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소중한 만남, 궁금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인터뷰로 만나보세요.
  • ham_s.jpg
    만나고 싶었습니다

    환자의, 환자에 의한, 환자를 위한 길을 걷다 - 흉부외과 함석진 교수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함석진 교수는 한창 진료 중이었다. 한번 들어간 환자는 좀체 나올 줄 몰랐고 그 과정을 몇 번 반복하자 약속했던 인터뷰 시간이 슬쩍 지나버렸다. 마지막 환자가 나왔구나 싶은 순간, 누군가 번개처럼 취재진 앞을 달려 지나갔다. “잠시만요!” 생리현상을 해결할 틈도 없이 환자들에게 몰입했던 그, 함석진 교수였다. 오늘의 인터뷰는 함 교수의 그 뒷모습만으로도 충분한 느낌이었다. 하얀 가운을 동경하던 소년, 의사가 되다 이과 공부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의대를 졸업했지만 흉부외과 함석진 교수의 느낌은 참으로 문과적이다. 단어 한 마디, 문장 하나가 소설처럼 풍성하고 윤기가 흐르니 평소 대화의 양이나 질이 참으로 높은 게 아닐까, 하는 짐작도 하게 만든다. 마주한 이를 목소리 톤이나 표정만으로도 무장해제 시키는 건 함석진 교수의 또 다른 장점이다. 환자입장에서는 구세주 혹은 저승사자라는 극단의 존재인 의사가 친근함과 소박함으로 다가온다는 건 몸의 치료, 그 이상을 받는다는 것일 테니 말이다. 불현듯 그의 진료시간이 왜 남보다 조금 더 길었는지 그 이유가 슬며시 납득이 간다. 함석진 교수는 폐 질환에 특화되어 있는 전문의이다. 폐암과 폐 이식, 다한증 등에서 풍부한 임상경험과 다양한 연구 및 논문 이력을 쌓아온 그는 어느덧 의사의 길을 걷게 된 지 20여 년을 바 라보고 있다. 수많은 환자들이 그가 빚어낸 손끝의 마술에서 생명을 되찾기도 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도 했으니 흉부외과의로서 뜻 깊은 삶을 살아왔음은 자명해 보인다. 함석진 교수가 의사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꽤나 낭만적이었다. “어릴 때부터 약국과 병원에 가면 기분이 편안했어요. 겨울에 약국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난로에 얹혀 있는 주전자에서 뽀얗게 김이 솟아오르는 풍경들이 굉장히 편안하게 다가왔습니다. 막연히 나도 흰 옷을 입고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의사가 되기 위한 첫발자국을 떼기도 전에 첫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의사가 되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한 것이다. “아버지는 심지어 의대에 진학한다면 학비도 주지 않겠다”고 했다며 함석진 교수가 껄껄 웃는다. 아들을 의사로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는 아버지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의사가 되겠다는 아들을 막아서는 아버지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 터라 눈이 동그래졌다. “아버지 생각은 이제 우리나라 경제사정도 많이 좋아져서 밥 굶는 사람이 없지 않냐, 그런데 의사가 되면 평생 공부를 해야 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니 너무 힘들지 않겠냐. 내 자식은 좀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셨던 거예요.” 전세가 바뀐 건 아들이 받아온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합격통지서 덕분이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축하인사와 축하전화에 그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걱정이 봄눈처럼 녹아버린 것. 합격까지 했는데 어쩌겠냐며 그제야 아버지는 마지못한 듯, 사실은 기쁘게 학비를 준비해주셨다.  환자를 위로하는 의사, 환자와 공감하는 의사 의대생으로서 함석진 교수의 삶은 꽤나 역동적이었다. 학교와 도서관만 오가는 범생이의 삶 대신 공부와 함께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에 더 역점을 둔 것. 많은 친구들을 만들고,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하는 와중에 오케스트라 동아리에서 첼리스트로 활동한 기억은 그에게 매우 소중하다. 흉부외과를 선택한 이유를 묻자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게 멋있어 보였다”라고 명쾌하게 답변을 준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이야기를 덧붙인다. “인턴 때 흉부외과 회진을 돌다가 수술 부위에 갑자기 출혈이 일어난 환자를 발견했습니다. 선배 선생님이 차분하게 지혈하고 바로 보호자에게 동의를 구해 수술방에 들어가서 조치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나 매끄럽고 순탄하게 흘러갔어요. 