 의미>인데 1940년에 공군 조종사로 있을 때 장티푸스를 앓다가 종부성사(임박한 죽음을 앞두고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로마 가톨릭 의식)까지 받고 나서 살아난 이야기가 있다. “이동하는 동안 사리르 강물을 마셨는데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탓에 장출혈을 동반한 장티푸스에 걸린 채 이집트 다마스에 도착했습니다. 나는 종부성사까지 받았습니다. 생존 확률이 1000분의 일도 안 된다고 의사들이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의사들은 내가 죽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어느 순간 잠깐 의식이 돌아와 보니 내 옆에는 이미 관이 놓여 있었습니다. 나를 관 속에 넣고, 종부성사할 준비를 하고 있더군요. 신부가 종부성사용 자줏빛 제의를 입고 손에 십자가를 든 채 성사를 거행하려고 제게 다가왔습니다. 악마의 출현 같은 그 모습에 질겁해 그랬는지 격분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 십자가상을 잡아채 그걸로 신부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죠. 그때 나는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있었고, 열이 41℃까지 올랐고, 사방에서 피가 흘러 수혈을 받고 있었는데 군의관은 내가 살아난 게 마지막 힘을 다한 그 에너지 폭발 덕이었다고 하더군요.” 장출혈이 동반된 장티푸스는 이런 병이다. 항생제도 없던 시절에 6개월간 입원했다가 겨우 살았다고 한다. 2022년 1월 들어 코로나19는 오미크론이 유행하면서 중증도가 낮아졌다. 코로나19 중증환자 치료 병동이 조금씩 비어가고, 내 당직 횟수도 당직 의사가 늘면서 줄었다. 당직하는 동안 겪은 특별한 경험들은 언젠가는 잊히겠지만 삶의 마지막 대화일지도 모를 상황에서 환자들과 나눈 대화는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허연 방호복을 입고 들어온 의사가 혹시 모르니 중요한 얘기를 가족과 나누라고 할 때 다들 어땠던가? 가족들과의 전화는 거절하고 단체 채팅방에 글을 남겼다고 한 분, 전화도 문자도 거절하고 깨끗하게 가겠다고 한 분, ‘죽을 수 있다’는 말이냐고 묻고는 악수를 청하고 꼭 깨워달라고 한 분, 많이 살았으니 이만하면 됐다고 한 분, 여자 친구와의 전화를 부탁한 분. 거꾸로 내가 그런 말을 듣는다면 뭐라 할지 생각해보는 날도 많았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언젠가는 닥칠 일이다. 야네크의 아버지는 좋은 말을 남겼고 의롭게 죽었다.  글 감염내과 최영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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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리닉 스토리

    식도암센터-길이 끝나는 곳에도 길이 있다

      식도(食道). 이름 그대로 음식물이 지나는 길이다. 모든 길은 또 다른 길의 시작이자 끝이다. 식도도 그러하다. 몸속의 많은 길이 식도와 맞닿아 있다. 따라서 식도에 문제가 생기면 몸 전체가 교통체증을 겪듯 영향을 받는다. 암이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식도암이라는 큰 장애물과 맞닥뜨렸을 때, 그 길 끝에서 우리는 식도암센터를 만난다. 암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불청객, 식도암 식도암이란 식도에 생긴 암을 말한다. 얼핏 목 길이 정도로 짧을 거라 생각하지만 목구멍부터 위장까지 무려 30cm나 되는 길 전체가 식도다. 입, 흉부, 위가 모두 식도와 연결되어 있고, 심장·기관지·폐·대동맥 등 주요 장기가 모두 식도와 인접해 있다. 식도암이 까다로운 이유는 식도 구조 자체가 다른 장기와 달리 장간막(腸間膜)이 없기 때문이다. 여타 장기는 종양이 생겨도 장기 안을 둘러싼 막이 있어 다른 장기로 진입하기까지 일정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식도는 안은 점막, 밖은 근육으로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종양이 뚫고 나가기 용이하다. 주변으로 림프관이 발달해 있어 다른 장기로 이동하기도 수월하다. 그만큼 식도암은 파급력이 크다. 증상 없이 조용히 진행되는 것도 문제다. 식도는 잘 늘어나고 줄어들기 때문에 종양이 웬만큼 자라기 전까지 음식 섭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음식 섭취에 불편을 느낄 때는 병이 상당히 진행된 후다. 이미 전이가 된 상태에서 다른 증상으로 내원했다가 식도암 판정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자포자기할 필요 없다. 까다로운 질환에는 그보다 더 섬세하고 전문적인 의료진을 만나면 된다. 