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소중한 만남, 궁금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인터뷰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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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화기내과 황재철 교수 <인생을 바꾸는 건강 참스승>

      좋은 스승은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고 바른길로 이끌어준다. 어린 시절 황재철 교수도 그런 참스승을 만났다. 그리고 그 역시 애정 어린 진찰로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스승이 되어 지금 이곳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으로 환자들을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생을 바꾼 운명의 한 달“인터뷰 질문들을 보고 곰곰이 생각하며 답변을 정리해봤습니다. 덕분에 저 자신을 돌아볼 좋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환한 웃음으로 기자를 반갑게 맞아준 소화기내과 황재철 교수. 그는 읽기 편한 글자 크기로 답안을 깔끔하게 정리해 전해주었다. 인터뷰를 위해 성실하게 준비한 모습에서 환자와 그 가족들이 병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한다는 그의 평소 진료 모습이 엿보이는 듯했다.의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 올해로 20년이 되는 황재철 교수. 하지만 고등학생 때만 해도 그는 현재 자신의 모습을 생각할 수 없었다. 고등학생 시절 내내 공대를 목표로 입시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성향을 눈여겨본 담임선생님이 대학 입학 원서를 쓸 시기가 되자 의대 진학을 권유했다.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운명이었을까. 국어 선생님이었던 담임선생님 역시 경북대 의대에 진학한 경험이 있던 터였다.“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갈등이 많았습니다. 손재주는 좋았지만 비위가 약해서 잘할 수 있을지 고민이 컸어요. 부모님은 판단을 오롯이 제 몫으로 남겨두셨죠. 하지만 담임선생님이 ‘사람은 다 적응하기 나름이란다. 내가 지켜봐 온 너에겐 충분히 자질이 있어. 분명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응원해주셔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많은 고민과 갈등 끝에 결정한 의대생의 길. 그러나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배울 것이 많은 하루하루가 흥미롭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인턴을 마치고 내과 전공의가 되기로 결정했을 때에는 막상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다. 다양한 임상실습을 통해 해당 분야 의사로서 필요한 자신의 자질과 흥미를 빠르게 파악해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그렇게 선택한 것이 바로 소화기내과다. 다양한 질환을 치료하는 내과 분야 중에서도 특히 내시경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게 내시경을 통한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제공하는 소화기내과는 당연한 선택, 아니 운명이었을 터다. 어렵지만 가치 있는 도전소화기내과는 체내에 들어온 음식의 소화부터 영양소 흡수, 저장, 생체 활성 물질의 합성과 해독, 배설 등 우리 몸이 에너지를 얻고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소화기를 전문적으로 진료하고 치료하는 분야다. 크게 위장관 분야, 간 분야 그리고 황재철 교수가 전문으로 하는 췌담도 분야로 나뉜다. 췌담도 분야는 소화 효소와 호르몬을 분비하는 장기인 췌장(이자)과 간에서 분비된 담즙이 십이지장으로 배출되는 모든 경로를 아우르는 담낭(쓸개), 담도(담관)를 다룬다. 관련 질환으로는 결석이나 종양으로 인해 담관이 막히면서 발생하는 급성 담관염을 비롯해 담낭용종, 담낭결석, 담낭염, 담관결석, 담도암, 급성이나 만성 췌장염, 췌장낭종, 췌장암 등이 있다.“해부학적으로 췌담도는 몸속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췌장은 복막 뒤 공간에 있으며, 담관은 상당히 가늘기 때문에 진단이나 시술의 난이도가 높고 어려운 분야로 꼽힙니다. 그래서 더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만큼 성공했을 때 더 큰 성취감이 있으니까요.”황 교수가 담당하는 환자는 대부분 65세 이상의 어르신이 많은 편이다. 10년 전보다 내시경적 역행성 췌담관 조영술이 필요한 80세 이상 췌담도질환자가 많이 늘었고, 최근에는 90세 이상 환자들도 생기고 있다. 인구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동반 질환이 늘어나는데, 고령 환자는 진정내시경 관련 부작용 발생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런 이유로 황재철 교수는 환자를 진료할 때 더 내밀히 관찰해 진료하고, 내시경 시술의 적응증이 되는지부터 자세히 검토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영상의학과와 췌담도외과의 협의 진료와 같은 다학제적 접근을 통해서 최적의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힘쓴다. 또한 환자와 환자 가족들의 입장에서 병을 명확하게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알기 쉽게 안내하고 있다.“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환자와 가족들이 병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중증 환자의 비율이 높고 환자 치료를 위해 시행하는 시술이 많을수록 환자 및 보호자와의 소통은 더욱 중요하지요. 그래야 치료에 대해 믿고 잘 따라오실 수 있습니다. 또 질환의 특성상 예기치 못한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때에도 환자와 가족들이 병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어야 빠른 치료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살린 값진 시간들황재철 교수의 입원환자는 대부분 응급실을 통해 들어오는 위급한 환자인 경우가 많다. 괴사성 췌장염으로 응급실에 실려 왔던 40대 환자도 그런 경우였다. 괴사성 췌장염은 췌장의 심한 염증으로 인해 췌장 조직의 일부가 죽거나 죽어가는 상태로 사망률이 25%에 이를 만큼 무서운 질병이다. 특히 괴사성 췌장염은 몸 속 장기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둔해지는 다장기 부전이 발생하기도 하며, 이때에는 사망률이 50%까지 높아진다. 당시 환자의 상황은 분초를 다투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급성 호흡부전으로 기도삽관과 기계적 인공호흡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쇼크와 급성 신부전, 대사성 산증의 소견을 보여 지속적 신대체요법을 시행하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치료 중 열이 잡히지 않아 애를 태웠다. 복부 전산화 단층촬영에서 괴사성 췌장염과 관련된 복강 내 감염이 의심되는 체액저류 소견이 나왔고, 이에 경피적 배액술을 시행했다.“영양 공급을 위해 내시경적 영양보급관을 삽입하고, 적절한 칼로리의 영양을 공급하며 보존적 치료를 지속했습니다. 감사하게도 6주간 중환자실에서 치료 후, 증상이 호전되어 일반병실로 전실하여 3개월간 치료하고 무사히 퇴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수척한 상태로 퇴원했던 환자는 이제 살도 제법 붙었고 외래진료 시 서로 농담도 주고받을 만큼 건강해졌다.때로는 철저하게 준비해도 예기치 못한 문제에 맞닥뜨리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이럴 때는 담당 의사가 얼마나 숙련되고 풍부한 경험이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총담관 결석에 의한 급성 담관염과 그로 인한 패혈증으로 응급실을 찾은 20대 중반 여성 환자가 그랬다. 말기신부전으로 혈액투석을 받고 있던 환자로, 담관과 십이지장이 만나는 유두부를 내시경을 이용하여 절개 또는 확장하여 결석을 제거하는 ‘내시경적 역행성 췌담관조영술’이 필요했다. 투석하는 말기신부전 환자의 경우에는 유두부 절개 시 출혈이 잘 생기고 지혈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질 수 있다. 따라서 출혈에 의한 합병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하면 혈액투석 후에 내시경적 시술을 시행한다. 또한 시술 중에 유두부 절개보다는 풍선도관을 이용한 유두부 확장을 시행하여 담관 결석을 제거한다. 