그때까지 봐 왔던 실습장면이나 다른 과를 돌면서 느꼈던, 생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의료행위와는 완전히 차원을 달리하는 풍경이었고 위급한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해 생명을 구했던 그 모습이 정말 멋있게 느껴졌어요. 그때 흉부외과를 가야겠다고 결정한 거죠.” 그 결심 이후 중년으로 넘어오는 세월 내내 흉부외과의로 살아 오면서 함석진 교수가 한결같이 지켜온 가치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대상은 ‘병(病)’이 아니라 ‘환자’라는 사실이었다. “저는 어떤 경우에서든 우선순위가 병이 되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암을 치료해야 하는 상황에서 환자는 빼고 오직 암만 보는 상황을 경계하는 거지요.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환자를 못 보게 되는 경우가 생겨요. 의사는 수술 뒤 환자가 살아갈 삶의 질이나 경제상황까지도 고려해야 하는데 병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런 걸 다 놓치게 되는 거죠.”실제로 6, 7년 간 꾸준히 함 교수에게 찾아온 암 환자가 사망한 뒤, 그 보호자가 일부러 찾아와 그간 가족처럼 위로해주고 공감해준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한 경우도 있었다. “환자에게 때로는 치료보다 더 중요한 게 위로나 공감입니다. 그러한 소통으로 환자가 좀 더 행복해지고 힘이 생긴다면 의사로서 그만큼 보람 있는 경우도 없어요.” 함석진 교수는 덧붙여 어떤 수술이든 환자의 상황에 따르는 맞춤형 치료가 되어야 한다며 그런 마인드로 치료를 하며 환자의 생존율을 최대로 높이기 위해서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다 폐 질환,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 흉부외과 전문의로서 최근 그의 진료는 폐암이나 식도암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폐암 수술의 경우 약 80%를 내시경으로 실시하고, 식도암은 로봇을 이용한다. 과거 ‘Big incision, Big surgeon.’ 즉 ‘훌륭한 의사는 크게 열어야 한다’고 해서 가슴 전체를 크게 열고 수술을 했던 때와는 양상이 많이 다르다. 폐암의 경우 옆구리 약 5cm 절개만으로 수술을 진행하고, 식도암은 손가락 굵기의 구멍 4개만으로 식도를 절제해 낸다. 폐 이식은 함석진 교수의 또 하나의 중요한 전공분야다. 사실, 폐 이식은 환자는 물론 일반 의사에게도 낯선 단어이다. 폐가 이식이 가능한 장기라는 걸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폐 역시 여러 질환들이 발생하여 이식이 필요한 경우가 많이 생기는데, 이때 가장 중 요한 것은 적절한 기증자를 찾는 것이라고.   “흉부외과에서 난이도가 제일 높은 수술이 폐 이식 수술입니다. 수술을 통해 기증자의 폐를 단순히 붙이는 것뿐만 아니라 수술 한 뒤 약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합병증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것 등 모든 의학적 지식이 총망라되어야 하는, 아주 난이도가 높은 종합예술인 거죠.” 폐 이식과 관련해 많은 임상경험을 갖고 있는 함석진 교수는 현재 법적으로 뇌사판정을 받은 사람에게만 기증받을 수 있는 폐의 경우 100명 중 겨우 10명 정도만 그 폐를 쓸 수 있고 그나마 그 기능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 기증된 폐를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기 위한 다양한 연구와 실험을 계속해왔다. “폐 이외의 타 장기들은 현재 의학 기술로 당분간 버틸 수 있는 인공장기가 있습니다. 투석이나 절제 등 다양한 치료법과 수술법들도 나와 있고요. 하지만 폐는 안 좋을 경우 치료도 까다롭고 생명과 바로 직결이 되기 때문에 보다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 해요.” 함 교수는 장기이식, 그 중 특히 폐 이식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너무 낮다며 다양한 홍보를 통해 보다 적극적인 기증자를 찾고, 폐 이식을 받아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인식이 보다 멀리 확산되길 바랐다. 마지막으로 함 교수에게 폐 건강을 위한 비결을 물었다. “진료를 보다 보면 폐암 수술을 받은 뒤에도 담배를 못 끊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폐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건 금연이고요. 적절한 운동으로 폐활량을 유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서 암 발생률이 높아 지는 것에 대한 대비책은 ‘빨리 발견하는 것’만이 답입니다. 흡연력, 폐암 가족력이 있다면 젊었을 때부터 정기적인 진단을 꼭 받 기를 바랍니다.” 유연하고 소박한 인간미와 날카롭고 치밀한 전문의로서의 상반된 매력을 가진 함석진 교수. 정확한 진료와 치료만큼이나 의사와 환자 간의 유대관계가 중요하다고 믿고 있는 그에게서 더할 나위 없는 신뢰의 향기가 깊고 짙게 느껴졌다.  