발 빠른 식도암과 신속·정확하게 맞선다까다로운 식도암과 맞서기 위해 2021년 4월, 아주대학교병원 식도암센터가 문을 열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대외 활동이나 홍보에 제약이 컸음에도 식도암센터는 조용하지만 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아주대학교병원 식도암센터의 가장 두드러지는 장점은 진단, 치료 과정이 빠르고 정확하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식도암은 진행 속도가 빠른 만큼 대응도 신속해야 한다. 진료과가 분산되어 있을 경우 치료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아주대학교병원 식도암센터는 여러 과가 모여 식도암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전 과정이 빠르게 이루어진다. 흉부외과를 주축으로 발병 위치에 따라 소화기내과·이비인후과 등이 협진하며, 병기에 따라 수술과 약물 치료, 방사선 치료 중 무엇을 선행할지 신속하게 정한다.식도암센터 함석진 센터장은 “식도암은 전이가 빠르기 때문에 진단부터 치료까지 얼마나 신속하게 진행되는지에 따라 치료 결과도 달라집니다. 아주대학교병원 식도암센터는 로봇수술, 내시경 수술 등 새로운 수술법을 도입 및 진행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환자의 합병증 발생률이 지속적으로 줄고 회복률은 더 높아지고 있죠. 따라서 환자분들은 우리 센터를 믿고 찾아주셔도 좋습니다”라며 센터의 강점을 소개한다.  식도암 치료에 최적화된 로봇수술로 환자 만족도를 높인다식도암 치료는 병기에 따라 달라진다. 위내시경 중 점막 안에 국한된 종양을 발견했을 때는 수술까지 갈 필요 없이 점막을 도려내는 간단한 시술로 치료할 수 있다. 종양이 자라났지만 림프절 전이가 없고 절개가 가능할 경우에는 바로 수술을 결정한다. 림프절까지 전이되고 종양이 크게 자라 절개가 어려우면 환자 상태에 따라 치료 순서와 방법을 결정한다.수술에는 고도의 술기가 요구된다. 함석진 센터장도 “식도암 수술은 흉부외과 수술 중 고난도 수술”이라고 꼽을 정도. 특히 잘라낸 식도를 대체할 장기를 절제하려면 목, 가슴, 배까지 수술해야 하므로 부담이 가중된다. 절개 범위가 넓으면 환자가 느끼는 부담도 크다. 따라서 아주대학교병원 식도암센터는 개흉·개복수술뿐 아니라 로봇수술과 내시경 수술, 복강경 수술 중 최적의 방법을 고민해 수술을 진행한다. 경인 지역에서 폐이식 수술에 처음으로 성공할 만큼 베테랑 흉부외과의인 함석진 센터장과 로봇수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젊은 의료진이 최상의 팀워크를 이뤄낸다.“로봇수술은 식도암 수술에 매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로봇을 이용하면 좁은 흉강 안에서도 시야가 확보될 뿐 아니라 섬세하게 림프선을 박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센터에서는 젊은 의료진을 중심으로 로봇수술 비중을 점차 늘려가고 있으며, 이로 인해 환자의 만족도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오직 환자만을 향하는 식도암센터의 길 병은 얻은 후 치료하는 것보다 예방하는 편이 더 현명하다. 더러 유전적 영향도 있지만, 평소 어떤 식습관을 들이고 어떤 기호식품을 즐기느냐에 따라 식도의 상태가 좌우된다. 특히 술과 담배는 치명적이다. 흡연자의 경우 비흡연자보다 식도암에 걸릴 확률이 10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주도 위험하다. 특히 안주 없이 술만 마시거나 밥 대신 막걸리로 허기를 달래는 어르신도 식도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 음주와 흡연을 둘 다 하면 상승작용에 의해 식도암 위험성이 100배로 증가한다. 따라서 가급적 금연하고, 술은 영양분이 풍부한 음식을 곁들여 적당히 마시는 것이 좋다. 염장 식품이나 식도에 자극이 되는 뜨거운 음료도 피한다. 식도암센터는 향후 환자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식도암 치료와 예방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센터를 알리는 일에 더욱더 매진할 계획이다. 다학제 진료, 신속한 의사결정, 새로운 수술법 도입, 이 모든 것이 가능하려면 의료진 간 이해와 소통이 반드시 필요한 만큼 결속력을 다지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함석진 센터장은 “의료진이 힘을 모을 수 있는 비결은 모두가 ‘환자를 살리는 일’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식도암센터는 앞으로도 오직 환자를 위해 일하겠습니다. 식도암은 분명 쉬운 암은 아닙니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가 의료진을 믿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해주신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포부와 당부를 전한다.    함석진 식도암센터장 인터뷰-건강에 대한 의지가 건강한 삶을 만듭니다식도암은 쉬운 암이 아니라는 인식 때문에 치료를 시작하기 전부터 지레 겁을 먹는 환자와 보호자가 많습니다. 