내시경적 역행성 췌담관조영술은 통상적으로 시행되는 상부위장관 내시경 검사나 대장 내시경 검사와 비교하여 시술 시간이 더 길고 환자가 느끼는 고통이 더 크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진정을 유도하면서 진행하는 진정내시경으로 진행된다.철저하게 준비하고 들어간 시술이었으나 내시경 시술 시작 후 얼마 되지 않아 변수가 발생했다. 진정을 유도하는 약물을 투여하고 환자가 진정된 후에 내시경 시술을 진행하였으나 환자가 몸부림치며 호흡마저 불안해지는 소견을 보였다. 환자의 몸부림을 억제하기 위해 진정제를 더 투여해볼 수도 있었으나, 그로 인해 호흡 마비가 오는 경우도 있기에 일단 시술은 중단해야만 했다.“담관결석이 제거되지 않으면 담관염에 의한 패혈증이 해결되지 않아 쇼크로 진행되고, 그로 인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마취통증의학과의 도움을 받아 전신마취하에 내시경적 역행성 췌담관조영술을 시행하여 합병증 없이 담관결석을 제거하고 담관배액술을 무사히 시행할 수 있었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지요.” 췌장암 조기진단이라는 새로운 꿈그동안 수많은 환자 치료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췌담도질환의 효과적인 진단과 치료를 위해 내시경적 시술 관련 연구를 여러 국제 학술지에 게재하는 등 연구도 꾸준히 진행해온 황재철 교수.황 교수는 지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대한췌담도학회 학술위원으로서 우리나라에 맞는 총담관결석 진료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당시 진료 가이드라인은 위장관질환과 간질환 일부에만 있었고, 췌담도질환에 대해서는 전무했던 것.학회는 췌담도질환 가운데 국내에서 비교적 흔한 급성 췌장염과 총담관결석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작을 추진해 국내 췌담도 질환의 진료와 치료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총담관결석 중에서도 ‘난치성, 재발성 총담관결석에 대한 치료’ 가이드라인을 맡아 진행했습니다. 당시 국내에는 근거 연구 자료가 많지 않아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진료지침 개발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외국 것을 그대로 도입하면 국가마다 의료 문화와 제도에 차이가 있다 보니 국내에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어 우리에게 맞는 가이드라인이 꼭 필요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검사방법과 치료법이 개발되고 새로운 연구 결과가 축적되어 현실에 맞는 다양한 가이드라인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황 교수는 앞으로도 췌담도질환에 대한 내시경적 시술의 합병증을 줄이고 시술 성공률을 높일 방법에 대한 연구를 계속 진행하는 것은 물론, 췌장암의 조기 진단에 대한 연구도 계획하고 있다.“그동안 유방암이나 대장암, 폐암은 암 예방 계획과 표적 치료법의 진보 덕분에 실질적인 생존율이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췌장암의 생존율은 여전히 낮은 상황입니다. 아직 췌장암에 대한 효과적인 선별검사가 없어 조기 발견이 어려운 점이 그 원인 중 하나입니다.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어려운 도전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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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장 뛰는 삶을 사는 의사, 순환기내과 양형모 교수

      심장이 1분만 멈춰도 사람은 죽는다. 그래서 심장을 다루는 일은 분초를 다툴 수밖에 없다. 막혔던 혈관이 뚫리고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뛰는 순간. 그 찰나의 희열은 양형모 교수를 순환기내과로 이끌었다. 관상동맥질환 전문의로 환자와 함께 걸어온 지 12년. 양형모 교수는 자신에게 생명을 맡긴 환자를 대하는 순간, 여전히 심장이 뛴다. 심장을 먹여 살리는 관상동맥우리 몸 속 혈관의 길이는 약 10만km, 무려 지구를 두 바퀴 반이나 돌 수 있는 혈관을 통해 혈액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심장이다. 신체 구석구석 혈액을 보내기 위해 우리 심장은 하루에 약 10만 번의 박동을 만들어낸다.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일, 심장이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려면 심장 역시 혈액이 필요하다. 심장이 건강하게 뛸 수 있도록 혈액을 공급해주는 혈관이 관상동맥인데, 이 혈관에 발생하는 질환을 포괄적으로 관상동맥질환이라고 부른다.“그러니까 관상동맥은 심장을 먹여 살리는 혈관인 거죠. 그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면 심장이 혈액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고, 그 상태가 지속되면 심장이 멈추고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를 정확히 진단하고 막는 일이 바로 제가 하는 일입니다.”양형모 교수는 순환기내과에서도 관상동맥 질환을 전문으로 치료한다. 내과 의사임에도 수술복을 입는 일이 일상이다. 한 달 동안 실시하는 스텐트 시술(특수 합금으로 만든 그물망인 스텐트로, 협심증 및 심근 경색증으로 좁아지거나 막힌 관상동맥을 넓히는 시술)만해도 평균 20여 건. 그 중에는 분초를 다루는 급성심근경색환자도 적지 않다. 응급상황에 대비해 5분 대기조의 삶을 고집하는 이유다.“급성심근경색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얼마나 빠르게 막힌 혈관을 뚫느냐에 따라 예후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생사가 결정되기 때문이죠. 골든타임은 증상 발현 후 2시간, 그 안에 병원으로 도착해 혈관을 뚫어야 합니다. 그래서 잠들 때도 핸드폰을 멀리 두지 못해요. 어느 상황에서도 절대 전화를 못 끄고요. 충전 상태를 늘 확인하는 것도 습관이죠.”365일 24시간 계속되는 긴장감. 응급 전화가 오면 신속하게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강박은 또 다른 습관을 만들었다. “나의 1분 1초가 환자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드는데, 어떻게 타협을 할 수 있겠어요.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니까요.”  심장이 뛰는 일을 만나다다양한 과를 돌며 경험을 쌓았던 레지던트 시절, 양형모 교수의 심장을 뛰게 한 건 순환기내과였다. 사실 양형모 교수는 생사를 다루는 외과 의사가 아닌 건강한 삶을 유지해주는 내과 의사에 더 마음이 끌렸다.“내과 의사를 꿈꾸며 의대에 진학했는데, 의대 및 인턴 생활을 거치면서 외과에도 마음이 많이 기울더라고요. 내과이면서도 시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순환기내과를 택하게 됐죠. 두려움도 있었어요.”양형모 교수가 레지던트 생활을 할 때만 해도 심장혈관 중재시술이 보편적이지 않았다. 직경 3mm의 가는 혈관을 뚫는 정밀한 시술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의사의 작은 실수가 환자의 생명에 치명적일 수 있기에 결정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양형모 교수는 순환기내과, 그 중에서도 심장혈관 중재시술을 전공으로 선택했다.“심장 혈관이 막혀 실려 온 환자의 심장이 다시 힘차게 뛰는 걸 봤어요. 그걸 해내는 교수님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죠.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심장이 뛰더라고요.”그로부터 15년, 후배들에게 관상동맥 전문의를 꿈꾸게 하는 선배이자, 환자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받는 의사로 성장한 양형모 교수. 그는 여전히 환자의 심장이 건강히 뛰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질병이 아닌 환자에게 집중하는 것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니 짧은 진료 시간이 죄송하고 아쉬울 때도 많다는 양형모 교수. 그럴 때면 공중보건의 시절을 떠올린다. 지금도 5일장이 서는 양평의 시골 병원에서 근무했던 시간은 ‘질병이 아닌 환자를 치료하는 것’에 대해 몸으로 배운 시간이었다. “시골 병원에는 어르신들이 주로 오세요. 필요한 의료 시설들이 많지 않다 보니 진료에도 제한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무조건 큰 병원으로 가시라 할 수는 없더라고요. 그래서 환자들의 상황에 맞는 최선의 진료를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그 배움을 지켜가기 위해 환자 한 명 한 명과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하지만, 현실은 마냥 녹록치만은 않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초심을 지켜가려 노력 중이다.