    자세히보기
  •  
  • leehw_s.jpg
    만나고 싶었습니다

    삶의 갈림길에 선 환자들의 몸과 마음을 보듬는 곳, 완화의료센터장 이현우 교수

      누구든 태어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 마냥 편안할 수는 없다. 아주대학교병원 완화의료센터는 말기 암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줄이고, 삶과 죽음의 질을 높이는 보건의료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곳이다. 그 막중한 역할 뒤에 숨은 사명감을, 완화의료센터장인 종양혈액내과 이현우 교수로부터 들었다.  몸의 치료를 넘어 정서적 지지까지 말기암 환자와 가족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과 고통에 직면할 때가 많다.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삶의 기로에 선 환자와 보호자들이 직면한 문제를 일찍 파악하고 평가하며, 신체 통증 이외의 기타 증상과 사회심리적, 영적인 문제를 포함한 고통을 덜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의미한다. 완치를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치료의 부작용을 줄이고 예방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아주대학교병원이 호스피스완화의료에 관심을 둔 것은 2007년의 일이다. 당시 개설한 통합의학센터는 보완요법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암환자를 대상으로 상담과 진료를 병행하는 역할을 감당해왔다. 2012년부터는 매년 ‘완화의료전문기관’으로 인증을 받았다. 이후 몇 차례 변화를 거쳐 아주대학교병원은 11병상의 완화의료 독립병동 운영을 시작했다. 국립이나 공공 기관이 아닌 사립병원인 대학병원에서 호스피스완화의료병동을 운영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 그러나 아주대학교병원은 경기도 유일의 ‘경기지역암센터’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암환자들의 돌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남다른 배려는 환자 1명당 간호 인력 1명에 달하는 환경에서 알 수 있다. 진료 주치의뿐만 아니라, 전담 사회복지사와 간호사, 성직자도 환자들의 돌봄에 참여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주치의가 동참하는 ‘마음건강클리닉’은 아주대학교병원 완화의료센터의 특징이다. 덕분에 2013년에는 국내 최초로 유럽종양학회(ESMO)가 인정하는 통합완화케어기관 인증을 받기도 했다.   환자의 삶을 이해하는 전인적 접근 오랜 기간 완화의료 주치의로 참여해오다 최근 센터장으로 부임한 이현우 교수에게도 이곳에서의 경험은 특별했다. 병동에서 만나는 환자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알게 되면서, 진료를 넘어선 인간적인 교감의 중요성을 체감한 것이다.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상상처럼 쉽지 않습니다. 환자들이 돌아가시기 두세 달 전에는 많은 증상이 나오고 심한 고통에 직면합니다. 그분들이 하루라도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희의 역할입니다.” 이현우 교수는 이곳 센터의 목표가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환자의 임종 후 가족들의 애도 역시 센터의 역할 중 하나다. 임종 직전에는 병동 내에 마련된 임 종실에서 가족들이 환자와의 마지막 작별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한다. “임종 직전은 의료진의 시간이 아니라 가족들의 시간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가족의 죽음을 처음 겪는 것이기에, 이에 대한 교육도 필요합니다. 환자의 임종 후에도 2년간 3개월에 한 번씩 전담 사회복지사가 편지와 전화 등으로 연락해 안부를 묻습니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융은 “죽음은 출생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죽음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크다. 이현우 교수는 이러한 인식의 벽을 허물기 위해, 완화의료센터장으로서 호스피스완화의료와 관련한 연구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와 함께 호스피스완화의료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에도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이 분야에 대한 전문가 육성이 곧 환자들과 가족을 돕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이 마냥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마음으로 한 방향을 바라보는 사명감 어린 동료들이 있기에, 그는 앞으로도 꾸준히 그 길을 걸어가려 한다.   