하지만 의학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병과 지금의 병은 같지만 다릅니다. 그리고 가족의 지지와 환자의 의지에 따라 치료 결과 또한 달라집니다. 환자와 보호자께서는 희망을 품고, 의료진에 대한 믿음을 갖고 우리 센터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또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건강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바른 생활 습관을 실천하시고, 몸에 이상을 느끼면 주저하지 말고 병원을 찾으시길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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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감염병

    체호프 단편선

      안톤 체호프는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원래는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개업까지 한 의사였다. 대학 때부터 글을 발표하다가 문필 생활에 전념해 작가로 활동하던 20여 년간 1,000여 편의 소설과 희곡을 발표했다. 그의 단편은 등장인물이 가난한 사람부터 귀족까지 다양하고, 직업도 각양각색이며, 이야기도 너무 많아 인생의 편린을 쉴 새 없이 적어내어 세상에 뿌린 듯하다. 우리나라에 체호프 전집이 있다면 1,000여 편의 이야기로 넉넉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선집뿐이다.의뢰받은 원고를 쓰기 위해 짬을 내어 책을 펼쳐보니 이야기들이 팬데믹에 비추어 다시 읽힌다. 우수(憂愁), 누구에게 내 슬픔을 이야기하랴?마부 이오나는 아들이 죽은 지 일주일이 되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아들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아들이 어떻게 병에 걸렸고, 얼마나 괴로워했으며, 죽기 전에 무슨 말을 남겼고, 어떻게 죽었는지.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쌓이고 쌓여 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슬퍼하며 한숨 쉬고 통곡할 것이다. 그러나 손님들은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사람은 다 죽는데 뭐….”코로나19로 폐렴이 심하면 호흡부전 때문에 기도에 관을 넣고 기계호흡을 시작한다. 기계호흡이 필요할 정도로 중증인 환자의 30~40%는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것이 코로나19다. 가족이 코로나19로 격리되어 치료를 받던 중 악화해 중환자실로 이송된 후 끝내 기계호흡까지 하게 된다면 이는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예고다. 환자도 보호자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하면 격리에서 죽음까지 대략 2~4주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다. 코로나19로 가족을 잃은 보호자들이 슬픔을 어떻게 나누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주대학교병원 집중치료실에서 최선의 치료를 받다가 돌아가셨다고, 여한이 없다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밤의 적(敵)9월의 저녁, 그것도 9시가 지났는데 의사 키릴로프의 집에 왕진을 요청하는 젊은 귀족이 왔다. 그날은 의사의 외동아들이 디프테리아로 죽은 날이다. 이 병은 오늘날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누구나 맞는 소아 예방접종 때문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고 싶다. 운전 중 안전벨트를 매는 것처럼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시라. 백신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코로나19 교통사고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안전벨트다. 호흡기 전염병인 디프테리아였기에 하인들은 아침부터 집 밖으로 내보내고 오직 부인과 의사만 있다. 남자는 부인이 매우 위급해 마차를 가지고 왔다며 자신의 집에 가자고 한다. 의사는 도저히 왕진을 갈 수 없는 상황이다. “용서하세요. 나는 갈 수 없습니다…. 5분 전에 내 아들놈이 죽었습니다….”그런데도 귀족은 사정한다. “나는 당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내가 이런 순간에 당신의 주의를 차지하려고 한다는 것이 나로서도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내가 누구에게 찾아가야 하겠는지. 당신 말고는 여기에 다른 의사가 없잖아요. 