“항상 진료 시간보다 30분 먼저 가요. 환자분들은 늘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시거든요. 적어도 30분은 먼저 시작했으니, 진료가 길어지더라도 뒤에 분이 기다리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환자 분들한테 꼭 질문할 것이 있으면 적어오라고 해요. 진료실에 들어오면 꼭 해야 할 질문이나 얘기를 못 하고 그냥 가는 경우가 있거든요. 최소한 환자와 제가 마주한 시간만큼은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더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다시 뛰는 심장심장혈관 중재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양형모 교수가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더 나은 치료법을 위한 연구에 힘을 쏟는 이유다. 2014년에는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심혈관센터로 연수를 떠났다. 관상동맥 혈류 역학의 선두적인 연구를 하고 있는 곳에서 더 많은 경험과 배움을 쌓고 싶어서다.“연수 기간 동안 ‘혈관 내 압력측정 검사’를 심장이식 치료에 적용하는 연구를 처음으로 시행했습니다. 협심증, 심근경색에 사용했던 검사를 심장이식 환자에 처음으로 적용한 거죠. 국내에는 심장이식수술이 드물지만, 앞으로 심장이식이 좀 더 발전하게 되면 환자의 예후를 예측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세계적인 심혈관센터에서 거둔 의미 있는 연구 결과. 양형모 교수는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시절부터 최고의 스승이 되어준 탁승제 병원장을 비롯한 선배 교수들에게 그 공을 돌렸다.“탁승제 병원장님은 혈관 내 압력측정 검사의 선구자세요. 관상동맥 협착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평가하는(얼마나 막혔는지를 검사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혈관내 초음파 검사와 혈관내 압력 측정 검사. 환자의 상태에 따라 더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해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죠. 그런데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하는 병원이 많지 않았어요.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지를 두고 신경전이 한창일 때, 우리 병원은 두 방법을 접목시키는 연구를 진행했어요. 그 결과 이 분야에 있어서는 최고의 수준을 갖게 된 거죠.”정확한 진단을 통해 시술의 성공률은 높아졌고, 불필요한 시술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시술 이후의 합병증 가능성과 환자의 경제적 부담도 함께 줄어들었다. 이는 1994년 병원 개원과 함께 심도자실을 2개나 마련하는 등, 심장혈관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꾸준한 연구를 지속해 온 결과다. 여기에 의료진들의 열정과 노력, 실력이 더해져 아주대학교병원 심도자실은 2016년 6월 5만 명을 돌파, 6만 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제가 인턴을 하던 당시에는 경기도에 심도자실이 있는 곳은 우리 병원이 유일했어요. 덕분에 학생 때부터 자연스레 다양한 진료 과정들을 접할 수 있었고요. 학생일 때 부족함 없는 배움터였던 아주대학교병원은 지금도 최고의 배움터입니다. 얼마 전에는 ‘저걸 어떻게 뚫지’ 싶은 환자가 왔는데, 혈관 어디가 막혔는지가 도무지 안 보였어요. 그런데 탁승제 병원장님께서 그걸 정확히 뚫으시더라고요. 최고의 위치에서도 여전히 배우고 훈련하셨음에 대한 반증이죠.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아직 멀었구나 느꼈어요.”365일 24시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생활, 의사의 작은 실수가 환자의 생명에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부담감. 그럼에도 양형모 교수는 순환기내과 심장혈관 전문의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막혔던 혈관을 뚫고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뛰는 그 순간, 양형모 교수의 심장도 빠르게 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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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당뇨병연맹 회장 취임 의료계의 반기문, 조남한 교수를 만나다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조남한 교수가 동양인 최초로 세계당뇨병연맹 총회장으로 취임했다. 170개 국가를 회원국으로 두고 있는 세계당뇨병연맹을 이끄는 수장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한 것. 한 층 무거워진 어깨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는 조남한 교수. 그의 시선은 여전히 단 한 명의 환자를 향하고 있다. 세계당뇨병연맹 최초의 동양인 회장2015년 12월 2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세계당뇨병연맹(IDF) 정기총회. 170개 회원국을 대표해 연맹을 이끌 차기 회장이 선출됐다. 호명된 이는 대한민국의 조남한 교수, 1950년 연맹이 설립된 이후 최초로 동양인 회장이 탄생되는 순간이었다.“영광이죠. 기쁘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 순간 가장 크게 다가온 감정은 책임감과 사명감이었습니다. 세계당뇨병연맹은 당뇨병의 현황과 심각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정치, 종교, 이념을 넘어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유일한 단체이기 때문이죠. 저의 말 한마디, 그리고 행동 하나가 가져올 영향력을 생각하니 묵직한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당선 후 차기 회장으로 활동한 2년여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면 조남한 교수가 얼마나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한 달에 방문하는 회원국만 해도 평균 4~5개국. 의료 현장을 방문하고 당뇨병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강연과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와의 만남 등 정해진 일정을 소화한 후에는 잠깐의 휴식도 없이 다음 국가로 이동해야 한다. 동시에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에서 꾸준히 후학을 양성하는 일, 안성유전체연구소를 통해 지역사회 코호트를 구축·운영하는 일도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한다. ‘시간을 쪼개서 사용한다’는 말이 아니고는 설명이 불가능한 일정이다.“개인의 성취라 생각한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습니다. 세계당뇨병연맹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졌기에 가능한 일인 거죠. 실제로 우리나라의 당뇨병 관련 수준은 세계 5위 안에 들 정도로 뛰어납니다. 앞선 선배님들과 함께 걸어가는 동료, 후배들이 함께 만든 성과라고 생각하기에 어깨가 더 무겁습니다. 동양인 최초로 회장에 선출된 만큼, 제가 걸어가는 길이 후배들에게 미칠 영향이 크기 때문이죠. 1분 1초를 허투루 사용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당뇨병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날까지조남한 교수는 2018년부터 2년 동안, 세계당뇨병연맹 총회장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차기 회장으로 활동했던 지난 2년보다 더 촘촘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 170개 회원국을 모두 방문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 조남한 교수의 기준은 명확하다. 중요한 위치에 있는 나라가 아닌, 도움이 절실한 나라를 우선적으로 방문하는 것. 기준은 정확하고 신속하게 지켜지고 있다. 임기가 시작된 후 시리아 난민촌, 팔레스타인 가자 지역 등 당뇨병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는 나라들부터 방문하기 시작했다.