    자세히보기
  • choo_s.jpg
    만나고 싶었습니다

    비뇨기과 추설호 교수,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 환자를 널리 이롭게 하다

     추설호 교수는 병원에 들어서는 환자의 불안함을 상쇄시키는 힘을 가진 인물이다. 의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로 인해 삶과 죽음, 안도와 절망을 오가는 두려움에 대한 환자의 거부감을 진료실에서 가장 먼저 이해하고 위로하는 것이다. 공감의 한마디로, 따스하고 온화한 눈빛으로, 환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추설호 교수. 그가 가진 실력은 그 따스한 반석 위에서 더욱 큰 힘을 발휘하는 중이다. 선택하고 나니 운명이었던 길 사람은 누구나 목표를 갖고 산다. 그러나 목표를 다 이루고 난 그 뒤에 무엇을 할 건지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당장의 눈 앞 목표가 바쁘고 급하기도 하지만 목표 달성 후에는 여유와 행복이 올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중고등 학교 시절 내내 1등을 놓치지 않고 대학에 들어가 아주 오랜 기간을 공부하고 노력한 끝에 의사가 된 기쁨도 잠시, 숨 가쁘게 진료와 수술을 반복하는 일상 속에서 초심과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잊지 않아야 하는 의사의 길은 그래서 고되다. 비뇨기과의 추설호 교수는 쉽지 않은, 힘든 의사의 길에 온화함과 세밀함이라는 발판을 차곡차곡 놓아 걷는 인물이다. 공대를 진학할까 했다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의미 있는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의사의 길로 들어선 그에게서는 특유의 상냥하고 반듯한 분위기가 풍겨 나온다. “아버지의 권유로 들어온 의대였지만 막상 들어오니 재미도 있었고 적성에도 잘 맞았습니다. 공부도 양이 많아서 힘들었지 그 자체의 난이도도 괜찮았어요(웃음).” 비뇨기과도 수술을 좋아했던 자신의 취향과 지향점이 빚어낸 선택이었다. 보다 많은 분야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싶었던 욕심에 부합했던 과가 바로 비뇨기과였기 때문이었다.“학생 때부터 수술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런 수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사실 수술을 할 수 있는 과는 많았지만 비뇨기과를 선택을 한 이유는, 기본적인 진료부터 복잡한 수술, 항암치료까지 전반적으로 다 다루기 때문이었어요. 수술을 하면 좋아지는 게 눈에 보이는 것도 굉장히 보람 있게 느껴졌고 또 제 스승님께서 비뇨기과 수술을 굉장히 멋있게 하시는 분이셨기 때문에 닮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의사 추설호 교수는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수술을 잘하는 의사 중 하나로 손꼽힌다. 특히 아주대학교병원에서 도입한 4세대 로봇인 Xi로 펼치는 정교한 수술은 많은 환자가 추 교수를 찾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2008년도 전공의 시절에 로봇수술을 처음 접했고 복강경과 함께 로봇수술을 트레이닝 했습니다. 최근 아주대학교에서 Xi를 구입하면서 한층 더 세밀하고 안전하며 상처가 적은 수술이 가능하게 됐지요. 실제 로봇수술에 대한 자료를 봐도 신장암이나 전립선암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의 경우 부작용이 제일 낮다고 되어 있습니다.”수술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은 물론 더 정교하면서도 빠른 회복이 담보되는 로봇수술이지만 이 또한 거저 얻어 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수술을 하는 입장에서 수술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의사가 갖춰야 하는 사명감이자 무거운 숙제로 늘 주어지기 때문이다.   “간단한 수술은 별 무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복잡하고 어려운 케이스의 수술은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꾸준한 공부가 필요해요. 잘 된 수술의 비디오를 계속 돌려보고 CT 를 보면서 계속 이미지트레이닝을 해야 하는 거지요. 변수까지 완벽히 계획을 구상하고 들어가야 하는 겁니다.” 이 말은 추설호 교수가 후배들에게 하는 당부와도 잇닿아 있다. “기본 실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 지속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조언합니다. 같은 질환에서도 새로운 치료법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쉬지 않고 지식을 업데이트 하는 게 중요해요. 유튜브에 웬만한 수술 사례가 올라와 있기 때문에 특히나 복잡한 수술은 모든 수단을 이용해서 꾸준히 공부를 하라고 당부하고 있어요.”  나날이 중요해지는 정기 건강검진 문득, 쉬지 않고 공부하는 추설호 교수가 갖고 있는 추억들이 궁금해진다. 의사이기 때문에 환자에 대한 기억이 당연이 압도적일 터, 추 교수는 어떤 환자를 마음에 품고 있을까? “대부분의 의사가 아마 비슷할 거예요. 수술에 성공한 환자보다는 잘 안 된 환자가 기억에 남습니다. 잘 된 분들은 잘됐구나, 하면서 그냥 흘러가는데 그렇지 않은 분들은 안타까움과 동시에 제 수술에 대해 자꾸 뒤돌아보게 되기 때문에 오래 기억에 남죠.” 2살, 4살 아이를 가진 방광암 말기 여자환자에게 수술을 권했지만 다른 병원으로 옮겨 항암치료를 받다가 걷잡을 수 없이 암이 퍼진 환자. 결국 다시 찾아왔지만 이미 수술시기를 놓쳤던 환자의 이야기를 추 교수가 천천히 오랫동안 들려준다. 추 교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는 환자들이 생길 때 마다 그 다음 환자들은 더욱더 열과 성을 다해서 진료하고 수술을 해왔다고 털어 놓는다. 신이 정해 놓은 영역에 대한 한계는 분명히 있겠지만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의사로서 스스로에게 후회나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현대인에게 비뇨기과는 찾아가야 할 일이 자꾸 늘어나는 대표적인 과 중 하나가 되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소위 말하는 현대병에 속하는 질환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수명이 짧았을 때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70~80세가 되면 호르몬에 문제가 생겨 전립선이 커집니다. 전립선 비대증이 오는 겁니다. 나이가 들면서 배뇨 장애, 야간뇨도 하나 둘씩 생기는데 야간뇨는 실제로 치료가 잘 안 되는 병이기도 해요. 남성호르몬에 계속 노출이 되면서 생기는 병이니까요.” 추 교수는 전립선 비대증은 40대, 50대부터 정기검진을 하고 전립선 약을 먹으면서 조절해야 하고, 전립선이 너무 커진 환자는 수술해야 한다고 단호히 이야기를 한다. 방치하면 후에 방광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빨리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술을 하자고 하면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는 환자가 많아요. 지금 당장은 괜찮게 느껴지니까요. 하지만 오래 살 시간을 대비해서 조금 더 젊을 때 수술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정기적인 건강검진은 필수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좀 더 나은 환자의 삶을 위하여 추 교수는 치료와 수술을 통해 환자 삶의 질을 올려놨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 보람은 남들보다 더 오래 걸리는 수술시간, 더 많은 고민으로 인해 좀 더 부피를 키워간다. “수술실에서 끝까지 제대로 해야 나중에 문제가 안 생깁니다. 수술실에서 30분, 한 시간을 더 투자해서 제대로 해주면 환자가 평생을 편하게 살 수 있어요. 수술실에서 힘들고 지친다고 해야 할 것을 조금 소홀히 하면 환자는 그 미비한 부분 때문에 평생 병원을 오갈 수 있으니까 힘들어도, 지쳐도, 가능하면 끝까지 가는 겁니다.” 인터뷰 시간 내내 인간으로서의 매력과 의사로서의 매력이 일치할 거라는 확신을 줬던 추설호 교수. “꼭 선비 같다”고 이야기를 건네자 “우리 아주대학교병원 비뇨기과 선생님들이 다 온화하고 친절한 성향을 가진 분들이시다 보니 저까지도 그렇게 묻어가는 거 같다”며 손을 휘휘 젓는 모습에서 작은 호의조차도 혼자 받기 민망해 하는 그 품성을 엿본다. 내게 오는 환자, 수술 받는 환자들이 자신의 치료와 수술로 인해 더 행복해지길 바란다고 이야기하는 추설호 교수에게 하루 24시간은 환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주어진 소중한 자산이다. 