제발 가십시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사정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픈 것이 아닙니다!” 의사의 아들이 죽었다는데 계속 가자고 사정하는 이 귀족의 뻔뻔함이 얄밉다. 그렇지만 어쩌면 이 귀족의 모습은 내과도 아닌데 계속 전공의를 파견해달라고 요청하는 코로나19 진료팀의 모습일 수도 있다. 아, 슬프다. 우리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갑자기 필요해진 코로나19 중증환자 치료 병동에 얼마나 많은 인력이 필요한지 사전에 알고 팬데믹 현장에 투입된 의료인은 없을 것이다. 대개 집중치료실은 서서히 계획해 확장하고, 확장한 만큼 병상에 필요한 인력을 계산해 채용하고, 차출 후엔 교육해서 대응하는 방식이다. 집중치료실을 드나드는 의사는 위중한 환자를 보는 몇 개 과에 한정되어 있고, 대다수 임상과는 중환이 되면 그런 과로 옮겨 치료한다. 원천적으로 코로나19 중증 폐렴에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인력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에 의사만이 의사 노릇을 할 수 있으니 어찌할 것인가. 각 병원의 인력은 천차만별이고 병원 내부 사정에 따라 대응 인력이 다르다. 2년이 넘는 지금도 끝나지 않는 코로나19로 인한 긴 당직과 진료에도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과를 불문하고 응급 요청에 응해준 전공의들 덕분이다. 그들의 이름을 기록에 남겨 감사를 표한다(2020년 12월 18일부터 2021년 12월 12일까지).    글 감염내과 최영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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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감염병

    네메시스

      책 속에 기록된 전염병 ‘폴리오’사는 게 힘들다고 느껴질 때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제일은 ‘나보다 못한 사람도 많다’는 상대적 우월감을 북돋우는 일이다. 시간도 돈도 들지 않고 몸 쓸 일도 없이 마음만 조금 바꾸면 된다. 물론 유효기간이 짧다는 단점이 있다.코로나19 중환자를 돌보는 나는 과거의 여러 유행을 생각하면서 그 병이 도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하며 지낸다. 어린아이에게는 코로나19가 경증이란 사실 때문이다. 나이 든 사람의 생명이 어린아이의 생명보다 가벼운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지만 아이들이 죽어가는 유행병이었다면 더욱 괴롭고 혼란스러웠을 것이다.폴리오(예전 용어로 ‘소아마비’)의 교과서적 병명은 급성회색질척수염이다. 신경뉴런의 회색질에 급성으로 발생하는 염증이다. 대다수는 증상 없이 지나가고 일부는 경증으로 앓는데, 1% 이내의 환자에게 열이 나면서 감기나 장염처럼 시작해 마비가 일어나고 심할 경우는 호흡마비로 사망하는 병이다. 우리나라도 1960년대 초까지 매년 1,000~2,000명이 발생했고, 많은 부모가 아이의 팔다리가 마비되어 불구가 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1983년 5명의 환자가 보고된 후 새로운 환자가 발생했다는 보고가 없으며, 2000년 동아시아는 토착 폴리오 발생이 없는 지역으로 선언되었다.주로 어린아이에게 문제가 되었던 폴리오 유행은 <네메시스>를 읽으면 알 수 있다. 이제는 고인이 된 미국 작가 필립 로스의 마지막 소설로, 2010년 작품이다. 시대적 배경은 폴리오 백신이 나오기 전인 1944년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발생한 폴리오 유행이 한창이던 때다. 미국은 1916년 대유행을 겪은 바 있다. 당시 미국 북서부 여러 주에서 폴리오가 유행하면서 감염 환자가 2만7천명 이상 발생했고 6,000명이 사망한 것이다. 이런 과거가 있는 상태에서 1944년 다시 유행이 시작되었을 때 부모들은 얼마나 무서웠겠는가.첫날 아침, 두 아이가 잠에서 깼을 때 열이 높고 목이 뻣뻣했다. 둘째 날 저녁 무렵엔 팔다리에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숨 쉬기도 힘들어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두 아이 모두 몸이 완전히 마비되었고 더는 혼자 힘으로 숨을 쉴 수 없어 철폐(원통형 금속 인공호흡기) 안에 들어가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이야기는 아이들을 돌보는 체육 교사의 과도한 자책으로 이어진다. ‘네메시스’는 분수를 넘어서는 모든 종류의 과도함을 응징하는 그리스 여신의 이름이다. 아마도 작가는 체육 교사가 폴리오에 감염되어 죽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자신의 잘못이라며 지나치게 자책하면서 스스로의 인생을 망가뜨렸다고 지적하는 것 같다. 폴리오 사망률을 낮춘 고무 주머니나는 책의 주제보다 당시 사회상이 반가웠다. 폴리오 유행 시 얼마나 많은 혼란이 있었는지, 방역은 어땠는지 참고 자료로 소중해서다. 