“현재 전 세계 당뇨병 환자는 4억 2500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후진국의 경우 진단 자체를 못 받는 비율이 70%를 넘으니 실제 환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겠죠. 후진국에서는 자신이 당뇨병에 걸린지도 모른 채 합병증으로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다수에요. 이 모든 것이 당뇨병에 대한 무지에서 발생하는 일입니다.”조남한 교수는 “당뇨병은 모든 질병의 어머니”라고 강조했다. 비전염성 질병으로 사망에 이르는 숫자가 1년에 1000만 명인데, 그 중 당뇨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자가 500만 명이라는 것. 서구화된 생활 습관과 고령화로 인해 발생률이 빠르게 증가하는 만큼, 조남한 교수의 마음은 점점 조급해지고 있다.“3차 세계대전은 벌써 시작됐는지도 모릅니다. 2초마다 당뇨병 환자가 발생하고, 6초마다 한 명이 그로 인해 사망하고 있죠. 어떤 전쟁이 매년 500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까요? 세계당뇨병연맹 회장의 자리가 갖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2년 동안 그 영향력을 선하게 사용해 당뇨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물론 제 임기 동안 이 모든 일을 할 수는 없겠죠. 저는 다음 세대를 위한 단단한 디딤돌을 놓는 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당뇨병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조남한 교수의 여정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 3월 24일 뉴욕 UN본부에서 개최된 ‘제 40회 UN과 함께 하는 라이온스의 날’ 행사에 참석, 세계당뇨병연맹과 국제라이온스협회 간의 MOU 체결을 이끌어냈다. UN 연설을 통해 당뇨의 심각성을 알리고 ‘Serving size(한 끼 분의 식사에 나오는 양)을 줄이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국제라이온스협회가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가진 역동적인 조직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향후 당뇨병과의 전쟁에 큰 지원군이 될 것이라 기대된다.조남한 교수의 임기가 마무리되는 2019년에는 전 세계 당뇨병 분야 전문가 1만 명 이상이 참석하는 세계당뇨병연맹 총회가 부산에서 개최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리는 총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임기를 마치고 싶다”는 조남한 교수. ‘의료계의 반기문’이라 불리는 그의 진짜 바람은 소박하다. “2년 동안 전 세계를 다니면서 만나게 될 많은 환자들. 그 중 한 명에게라도 새 생명을 줄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큰 보람이자 기쁨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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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보는 눈, 더 밝고 건강하게 인도하다, 안과 정승아 교수

     ‘명의’라는 단어가 흔해진 세상이지만 어떤 환자들에게 의사는 명의를 넘은 구원자이자 신과 같은 대상이다. 하물며 그 존재가 내 아이의 삶을 바꿔놓은 의사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명문으로 꼽히는 아주대학교병원 안과에서 아이들의 눈 건강을 위해 매순간 헌신하는 정승아 교수. 그는 그래서 궁금했던,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다. 소중한 눈을 선택하다아이의 손을 꽉 잡고 혹은 아기를 품에 꼭 안은 채 불안한 표정으로 진료실에 들어서는 보호자들은 대개 마지막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정승아 교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보호자들은 “걱정하지 마시라”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하는 정승아 교수의 다정다감함에 큰 위로와 희망을 품고 돌아간다. 소아안과 질환으로 고민하는 부모들이 모인 카페나 모임에 정승아 교수의 이름이 수시로 언급되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국내 최초로 아주대학교병원이 만든 사경센터에서 재활의학과 임신영 교수와 함께 사경의 진단 및 치료와 관련된 ‘사시’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정승아 교수. 푸근한 온기를 품고 있는 목소리와 차분한 말투까지 마주한 이에게 안정감을 주는 정 교수는 학창시절부터 의사를 꿈꾼 소녀였다.“중학교 2학년 때 <신식의사, 산촌에 오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었던 제게 의료 선교사 부부가 네팔에서 겪은 선교 이야기를 소설 형식으로 풀어낸 이 책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어요. 나도 의사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된 계기가 되었죠.”여기에 하나 더, 딸만 둘이었던 아버지는 딸들에게 “직장을 갖고 제대로 일을 하려면 전문직을 갖는 게 좋다”고 조언해주셨다.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는 아버지의 충고는 소녀에게 깊이 각인됐고 결국 공부를 좋아하고, 잘했던 정승아 교수는 의대 진학을 결심했다. 자신의 꿈도, 아버지의 소망도 모두 이룬 셈이었다. 수많은 과중에서 안과를 택한 건 정 교수의 타고난 성정과도 관련이 있었다. 인턴을 하면서 다급하게 생사가 오고가는 상황을 수시로 마주친 정승아 교수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심한 마음의 부침을 겪었고 결국 직접적으로 목숨을 다루지는 않지만 생명처럼 소중한 ‘눈’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눈이 좋았어요.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을 다루는 안과가 정말 중요한 과라고 생각했거든요.” 정승아 교수가 아직도 소녀 같은 말간 미소를 지었다.   어린이 안과 질환, 제게 맡겨주세요정승아 교수가 다루는 분야는 사시, 소아안과와 신경안과 분야이다. 안과 내부에서는 신경과와 접목되어 있어서 좀 더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가지만, 정 교수는 “공부를 좋아하고, 아기를 예뻐하는 제게는 딱맞는 분야”라며 빙긋 웃는다.사실 환자나 보호자들은 눈과 관련된 질병에 막연한 공포와 두려움을 갖는 경우가 많다. 환자가 자식인 경우에는 죄책감까지 더해져 의사 입장에서는 아픈 아이 하나가 아니라 부모의 마음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승아 교수는 단시간에 끝나지 않는 치료에 대해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감사와 행복함을 훨씬 크게 끌어안고 가는 인물이다.“제 환자의 경우 대상이 아이들인데요. 특히 사시 환아들의 경우에는 끝까지 안고 가야 하는 망막 등의 만성질환과 달리 상태가 좋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가 잘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제가 잘해서라기보다는 저절로 좋아지는 부분도 있는데요. 이렇게 성장기 아이들이 눈에 띄게 호전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 정말 큽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니까 참 행복해요. 또 아이 진료와 함께 부모의 관심까지 관리해야 하니 힘들지 않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오히려 장점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연령대인 보호자들과 병의 원인이나 치료계획, 방법 등에 대해 충분히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죠.”정승아 교수는 태산 같은 근심걱정을 안고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사시도, 약시도 대부분의 경우 고칠 수 있다고 확신을 주는 의사다. 사시는 물론이고, 한쪽 눈이 선명한 상을 경험한 적이 없어 발달이 지연되는 약시의 경우 가림치료를 하거나 사시를 고쳐 선명한 자극으로 줌으로써 크게 호전시킬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며 보호자들을 안심시킨다. 아이와 부모의 협조가 중요한 안과 치료의 특성을 고려해 보호자가 적극적으로 협조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치료방법과 기간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면서 삶의 질을 위해 반드시 고쳐야 함을 강조하며 아이와 보호자, 의사 셋이 함께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또한, 약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치료시기를 놓치는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감추지 않았다.