    자세히보기
  • im_s.jpg
    만나고 싶었습니다

    생화학교실 임인경 교수, 국내 생명과학계 대표 학회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회장 취임

     2017년 1월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임인경 교수가 제26대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장에 취임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생명과학회를 이끌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된 임인경 교수는 학회의 활성화와 회원 간의 적극적인 교류로 국내 생명과학계의 새로운 장을 열 계획이다. 사회적 책임이라는 생각으로 맡은 소임 2017년 새해에도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생화학교실 임인경 교수는 더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국분자·세포생물학 회의 회장으로 임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 사회적인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소임을 맡았습니다. 큰 봉사이기 때문에 나를 위한 시간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의 과학 발전을 위해서 헌신할 생각입니다. 저를 키워준 많은 분에 대한 보답이라고도 생각해요.”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는 현재 대한민국 생명과학계를 이끌어 가는 대표학회다. 이학 및 농수산 등의 기초생명과학과 의약학 분야의 응용연구와 교육을 선도 하는 연구 단체로 4,000명 박사학위 소지자 정회원과 학생회원, 단체회원 및 산업체 등을 포함하여 13,000여 명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공식 학술지 ‘Molecules and Cell(Mol Cells)’은 국내에서 발간되는 생명과학분야 학술지로서는 최초로 SCI에 등재된 학술지로, 발표편수 및 인용 횟수가 가장 높은 대한민국 대표 학술지이다. 이렇듯 권위 있고 영향력 있는 학회의 28대 회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 임인경 교수는 의학계의 잘 알려진 여성 파워이다.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장과 의학전문대학원장을 지냈고, 현재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생화학교실 교수로 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하는 한편 한국과학기술 한림원 정회원, 한국재단법인 호암재단 이사, 대한암학회 부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의대생 시절 가족을 두고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젊은 암 환자를 보았습니다. 그때의 충격과 안타까움이 저를 암 연구에 매진하게 하였죠. 임상뿐 아니라 기초과학에서부터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 지금의 저를 있게 했고, 한국분자 세포생물학회의 소임까지 맡게 되었어요.”  학회 활성화는 생명과학계 발전의 초석 임 교수는 부드럽고 여려 보이는 인상과 달리 시작부터 몸이 열 개라도 어려울 일을 완벽히 소화해내고 있다. 1월 5일 지방 분과학회 참관을 시작으로, 1월 17일부터 3일간에 걸쳐 용평에서 열린 동계학술대회까지 성공적으로 치러낸 것. “올해 중점을 두고 추진하겠다 생각한 것이 Year Round Scientific Festival이에요. 연중 계속되는 학회라는 과학축제를 통해 회원 간의 소통과 교류가 활발해지고, 유대가 굳건해질 거라 생각합니다. 그 정점은 올해 9월 코엑스에서 열릴 국제학술대회예요. 이런 모든 활동들은 학계의 깊이 있고 수준 있는 연구로 열매 맺게 될 것입니다.” 임 교수는 회장 취임과 함께 다양한 학회 활동을 위해 금년에는 20개 위원회를 만들었다. 위원회는 92명의 교수로 구성된 임원들로 학회 실무를 이끌어가게 된다. 회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지방학회를 참관하고 행사를 적극적으로 챙기는 것도 같은 이유다. 지방 학회와 중앙 본부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라는 인식을 위한 것이다. 이외에도 차세대 과학 인력을 양 성하기 위한 여름캠프, 출판활동 등 학회가 해야 할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학회 회장이라는 중임을 맡은 오늘도 변함없이 임 교수는 연구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현미경으로 암세포를 관찰하고 있다. 창조주가 만들어준 자연의 질서와 무질서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학자로서의 소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분자세포생물학은 현대 생명과학의 근간을 이루는 현대의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학문을 통해 인류는 암이나 치매와 같은 병을 극복하고, 더 건강하게 살아가는 길을 열어가게 될 겁니다. 그 변화의 한 축인 학회를 맡아 열심히 봉사할 생각입니다.” 의학자로서 다져온 내공과 강인함, 여기에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이 더해져 대한민국 생명과학계의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될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자세히보기
  • interview_s.jpg
    만나고 싶었습니다