당국에서는 폴리오의 원인을 모르니 더러운 소와 감염된 우유 때문이라며 사용하는 모든 것을 살균하라 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오물과 흙과 쓰레기를 치우고, 방충망을 수리하고, ‘파리 잡기’ 캠페인을 벌이고, 병을 옮기는 파리를 파리채로 죽이라고 무료로 파리채를 나누어주었다.환자가 발생한 집 앞에는 “뉴저지주 뉴어크 보건국. 접근 금지. 이 집에는 폴리오 환자가 있음. 보건국의 고립 및 격리 규칙이나 규제를 어기는 사람 또는 허가 없이 의도적으로 이 카드를 제거하거나 훼손하거나 차단하는 사람에게는 50달러의 벌금을 부과함”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졌다.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매일 새로운 환자의 수와 위치를 알려주었다. 놀이터가 폐쇄되고 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구역을 폐쇄하기도 했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면서 서서히 유행이 가라앉았다.당시 방역 당국도 걱정거리가 많았을 것이다. 격리를 결정하면 얼마 동안 그 집을 격리한단 말인가? 문헌에서는 40일까지 격리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그렇게 격리를 하든 안 하든 발생률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가구 단위 격리가 중단되었다.1952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폴리오 유행은 매우 유명하다. 평상시에는 연간 10명의 폴리오 환자가 입원했는데, 1952년 8월부터 12월까지 3,000명의 폴리오 환자가 발생하면서 하루 30~50명의 호흡마비 환자가 입원한 것이다. 철폐의 수도 턱없이 부족했지만 철폐에 넣더라도 사망률은 80%였다. 임기응변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할 때 마취과 의사 비외른 입센(Bjørn Ibsen)이 기관절개를 하고 절개 부위에 튜브를 넣는 방법을 제안하고 성공한다. 이 방법을 알게 되자 의대생들이 대규모로 동원되었다. 침대마다 의대생들이 옆에 서서 몇 초마다 한 번씩 고무 주머니를 눌렀다 뗐다 하며 튜브를 통해 어린 환자의 폐로 산소를 불어 넣는 동작을 6시간 동안 반복했다. 이런 일이 6개월 동안 지속되었는데, 1,500명이 넘는 의대생들이 16만5천 시간 이상 고무 주머니로 인공호흡을 시행한 덕에 폴리오 유행이 끝날 때쯤에는 사망률이 90%에서 25%로 줄었다. 다행히 다음 해에는 기계가 제작되었다. 고마운 인공호흡기.  4교대로 6시간 동안 고무 주머니를 눌렀다 떼었다 하며 산소를 주입했을 의대생들의 모습을 나는 능히 상상할 수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위출혈 환자의 위세척을 인턴들이 시간 맞춰 교대해가며 24시간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 연원이 이 코펜하겐의 의대생 인간 호흡기일까?지금 코로나19 중환자실엔 인공호흡기도 있고, 고유량 비강 캐뉼러도 있고, 에크모(ECMO)도 있다. 의대생들은 다행인 줄 알라.    글 감염내과 최영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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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감염병

    약혼자들

      2010년 5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소식지에 연재되어 많은 호응을 받았던 <책과 감염병>을 다시 시작합니다.   역사와 해학의 조화로움, ‘약혼자들’이 소설은 1823년에 완성된 이탈리아 작가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작품으로 1628년부터 1630년까지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지역의 한 약혼 커플이 겪는 시련이 줄거리이다. 실존 인물과 역사적 사건이 사료로 제시되어 역사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그곳 역사는 먼 나라 이야기지만 본당 신부가 얽힌 내막은 웃음이 난다.커플이 결혼을 하려는데 지역의 귀족 나리가 신부를 차지하기 위해 불한당(요즘 말로 깡패)을 보내 본당 신부를 협박한다. “이 결혼은 내일도 그 이후에도 성사될 수 없어!” 본당 신부의 주례 없이는 혼인이 성사되지 않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본당 신부가 용기를 내 어쨌든 주례를 서고 신랑·신부를 도망치게 했으면 불한당들도 어쩌지 못했을 텐데, 신부는 사자처럼 용감한 마음을 타고나지 못했다. 우리들 대다수가 그렇다. 귀족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고, 용기 있는 자는 더더욱 아닌 돈 압본디오 신부는 일찌감치 자신이 수많은 철제 항아리와 함께 여행해야 하는 점토 항아리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은 인물이다. 