“약시의 경우 치료 시기가 매우 중요해요. 반드시 어릴 때, 시력이 발달하는 시기에 적절한 치료를 해야 정상시력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소아안과에서 하는 주요 진료 중 하나가 약시를 치료하는 건데, 가장 중요한 건 부모가 관심을 갖고 영유아 시절부터 꾸준히 관찰해야 한다는 겁니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병원에 와서 확인을 하셔야 합니다. 검사가 아프거나 어렵지 않고, 모든 경우에 MRI를 찍는 것은 아니니까 망설이지 말고 오셨으면 좋겠어요. 생후 6개월만 지나도 눈 위치는 검사할 수 있으니까요.” 언제나 공부하는 의사가 될 터정승아 교수는 수많은 임상사례를 바탕으로 다양한 연구와 논문을 통해 많은 성과를 내기도 했다. 지난 2013년에는 제109회 대한안과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포스터상을 수상했고, 2016년 11월에는 대한안과학회 제116회 학술대회에서 태준 안과 논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수상한 논문의 제목은 ‘한 눈 약시 환아에서 원거리 시력과 근거리 시력의 호전속도 비교’다. 이 연구 결과 한 눈에 약시가 있는 환아는 초기 근거리 시력이 원거리 시력보다 좋은 경우가 많았지만 시력이 호전되는 속도는 원거리 시력이 더 빠른 것을 밝혀냈다. 또한 초기 근거리 시력이 좋을수록 원거리 시력이 더 빠르게 호전되는 결과를 세상에 알렸다. 포스터상을 받은 논문은 ‘두개골 조기유합증으로 신경외과수술을 받은 환아들의 안과적 특징’으로 신경외과 수술이 필요했던 두개골 조기유합증 환아에서 동반된 안과적 특징을 고찰해 연구한 결과, 수술적 교정이 필요한 정도의 두개골 조기유합증 환아에게서 사시나 원시성 굴절이상이 빈번이 동반되므로 안과적 검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발견해냈다.“최근에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한 분야는 간헐외사시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시 중 가장 많은 사시로 3D나 VR을 잘 인식하지 못하거나 책 읽는 속도가 느려지는 증상을 보이는데 현재 이를 명확하게 검사할 수 있는 틀이 없는 상황입니다. 특정 검사방법을 개발하면서 치료 효과도 확인할 수 있는 측정도구를 현재 개발하고 있습니다.”정승아 교수는 인터뷰 내내 소아안과적 질환은 부모의 관심이 가장 중요함을 거듭 이야기하며, 치료를 잘 따르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보다 좋은 치료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 “아이들이 햇빛을 받으며 바깥놀이를 많이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실내조명은 밝게 하고 독서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합니다. 미디어는 30~40분 보면 반드시 멈춰서 휴식을 갖게 해주세요. 시신경은 에너지를 굉장히 많이 쓰는 기관 중 하나이기 때문에 어린 시절 충분히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일을 많이 먹고 식사도 골고루 해야 합니다.”여기에 하나 더, 치료 방법으로 안경을 쓰게 되는 걸 두려워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안경을 쓰면 얼굴이 변할까봐 우려하는 보호자들이 많은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시기에 맞춰 치료하는 게 정말 중요한 상황에서 안경을 써서 잃는 건 극히 적고 제 때 안경을 써서 얻는 게 훨씬 많다니 환자와 보호자들이 특히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부분이다.“의사로서 목표요? 제게 오는 꼬마 손님들이 언제나 최고의 진료를 받고 가는 겁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앞으로도 늘 공부하고 논문을 읽으면서 연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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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형외과 이일재 교수, 언제나 오늘이 나의 마지막 수술이라는 각오로 달린다

     대학병원에서 성형외과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아마도 태반의 사람들로부터 “그렇게 큰 병원에서도 쌍꺼풀 수술을 하나?”라는 질문을 받게 되는 대상일 수 있다. 성형외과 이일재 교수는 성형을 오직 미용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이해보다는 오해와 편견을 더 많이 사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국내 성형외과 재건 분야에서 미세수술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인물. 자신의 의학적 신념으로 환자를 보호하고 그 삶을 지켜내기 위해 혼신을 힘을 다하는 진정성 가득한 그를 만나보았다. 우연인 듯 운명인 듯 만난 성형외과 성형외과 이일재 교수와의 대화는 참으로 무덤덤하게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딱히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고 성형외과를 선택한 이유에도 극적인 배경 따위는 없었다. “수술로 환자의 상태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게 좋아서 수술하는 과를 선택했는데 이왕이면 수술을 할 때마다 뭔가 다 조금씩 달라보였던 성형외과가 좋아보였다”가 그가 성형외과를 선택한 이유였으니 말이다. ‘미용’이 아닌 ‘재건’ 분야로 진로를 정한 건 그나마 그래도 상당히 명확한 이유에서였다. “성형외과 출신 새내기 의사들은 군대를 군의관으로 안가고 공보의로 갑니다. 저도 지방에 300병상을 갖추고 있는 꽤 큰 병원에서 3년 정도를 복무를 했었는데 그 병원의 성형외과를 찾는 환자들이 대부분 미용수술을 원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젊었던 이일재 교수는 그 시간을 처음에는 재미있어 하기도 했지만 금세 지루함을 느꼈다. 그리고 외상이나 재건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전공의 시절 재건 수술을 접했을 때 자신과는 먼 이야기이라고 느꼈지만 멋진 분야라고 동경했던 것이 새록새록 떠올랐던 것이다. “미세수술은 하고는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병원에 남으라는 사람도 없었던 와중에 진로에 대한 고민이 컸었는데 박명철 교수님께서 펠로우 때 기회를 주셨어요. 그 덕분에 연수를 가게 되었고 이 길을 갈 수 있게 된 겁니다. 연수에 가서는 미래에 대한 많은 두려움이 있었어요. 잘할 수 있을까도 고민이 되었고 또 갔다 와서 대학병원에 남지 못하게 되면 개업을 해야 할 텐데 지금 이 시간이 그냥 버리는 시간이 되는 건 아닐까 우려를 했었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연수 후에 개업을 했더라도 저는 잘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연수를 통해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웠으니까요” 돌이켜보면 운명인 듯, 우연인 듯 기묘한 길이 닿고 연결돼 지금의 이일재 교수를 만든 셈이었다.  1막이 내리면 2막이 시작된다 성형외과는 크게 미용과 재건이라는 두 개의 카테고리로 나뉜다. 재건은 화상, 골절상, 찰과상, 열상, 심하게는 절단상 등을 입었을 때 일차적으로 치료를 하고 외상 때문에 생긴 흉터나 변형을 교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일재 교수는 재건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고 힘든 미세수술 전문가이다. “미세수술은 외상, 암, 당뇨발 등으로 결손이 생겼을 때 그 부위를 메워 주는 수술입니다. 당뇨발, 유방재건 등도 많이 하지만 다른 과에서 수술을 한 뒤 결과가 좋지 않은 상처를 치료하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대부분의 수술이나 치료가 검증된 보편타당한 치료 방법으로 시행되는데 그 길을 벗어나 있는 환자들이 있어요. 당뇨가 조절이 안 된다거나 면역 질환이 있는 경우로 인해 상처가 아물지 않을 경우 미세수술을 통해 상처가 아물게끔 해줍니다. 혈관을 잘랐다가 다시 꿰매거나, 발라서 길게 뽑아서 쓰는 등 방법은 여러 가지 입니다.” 이일재 교수는 성형외과를 두고 ‘사고조사반’ 같은 느낌이라고 말한다. 누굴 구할 수도 없고 불을 끌 수도 없는 조사반은 남들 눈에 띄는 공을 세우기가 어려운 법. 