    아주대학교병원 로봇수술팀을 이끄는 김욱환 교수

      남다른 관점과 풍부한 노하우로 일군 로봇수술 명가아주대학교병원 로봇수술팀 2016년 7월, 아주대학교병원 로봇수술 누적 건수가 4,000례를 돌파했다. 이는 로봇수술 시행 7년 9개월 만에 이룬 성과다. 2017년을 맞이한 지금, 아주대학교병원의 로봇수술 사례는 이미 5,000례에 성큼 다가섰다. 기록 경신이 갈수록 빨라지는 배경에는 아주대학교병원의 로봇수술 노하우가 한몫하고 있다. 로봇수술센터를 이끌고 있는 김욱환 교수를 만나 로봇수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양한 사례에 적용 가능한 로봇수술 아주대학교병원이 로봇수술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8년 10월의 일이다. 국내에도 로봇수술이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 아주대학교병원은 과감하게 기기를 도입했다. 김욱환 교수를 비롯해 로봇수술에 관심을 둔 의료진이 수술용 로봇을 만드는 다빈치 본사가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교육을 받았다. 첫 번째 로봇수술 사례는 위암이었지만, 적용 범위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아주대학교병원은 담낭절제 및 담도종양 제거, 갑상선 적출, 위암, 자궁근종 절제, 자궁암, 전립선, 신장 절제, 난소종양절제, 대장 및 직장 절제, 췌장 관련 수술 등 다양한 사례에 로봇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로봇은 여러 면에서 장점이 있다. 관절을 지닌 로봇 팔은 몸 속에서도 움직임이 자유롭다. 카메라 덕분에 영상을 15배 이상 확대해서 볼 수 있는 데다, 수술 중 간혹 발생하는 의사의 팔 떨림도 보정해준다. 이 때문에 정교한 수술에서 강점을 발휘한다. 뿐만 아니라, 로봇수술은 개복수술과 비교해 회복 기간이 짧고 흉터가 작아 일상생활 복귀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합병증 발생 확 률도 7분의 1 수준으로 낮다. 로봇수술이라는 명칭 때문에 ‘로봇수술=자동화 수술’로 오해하는 이들이 간혹 있다. 로봇수술은 전적으로 의사의 통제 아래 이루어진다. 김욱환 교수는 “로봇도 복강경처럼 수술의 보조도구 일 뿐”이라고 말한다. 아직은 기술이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수술용 로봇을 개발하는 기업 수가 늘어나고 기술 경쟁이 생기면 언젠가는 우리가 상상하는 로봇수술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로봇수술 5,000례 달성 눈앞 어느덧 로봇수술을 도입한지 8년여. 2012년 2월 1,000례를 달성한 이후 다음 1,000례를 돌파하는 시간은 점차 단축되고 있다. 김욱환 교수는 지난해 여름 4,000례를 달성한 아주대학교병원이 머지않아 5,000례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아주대학교병원은 제4세대 수술용 로봇인 다빈치 Xi를 도입했다. 이전 세대인 다빈치 Si는 정해진 각도 안에서만 사용해야 했지만, 다빈치 Xi로 넘어오면서 각도의 한계를 벗었다. 이처럼 최신 장비를 도입하면서 아주대학교병원의 로봇수술은 더욱 날개를 달았다. 하지만 김욱환 교수는 아주대학교병원이 로봇수술에 강한 이유를 다른 데서 찾았다. “아주대학교병원에는 로봇수술에 특화된 의료진이 다수 모여 있습니다. 새로운 기능이 많을수록 의사들은 더 오랜 적응 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우리 병원 의료진은 이미 로봇수술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각 과별로 노하우를 자연스럽게 전수하고 있습니다.” 창의적인 접근방식도 로봇수술 분야에서 아주대학교병원의 명성을 높이는 요소다. 김욱환 교수는 세계 최초로 횡경막 손상이 없는 ‘비키니 라인 로봇수술법’을 고안했다. 배꼽 아래 5~10cm 지점에 구멍을 뚫고 로봇 팔을 넣어 수술하는 해당 방식은 환자가 느끼는 통증이 적고 회복도 빠르다. 담낭절제에 로봇을 사용하는 사례는 아주대학교병원이 유일하다. “수술 시간이 짧아 간단해 보이지만, 로봇수술에도 의사의 경험이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수술용 로봇에 새로운 기능이 추가될수록 오히려 진입장벽은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실제로 아주대학교병원은 해외 의사들을 대상으로 로봇수술 유료 참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비용을 들여서라도 수술을 배우러 오는 의사가 있다는 사실은, 아주대학교병원의 로봇수술 역량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지금도 아주대학교병원에서는 로봇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실력은 단기간에 쌓이지 않는다. 남다른 관점과 풍부한 경험을 지닌 아주대학교병원이 로봇수술의 명가임을 증명하고 있다. 