작가의 비유가 그렇다. 철제항아리 옆 점토 항아리는 몸보신을 잘해야 한다.신부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제라는 신분의 목적과 의무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편하게 살자는 것과 존경받는 강력한 계급에 몸을 기대는 것이 그가 성직을 택한 이유였다. 그의 삶의 방식은 모든 대립을 회피하는 것이고 피할 수 없는 대립에는 굴복하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더 힘센 편을 들었지만, 늘 그 뒤쪽에 서있었다. 다른 편에게 자발적으로 그의 적이 된 게 아니라는 걸 피력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는 큰 재난 없이 60년을 살아왔다.본당 신부가 신랑에게 주례를 서지 못하는 이유를 둘러대는데 둘이서 주고받는 설전이 재미있다. “자네는 약혼녀를 생각하겠지. 하지만 난 목숨을 생각해야 해. 사랑하는 형제여, 자네가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껴도, 난 할 말이 없네. 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추기경이 내막을 알고 본당 신부에게 가르침을 주려하지만 그는 속으로 추기경은 총도 칼도, 불한당도 사용할 수 없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 했던 막연한 거짓말에 잔소리만 많다고 생각한다. “저는 그놈들의 얼굴을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말을 직접 들었기 때문입니다. 추기경 저하께서는 좋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불쌍한 사제의 입장이, 그의 처지가 되어보셔야 합니다.”라고 항변도 한다. 추기경이 뭐라 했을까? “아! 목자의 임무를 행하는 그 오랜 세월 동안 당신의 양떼를 사랑했다면, 그들에게 당신의 배려와 기쁨을 걸었다면, 용기는 필요했던 만큼 모자라지 않았을 것을. 사랑은 용감하오.” 코로나19보다 무서운 ‘페스트’이야기는 본당 신부 앞에서 어떻게든 혼인을 인정받으려던 신랑·신부가 사건에 연루되면서 고향을 떠나 신부는 수녀원에 몸을 숨기고 신랑은 감옥살이를 하고 세월은 다음 해인 1630년에 이른다. 이 시기 밀라노에는 페스트가 창궐했다. 페스트는 지금의 코로나19 보다 무섭다. 어느 귀족의 가족을 보자. ‘그와 아내, 두 아이들, 7명의 하인이 페스트에 걸렸다. 그와 한 아이가 죽음을 모면했고, 나머지는 죽었다.’25만 명의 밀라노 인구가 페스트가 지나고 6만5,000명이 남았다. 환자들은 문둥병원(Lazzaretto)에 격리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문둥병원에서 어려운 일은 위계 질서를 세우고 운영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사제에게 도움이 요청되었고 ‘펠리체 카자티’ 신부에게 의뢰되었다. 가련한 사람들의 수는 늘어났고 사제들이 그곳으로 달려왔다. 이곳에서 사제들은 관리자였고, 고해신부였고, 행정관이었고, 간호사였고, 요리사였고 세탁하는 사람이었다. 펠리체 카자티 신부는 모든 이에게 용기를 주었고 통제를 가했으며 폭동을 진압하고 분쟁을 조정하고, 위협하고 처벌하고 질책하고, 위로하고 눈물을 닦아주고 눈물을 흘렸다. 처음에 그는 페스트에 걸렸지만 회복하였고, 휴식을 취한 뒤 하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 그의 동료 사제들은 대부분 사망했지만, 모두 기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했단다. 사제들이 아니라면 누가 그런 일을 할 것인가 하는 생각만으로, 봉사하겠다는 목적만으로, 부러움을 받기보다는 부러워할 만한 죽음을 이 세상에서 원하는 것만으로, 그런 일을 수락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었다고 전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정성을 다하는 위대한 봉사 활동을 생각하여 마땅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것은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보답하는 마음을 바라지 않는 자들이기에 더욱 그러하단다. 펠리체 카자티 신부가 관리하던 7개월 동안 그곳에 피난했던 사람들은 대략 5만 명 가량 되었다.역사가는 전한다. “이곳에서 수만 명의 환자가 신부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도시 전체는 전멸했을 것이다.” 한 도시의 참상을 기술하는 대신 명예를 되돌릴 수 있는 일을 말해야 한다면 그런 사람에 대해 말해야 할 것이라고 썼다.우리의 마음은 돈 압본디오 신부에 가깝고 드물게 펠리체 신부가 될 때도 있다. 다만 우리는 병원에 있는 사람이므로 돈 압보디오 신부보다는 펠리체 신부처럼 생각하는 일이 더 많기를 바랄 뿐이다.  글. 감염내과 최영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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