이는 성형외과 미세수술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메인 수술이나 치료가 끝난 뒤 피부를 봉합하고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해 가장 마지막 순간에 투입, 자정이 넘도록 수술을 하지만 때로는 동료 의사들로부터도 ‘현미경을 들여다 보면서 하는 간단한 수술’이라는 오해를 받곤 하는 것도 “그 분들이 근무할 때는 우리가 간단한 수술을 하는 것처럼 보이고, 미세수술을 할 때는 그 분들이 퇴근을 한 뒤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상처는 의사의 눈으로 아문다 세상 어느 의료 행위가 쉽겠냐만은 미세수술의 경우 육체적인 고단함과 스트레스가 타과와 견주어 더했으면 더했지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혈관의 경우 4시간이 지나면 다시 연결해도 살지 못하기 때문에 이일재 교수는 병원에서 2시간 안에 올 수 없는 곳은 갈 수 없고 전공의 선생들은 2시간마다 한 번씩 수술한 환자들을 끊임없이 체크해야 한다. 통상 0.5미리쯤 되는 혈관을 12 바늘을 꿰매고 그 혈관을 3~4개쯤 연결해야 하는 미세수술에 쏟아 부어야 하는 어마어마한 집중력과 부담감은 매 순간이 숙제이자 사명감이다. “미세수술의 어려운 점은 실패하면 안 되는 수술이라는 점입니다. 암은 완치가 안돼서 사망할 수도 있고 골절은 안 붙거나 곪을 수 있어요. 하지만 미세수술은 멀쩡한 내 살을 떼어내 덮는 건데 실패하면 멀쩡한 살도 희생시키고 상처는 덮지 못한 채로 남아 있는 거죠.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 는 긴장과 압박 때문에 제 성격도 까칠하고 별로 좋지 않아요(웃음).”그렇다면 위에서 숨차게 열거한 성형외과에 대한 오해, 성형외과적 치료에 대한 낮은 수가, 수술 자체가 주는 어려움 등 여러 가지 난관 속에서 이일재 교수가 보람을 얻는 부분은 어떤 부분일까? 그리고 지치지 않고 수술실로 달려갈 수 있는 동기부여는 어디서 얻는 것일까? “저희 과장님께서 는 ‘상처는 의사의 손으로 아무는 것이 아니라 의사의 눈으로 아문다’고 하셨습니다. 자주 가서 보면 환자의 통증, 문제점, 치료 방법이 보인다는 거죠. 환자와의 관계도 자주 가서 보는 것만큼 좋은 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이런 과정을 거쳐 환자가 아무 문제 없이 퇴원한다면 제게 그보다 큰 보람은 없습니다. 또 동기부여를 물으셨는데 사실 저희 수술에 대해서 주변 선생님들이 잘 모르신다고는 했지만 모든 치료는 절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영상의학과, 내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유방외과 등 많은 선생님들이 저를 챙겨 주시고 좀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십니다. 저희 전공의 선생님들은 수술도 많고 정말 많이 고생을 하는 데 그래도 내색 않고 노력하시는 모습에 저는 늘 감사함을 느낍니다. 평소 내색은 잘 못하지만요. 타과의 부탁 덕분에 저는 의사로 존재하는 이유를 찾는 거니까 서로 공생한다고 생각합니다. 협업 자체가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 삶이에요.”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 당뇨발 수술 재건 미세수술에 있어서 국내 의료진의 수준은 최고 레벨이라는 게 정설이다. 외상과 당뇨 환자가 많아 수술 케이스도 워낙 많고 미국 미세수술학회장도 한국계 미국인일 정도다. 이일재 교수는 이 같은 우수한 의료 환경 안에서도 당뇨발의 ‘최고’는 수술을 잘 해서 내보내는 게 아니라 환자가 안 아프고 생활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나 긴가로 결정된다고 이야기한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환자에게 필요한 지원이 뭔지를 알아내서 생활도 하고 치료도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낮은 보험수가 때문에 어느 병원에서나 그다지 반가운 환자가 아닌 수많은 당뇨발 환자를 고객으로 받으면서 이일재 교수가 조금이라도 더 그들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이고 가급적이면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 것도 그 길이 곧 최고로 가는 길임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뇨발을 수술해 살렸던 환자가 결국 2~3년 뒤 당뇨 악화로 사망하고 장례식을 치르던 그 날, 80세가 넘은 그의 아내가 일부러 찾아와 “그 동안 성심껏 수술해 주시고 치료에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고 머리를 숙였던 기억은 그가 받은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이쯤 되니 그의 꿈이 궁금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놀라우리만치 솔직하게, 담담하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던 이일재 교수는 궁극적으로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 것일까? “제가 대만에서 공부할 때(대만은 재건 수술 세계 1위 국가다) 절 가르치는 선생님의 수술방에 한문이 붙어있었습니다. 뜻이 궁금해서 물어보니까 ‘제가 내일 실패하게 해주십시오’라는 뜻이라고 하더라고요. 오늘은 성공하게 해달라는, 이게 나의 마지막 수술이라는 마음으로 모든 수술에 임 하겠다는 의미였죠. 저 역시도 수술방에 들어갈 때마다 늘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나의 마지막 수술이다, 라는 각 오를 늘 다지는 거죠.” 수천만 원짜리 고가 수술이 아니어도, 언제 어디서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과가 아니더라도, 이일재 교수는 행복하다. 자신으로 인해 조금 더 건강하게, 조금 더 자신 있게, 조금 더 행복하게 사는 환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환자들을 위해 그는 오늘도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수술실로 들어선다. 우직하게 뚜벅 뚜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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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과 홍지만 교수, 뇌의 세계를 탐험하는 챌린저

     눈부신 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류에게 아직 뇌는 미지의 영역이다. 뇌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목도하게 되지 않을까. 신경과 홍지만 교수는 뇌의 세계를 종횡무진 탐험하는 의사다. 그는 쉼 없는 연구와 도전을 통해 자신의 길을 간다. 딴따라가 신경과 의사가 되기까지홍지만 교수는 ‘딴따라’다. 홍지만 교수는 ‘아웃사이더’다. 이렇게 발칙한 정의를 내리는 전말이 궁금하다면, 홍지만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전 딴따라였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에 빠져 밴드에서 기타를 쳤어요. 부모님 속도 많이 썩혀드리고, 공부를 아예 손에서 놓기도 했죠. 그런데 어떻게 의사가 됐냐고요? 같이 음악을 하던 친구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음악을 안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자 음악과 완전히 다른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의대를 선택하게 되었죠. 하지만 의대 생활은 음악밴드 생활과는 전혀 다르잖아요? 당연히 적응을 잘 못했고, 아웃사이더로 지냈어요. 의대 친구들 중 제가 교수가 될 거라 생각한 사람이 아마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인터뷰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하얀 가운을 입고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 선생님’의 과거가 딴따라라니…. 하지만 그 계기가 어떠했듯, 홍지만 교수는 신경학을 공부하며 뜻밖의 재미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신경학은 기존의 지식을 외우기보다는 파고들어야 하는 학문이다. 의학적으로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기에 그만큼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홍지만 교수는 대학 작곡 동아리에서 작곡과 연주 편곡과 프로듀싱까지 맡아 너른 음악의 세계를 항해했다. 방대한 세계를 탐험하며 음악과 신경학의 분석 미학적 접점이 생겨났다.“예전에 신경과 레지던트 과정을 정리해본 적이 있어요. 그시절은 제게 ‘If(이프, 만약)의 미학’을 가르쳐줬더라고요. 신경과학 자체가 If입니다. ‘만약 이 환자의 신경학적 증세가 척수에 있다면 증상은 이러이러할 것이고, 연수에 있다면 몸의 마비 및 감각증상 등은 어떨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다중 방정식을 풀어나가는 거죠. 그래서 신경학은 외우는 학문이 아니에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정의되어 있지 않은 상황을 If로 정의해 논리적으로 파고듭니다.”만약 다시 전공과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해도, 자신의 답은 ‘신경학’일 것이라 단호히 말하는 홍지만 교수. 