    자세히보기
  • 서해영s.jpg
    만나고 싶었습니다

    해부학교실 서해영 교수팀, 한미약품과 손잡고 암 정복의 새 지평을 열다

      해부학교실 서해영 교수팀, 한미약품과 손 잡고 암 정복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지난 12월 5일, 아주대학교 율곡관에서는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한미약품 이관순 대표이사와 손지웅 부사장, 아주대학교 김동연 총장과 유희석 의무부총장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서해영·김성수 교수팀과 한미약품이 교모세포종 줄기세포치료제 도입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한미약품과의 협력을 통해 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싶다고 밝힌 서해영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교모세포종 줄기세포치료제 개발아주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의 서해영 교수와 한미약품의 인연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 필연으로 가기 위한 우연이라는 말이 가장 적당하다. 올해 초 한미약품에서 개최한 오픈이노베이션에 참석했었던 서해영 교수에 대한 한미약품의 관심이 오늘의 기술이전 협약으로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현재 시판되는 줄기세포치료제와는 달리 저희 연구팀의 치료제는 유전자가 이입된 줄기세포치료제로서 생산과정이 복잡해서 기업에서는 개발이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연구실에서 직접 생산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어요. 오픈이노베이션을 기점으로 한미약품에서는 저희 팀의 연구에 관심을 가졌고 줄기세포치료제 연구개발의 성숙도가 높은 상태였음을 알게 되면서 상당히 빨리 협약이 진행됐습니다.” 서해영 교수팀이 개발한 줄기세포치료제는 건강인에서 추출한 골수 유래 중간엽 줄기세포에 사이토신 데아미나아제(Cytosine Deaminase) 유전자를 삽입한 것으로, 현재 후기 전임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2017년 교모세포종 대상 국내임상 1상을 앞두고 있으며, 이후 뇌종양을 비롯해 다양한 암종으로 적응증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번 아주대학교와 한미약품과의 협약으로 인한 기대효과는 명확하다.“줄기세포치료제는 지금까지 4종류가 시판 허가되었는데 대부분 환자 자신의 몸에서 뽑아 키워 다시 집어넣는 자가치료제이거나, 제대혈에서 분리한 세포를 이식하는 등 아직 시술의 개념이었습니다. 우리가 개발한 건 동종치료제로서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약처럼 대중화되고 일반화될 수 있는 치료제인 거죠.”물론 완전히 일반화가 되기까지의 길은 결코 만만치 않다. 현재 서해영 교수팀에서 만든 치료제는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공정에 개선할 점이 많은 것. 줄기세포를 키우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생산의 제약이 많기 때문에 그것이 해결된다면 보다 광의(廣義)의 일반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서 교수의 설명이다. “비용을 낮추는 거 자체가 또 하나의 사이언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이번 한미약품과의 협약은 암 정복을 위한, 암환자를 위한 더 큰 세상으로 가기 위한 탄탄한 지지대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실용화와 기초연구,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서해영 교수는 우리나라 줄기세포 연구 역사와 그 맥을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무엇보다 줄기세포 연구가 초기에 다른 과학 영역과는 달리 상업화 쪽으로 나아가다보니 대표성 있는 학회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때 한국줄기세포학회 회장을 맡은 그가 학회를 하나로 모으는 대의를 실천한 것은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일이었다.  “초기에는 거의 모든 학교에서 학회를 열었어요. 그러다보니 학회가 너무 많아졌고 굉장히 비효율적이었지요. 제가 회장직을 맡으면서 학회들을 하나로 모았고 지금은 굉장히 큰 학회가 됐어요. 초기에는 100~200명쯤 됐던 회원이 지금은 1,000명으로 늘어났으며 모든 관련자가 학회를 중심으로 모여들고 발표도 하고 정책제안도 하는 아주 큰 조직이 된 거죠.”서 교수는 우리나라 줄기세포 기술 수준은 실용화 쪽으로는 거의 최정상 수준이지만 거기에 너무 치중하다 보니 기초과학 연구가 부족한 것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향후 새로운 줄기세포 연구개발을 통해 새로운 산업화 모델을 이루어보고 싶습니다. 지금 대학에서 개발된 우수한 아이디어가 실용화되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됩니다. 그 과정에 대부분의 기술이 사장되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실용화까지 갈 수 있도록 개발자가 연구원으로 남아 본인이 학창시절부터 개발한 기술을 개선시키고 성숙도를 높이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저는 저희 연구실이 그런 새로운 사례를 만들어 내고 또, 저희 연구실의 모든 이가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로 어떤 식으로든지 꼭 보상 받기를 바랍니다.”이야기 내내 시종일관 소녀 같은 미소와 열정을 감추지 않은 서해영 교수. 보다 진화한 줄기세포 치료제를 통해 암환자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하고, 연구자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길을 열어주고 싶다는 그의 꿈이 이번 한미약품과의 협약으로 인해 활짝 꽃피우길 소망해본다. 