그는 신경과 레지던트 시절 내내 병원에서 가까웠던 집을 그토록 멀리했다. ‘밀려드는 환자를 진료하느라 퇴근을 잊은 레지던트 의사’를 상상하기 쉽지만, 홍지만 교수에겐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바로 집에 갈 수 없을 정도로 신경학이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딴따라의 환골탈태(換骨奪胎)란 이런 게 아닐까. 그렇게 락과 재즈를 사랑하는 기타리스트는 밤낮 없이 연구에 매진하는 신경과 의사가 되었다. 통찰력과 끈기를 바탕으로과연 꿈을 이루고 목표를 달성하는 일에 특별한 지름길이 있을까? 특히나 그 목표가 ‘연구’라면 더더욱 지름길이란 없을 것이다. 홍지만 교수는 스승으로부터 ‘통찰력’과 ‘끈기’란 귀중한 가치를 배웠다고 말한다. “허균 교수님은 타고난 임상가입니다. 발걸음 소리만으로도 누군지를 다 알아내시고요, 감별진단을 하시는 모습은 감탄 그 자체랍니다. 김장성 선생님은 관찰의 명수세요. 제 레지던트 동기의 신발 스타일이 바뀐 것을 보고 항상 같이 지내고 있는 저도 모르는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셨을 정도죠! 주인수 교수님은 타고난 인덕의 소유자입니다. 감정이 다소 격앙된 환자도 주인수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환한 미소를 되찾거든요.” 좋은 스승은 좋은 제자를 만든다. 세 명의 스승이 전해준 가치는 홍지만 교수를 단단히 여물게 했고 더욱 좋은 의사, 노력하는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게 했다.“저와 같은 임상의사는 환자에게도 영감을 받아요. 환자가 의사를 만나면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 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요. 의사는 눈에 보이는 증상뿐만 아니라 그 너머에 자리한 근원을 꿰뚫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물음에 최종적인 대답을 하려고 노력해야 하죠.”이야기 끝에 홍지만 교수가 기억에 남는 환자와의 일화를 들려준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오른쪽 마비와 실어증으로 홍지만 교수를 찾아온 미용사 환자의 이야기다. 계속되는 치료에도 환자는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고 오히려 점점 나빠졌다. 환자의 남편은 홍지만 교수를 만나 ‘뭐라도 좋으니, 잘못돼도 좋으니 어떻게든 해달라’며 멱살을 잡기에 이른다.“당시 제가 생각해왔던 치료법은 있었지만 검증이 되지 않아 시도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가 리스크를 감내하겠다고 해서 그 치료법을 적용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환자는 건강을 회복해서 다시 미용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 생각들은 2016년에 보건복지부 첨단 의료기술 개발사업 줄기세포·재생의료 실용화 부문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어 국가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혈관 폐쇄성 뇌경색 환자를 대상으로 신생혈관 재생을 유도해 뇌관류 저하를 호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연구하는 과제죠.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바로 그 미용사 환자입니다.”물론 연구를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나기도 한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홍지만 교수는 성공이든 실패든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장애물을 만나면 이를 타파하거나 둘러갈 방법을 고민한다. 그 과정에서 얻는 작은 성과를 발판으로 다른 길을 개척하기도 한다. 그는 이를 ‘작은 성공’이라고 말한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때, 새로운 길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뇌졸중 치료의 새로운 장을 열어갈 것지난 2014년 홍지만 교수팀은 세계 최초로 심장마비 환자에서 신경보호를 위해 널리 사용되는 ‘저체온 치료법’이 뇌졸중 환자에서도 임상적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해당 연구는 뇌졸중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유력한 미국심장학회의 Stroke지에 실리면서 아주대학교병원에서 개발한 새로운 프로토콜의 우수함을 세계적으로 알렸다. 그때로부터 약 3년이 흐른 지금, 홍지만 교수는 저체온 치료법을 모티브로 한 SONIC연구(뇌졸중 치료제 후보물질)의 한국 임상 총괄연구책임자이다.“‘세계 최초의 다중표적약물(멀티타깃) 연구입니다. 그 동안 수많은 다국적 기업이 뇌 신경세포 보호제 개발을 위해 나섰지만 성공하지 못했어요. 본 연구가 성공한다면 치료의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날 것입니다. 뇌졸중 치료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죠.”지난 6월 17일에도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홍지만 교수팀이 대한신경집중치료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우수 구연상을 수상하였고 이 논문의 내용은 일본 순환기학회지(Circulation Journal)에 실렸다. 논문 제목은 ‘Early Neurological Prognostication during Targeted Temperature Management after Out-of-Hospital Cardiac Arrest’로, 연구팀은 아주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와 공동 연구를 통해 심정지 후 뇌손상 환자의 신경학적 예후를 조기 예측하는 법을 개발하였다.  “이번 연구는 심정지에 관한 스탠다드를 바꾸는 시초가 되리라 예상합니다. 점점 증가하고 있는 심정지 후 뇌손상 환자의 예후를 조기에 예측해 환자의 치료 방향을 설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혈관중재팀과 혈관수술팀을 포함하여 아주대학교병원 뇌졸중팀은 뇌졸중 치료분야에서 분명 대한민국 NO.1이라고 자신합니다. 뇌졸중은 전형적인 커뮤니티병(지역사회병)이에요. 뇌졸중 발생시간부터 치료까지의 시간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아주대학교병원은 중증의 뇌졸중 급성기 환자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병원이기도 합니다. 그런 중환자를 잘 치료하기 위해선 병원의 시스템이 그물처럼 효율적으로 구축되어 있어야 합니다.”홍지만 교수는 국내 최초의 한국형 뇌졸중 인지 프로그램인 ‘아주 뇌졸중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하는 데도 노력하고 있다. ‘아주 뇌졸중 프로그램’은 3단계(1단계: 뇌졸중의 빠른 발견, 2단계: 개개인 맞춤식 신경 집중치료, 3단계: 지역 병원과의 연계협력)로 이뤄진다.“뇌졸중을 빨리 발견하기 위해선 평소 뇌졸중에 대한 인지교육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서구에서는 미국의 브로델리 박사팀이 만든 뇌졸중 의심증상 ‘FAST(Face, Arms, Speech, Time)’를 사용하지만, 우리에겐 영어단어가 바로 와 닿지 않잖아요. 그래서 6개월 여 간의 고민 끝에 ‘이웃-손-발(이하고 웃어보세요, 양손 들어보세요, 발음이나 언어장애가 오면 119에 연락하세요, 바로 당신의 이웃을 구할 수 있습니다)’을 개발했어요. 하나씩 우리 실정에 맞게 한국형 토착프로그램을 만든 것이죠.”앞으로도 쉼 없이 연구하고 도전하며 환자와 함께하겠다는 홍지만 교수. 그의 확고한 철학이 담긴 연구들로 신경학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동그란 안경 너머, 홍지만 교수의 눈빛이 날카롭게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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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와 함께 숨 쉬는 ‘천생 의사’, 류마티스내과 김현아 교수

     류마티스내과 김현아 교수는 가녀린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매일 매일을 보내고 있다. 환자를 가족처럼, 애틋한 연인처럼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진료를 하다 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요동치는 감정을 고스란히 감당하며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대학교병원을 찾는 환자들과 함께 호흡하고, 몸은 물론 아픈 마음 돌보기에도 여념 없는, 그래서 많은 환자들이 믿고 찾는 김현아 교수를 만나보았다. 꿈 많은 소녀, 의사를 꿈꾸다마주 앉은 김현아 교수의 눈이 반짝거린다. 호기심과 명석함, 따스함, 수줍음이 여러 빛깔로 물든 눈빛을 보고 있자니 의사 이전의 삶이 절로 궁금해진다. 아마도 대단히 역동적이거나 모험이 가득한 시간들은 아니었겠지만 소녀 같은 이미지 속에 감춰진 금강석 같은 단단함이 범상치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 한 번도 부모님의 기대를 거스른 적이 없었던 모범생이자 문학소녀였던 그 시절의 김현아 교수는 고등학교 때 다른 또래처럼 자신의 미래에 대해 돌덩이 같은 고민을 짊어지고 있었다.“내가 평생 해야 할 일이 무엇일지 고민했던 시기였어요. 때마침 읽고 있던 책이 A. J. 크로닌의 <성채>와 <천국의 열쇠>였는데 무척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타인을 돕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자 하고 싶은 일이라고 느꼈고 당시 저는 생물학을 좋아하는 이과 학생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의사의 길을 택할 수 있었어요.”집안에 의사는 아무도 없었지만 부모님은 김현아 교수의 선택을 지지해주었고 그렇게 그녀는 무난히 의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그러나 현실은 소녀의 부푼 기대와는 달랐다. 특히나 암기할 것이 태산처럼 많은 해부학이라는 학문은 커다란 장벽이었다. 사람의 신체를 이루고 있는 무수한 뼈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우고, 심지어 뼈 안의 해부학적 구조까지 파악해야 했기에 그것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느껴졌다.“암기에 원래 취약했었거든요. 그렇게 바닥을 치고 있다가 본과에 진입하고 나서야 요령을 터득했고 그때부터 점점 나아졌습니다.”다행히도 김현아 교수는 스스로를 파악하고, 자신이 가야할 길의 방향을 알아보는 명석함을 갖고 있었다. 생리학과 면역학 등에 재미를 느끼는 와중에 수련과정을 거치면서 ‘내과 의사’로, 그 중에서도 ‘류마티스’로 조금 더 정확히 목적지를 설정해 나갔다. 아직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하는, 발이 충분히 닿지 못한 바다와 닮아 있었던 류마티스 분야가 크게 다가왔다. 아직 할 말과 할 일이 많은 학문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탐구정신을 충족해 줄 만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류마티스 전문의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누구보다도 스스로를 잘 알기에 내릴 수 있었던 결정이었다. 환자와 함께 산다, 환자와 함께 간다김현아 교수에게 환자는 함께 호흡하는 존재다. 김 교수에게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하는 순간, 환자는 ‘환자’에서 벗어나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동생, 언니, 오라버니, 자식으로 바뀐다. 그 덕분에 김현아 교수는 환자와의 인간적인 믿음을 나누며 열심히 치료하는 과정을 기쁨으로 삼을 수 있었고, 호전이 없는 환자와는 힘듦과 슬픔을 나누는 것이 가능했다. 진료시간이 짧아서 아쉬울 때도 많지만 그 짧은 시간을 쪼개 한 마디라도 더 전하느라 고군분투하는 그의 진심은 ‘선생님을 만나 호전이 되었다’는 따뜻한 마음이 담긴 편지로 돌아오기도 하고, 편의점에서 산 작은 캔커피가 선물로 돌아오기도 했다.이런 김현아 교수에게 특별히 잊을 수 없는 환자가 있다. 임신 30주차인 임산부로 류마티스와 같은 자가면역 질환인 루푸스로 병원을 찾은 환자였다. 처음에는 산부인과에서 제왕절개로 출산했고 출혈이 안 멈추는 위험한 순간을 이겨낸 뒤 감염내과를 거쳐 김현아 교수에게 오게 되면서 루푸스 감염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중환자실에서 한 달이나 머무르는 동안 아기는 인큐베이터에서 홀로 고된 싸움을 하는 엄마를 기다렸다. 그 전쟁 같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김현아 교수의 마음은 새까맣게 탔지만 결국 환자는 기적처럼 3개월 만에 건강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기가 엄마 품에 돌아간 것은 물론이다. 몇 달 간 가슴 졸였던 기억을 차근차근 꺼내놓는 김현아 교수의 얼굴에서는 그때의 긴장과 안타까움이 그대로 떠올랐다.“이렇게 내 일처럼, 내 가족이나 친구처럼 가깝게 생각하고 환자를 대하고 감정이입을 하고 있지만, 매 순간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 애정을 쏟은 만큼 작은 상처에도 쓰라리기 때문이지요. 최선을 다해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환자들도 있으니까요.”온 마음을 다해도 그 마음을 알 턱이 없는 환자의 보호자가 거칠게 항의를 하기도 하고, 치료를 하지 않다가 상태가 악화되어 환자가 찾아올 때면 환자와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을 한다는 김현아 교수.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그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믿고 있는 의사였다. 완치 없는 병, 류마티스 바로 알기처음 류마티스 분야를 선택했을 때만 해도 타 분야에 비해 정보가 많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많은 것이 변화했지만 김현아 교수는 여전히 더 많은 정보가 공유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완치가 쉽지 않은 질병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나 그 부분에 대한 홍보가 덜 되어 있기 때문에 단숨에 병이 치유되길 바라는 환자들이 여전히 많으며, 민간요법을 권유 받아 악화되는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이다.  “질병이 활성화되어 일상생활에 영향이 덜 미치게 하는 것, 관절염이 악화되어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치료하는 것이 제 치료의 핵심입니다. 루푸스의 경우에는 써야 할 약물이나 입원 횟수가 너무 많아지지 않도록 하고 통풍 환자는 발작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거죠. 이 병들은 면역질환이기 때문에 유전 요인, 환경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데 그 중 루푸스는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을 쏟고 있어요. 많은 루푸스 환자들이 아주대학교병원을 찾는 이유도 그 때문일 거예요. 환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체적인 학습 및 계발에 힘쓰고 있으며 정기적인 환자 모임을 통해 환자에게 직접적인 식습관 개선, 약물 치료법 등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의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올해 5월 성인형스틸씨 병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도, 아직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치사율이 높은 이 병을 홍보하여 보다 많은 환자들의 목숨을 구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김현아 교수는 앞을 바라보며 정진하는 삶을 살고 있다.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묻는 질문에 단칼에 ‘없다’고 답할 정도로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이 같은 태도는 의사로서의 삶을 조금 더 반듯하게 정리하고, 발전시키며 오직 환자만을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갈 목표만을 확고히 남긴다.“저를 찾는 환자분들에게 간곡히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병을 앓고 있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일 수 없느냐는 매우 중요한 삶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과를 찾는 분들이 겪는 병들은 완치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목표를 ‘완치’에 둔다면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 결국 병을 악화시키게 되지만, 질병 활성화가 되지 않는 상태를 목표로 둔다면 조금 더 의료진을 신뢰하고, 환자의 만족도도 높아져 행복할 수 있습니다. 부디 그걸 잊지 말아주세요.”긍정적으로 자신의 병을 바라본다면, 똑같은 약을 먹어도 몸에 잘 들 것이라며 김현아 교수가 보물 같은 ‘팁’을 주었다. 물론, “저와 함께 노력하자”는 말도 잊지 않았다.환자와 나란히 손을 잡고 걸어가는 의사의 길을 걷는 그. 김현아 교수는 고교 시절의 꿈을 이룬, 성공한 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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