    자세히보기
  • 김상현s.jpg
    만나고 싶었습니다

    많이 듣고 정확히 진료하며 꼭 필요한 것만 치료한다 - 신경외과 김상현 교수

      병원을 찾는 모든 환자는 누구나 회복과 완치에 대한 꿈을 갖고 찾아온다. 그러나 말 그대로 ‘꿈’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가장 잘 아는 것 또한 환자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에게 굵은 동아줄을 내미는 것은 의사의 사명이지만 김상현 교수에게는 사명을 뛰어 넘어, 삶에 스며든 일상이다. 희망을 품고 찾아오는 환자에게 매 순간 최선의 결과를 주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신경외과 김상현 교수. 그의 명성은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소년, 의사가 되다6살 꼬마는 눈물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집안의 막둥이로 사랑 받으며 늘 꼬물꼬물 엄마 옆에 붙어 자던 소년에게 병원으로 실려 가는 엄마의 모습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자 죽음에 대한 공포였던 것이다. 당시 충수돌기염 파열로 인한 복막염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엄마는 가까운 산부인과에서 새벽에 불려나온 의사선생님에게 바로 수술을 받았고 다행히 무사히 회복할 수 있었다.어린 꼬마에게 이 하룻밤의 기억은 참으로 강렬하게 남았다. 매일 병원 앞을 지날 때면 기웃 기웃 엄마를 살려준 의사선생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애썼고 고맙고 감사한 그 마음은 소년에게 “나도 커서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될 거야”라는 꿈을 안겨주었다.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한눈을 팔아본 적이 없었던 그 꿈은 소년을 청년으로, 학생을 의사로 만드는 가장 단단한 반석 역할을 톡톡히 해낸 셈이었다.의대에 입학한 뒤에도 김상현 교수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분야에서 꼭 일을 해야겠다는 다짐은 그로 하여금 심장을 수술할 수 있었던 흉부외과를 선택하게 한 것. 그러나 인턴 과정에서 그는 신경외과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 신경외과 과장님을 비롯 주변의 모두가 “어차피 힘든 걸 할 거면 우리에게로 오라”는 설득 때문이었다.선택은 자신의 몫이었지만 어쨌든 흉부외과를 하리라 마음을 먹고 있다가 전공을 바꾼 김상현 교수는 레지던트 2년차 즈음 신경외과 의사로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당시 뇌종양을 앓던 8개월 된 소아를 돌보고 있었어요.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고 당직일 때는 밤새도록 침대 옆에서 떠나질 못했죠. 그랬더니 아이가 바뀌더라고요. 같은 환자라도 주치의가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 신경외과 의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하고 인내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결과가 나쁘더라도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정말 중요한 거라는 걸 알게 된 거죠.”6개월도 못 산다고 했던 아기는 8개월을 더 살고 결국 세상을 떠났지만 곁에서 밤을 새우며 작은 아기를 돌봤던 그 기억은 김상현 교수로 하여금 신경외과의로서 삶에 대한 지표를 세우게 만들었다. 환자를 위한 가장 좋은 선택지금도 그렇지만 김상현 교수는 처음부터 수술을 참 좋아한 의사였다. 레지던트 때 신경외과 동기들이 400~800건의 수술을 할 때 그는 3,000건을 했으니 그냥 수술방에서 살았다고 보는 게 정확했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수술부터 시작해 “다음 수술도 네가 할래?”하면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네!”하고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레지던트 때 이미 척추 수술을 2,000건이나 했다니 신경외과의 척추 은사님이 그를 탐낸 건 일견 당연한 결과였다. 엄청난 추진력을 갖고 있었던 은사님은 뇌종양 쪽으로 진로를 정한 그를 데려오기 위해 앞장서 조용히 주변을 정리(?)해줬고 탐냈던 김상현 교수를 척추 쪽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생각해보면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던 6살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삶은 자신의 의지와 주변의 상황에 의해 때로는 목표대로, 때로는 자신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그 끝은 늘 ‘생명’과 잇닿아 있던 셈이었다.2010년 국내 최초로 키아리증후군이 있는 척추측만증 환자를 대상으로 흉추 측만증 교정 수술에 성공하고, 2011년 도무오이 전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을 치료했던 일은 대한민국 의료계와 환자들에게 ‘신경외과의 김상현’이라는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킨, 본인은 예상하지 못했던 일종의 사건이었다.  “키아리증후군과 척추측만증이 함께 있는 경우 치료를 기존방식으로 하면 상처도 크고 마비가 올 수도 있으며 회복이 어렵고 일상생활도 힘듭니다. 저는 당시 그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수님들의 수술방법을 보러 3개 기관에 연수를 다녀온 상태였어요. 그런 상황에서 미세침습수술의 도입이 기존의 수술법 보다 안전하고 마비나 상처도 적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수술을 시도했죠.”수술은 성공적이었고 13세였던 환자는 큰 상처 없이 이후 키가 7cm나 자라면서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고 김상현 교수가 잔잔히 입꼬리를 끌어 올린다. 수술의 성공이 아닌 회복한 환자의 삶을 뿌듯해하고 대견해 하는 미소다.베트남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한 도무오이 서기장 수술 역시 드라마틱했다. 갑작스럽게 병원으로 찾아온 베트남 사람들이 누군지도 몰랐고 치료할 환자는 더더군다나 몰랐던 상황. 환자가 베트남 고위직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그 위력을 느낀 건 급하게 도착한 베트남 공항에서부터였다. 비행기에서 여권을 달라고 하더니 게이트고 심사고 뭐고 없이 그냥 바로 병원으로 직행을 한 것.“환자가 당시 95세로 노령이었고 6개월 간 걷지를 못해서 거의 누워 지내던 상황이었죠. 누구도 상황이 나빠지길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는 분위기였어요.”그런 상황에서 김상현 교수는 당시 새로운 수술기법이었던 레이저 추간판 감압술을 시행했고 이를 통해 환자는 수술 당일에 바로 걷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그 뒤 호치민 병원은 김 교수가 수술에 썼던 장비와 수술기법을 도입했고 우리나라는 우연찮게도 베트남 사업에서 4조원짜리 건설 수주를 받는 등 경사가 잇달았으니 서기장 수술 성공과의 연계성을 부인할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베트남 수상이 내한했을 때 김 교수가 청와대 만찬에 초대 받고 외교통상부의 표창을 받은 것은 부수적인 일이었다. 치료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척추 명의로 명성을 얻고 있는 김상현 교수지만 그 명성이 반드시 수술에서 비롯되지는 않는다. 노화로 인한 척추 질환과 질병으로 인한 척추 질환을 명확히 구분해 관리 혹은 치료를 하고 환자를 대하는 그만의 방식은 그의 이름을 살아있는 가지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게 했다.“척추는 누구나 병이 생길 수 있고 누구나 아플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아프다고 해서 다 병이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노화도 있거든요. 피부에 주름이 생기듯 노화와 질병은 엄연히 구분을 해줘야 합니다. 제 원칙은 질병일 경우에만 치료를 하는 겁니다. 노화로 인해 불편한 건 관리를 잘해서 치료 없이 자신의 척추를 보존하는 것이죠. 저는 수술이 잘된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듣는 것보다 다른 병원에서는 수술하자고 했는데 여기 와서 수술을 안 해도 된다며 기뻐하는 환자들의 모습에 더 감사함을 느껴요.”또 하나, 그는 첫인상의 깐깐함과 달리 환자를 매우 편하게 대하는 의사였다.“회진을 돌 때, 진료를 할 때 저는 늘 환자가 하고 싶어 하는 얘기를 다 듣습니다. 의사는 캐내는 게 아니라 환자가 주는 대로 받아먹는 사람이에요. 환자가 하고 싶은 말, 불편한 걸 말해야 내가 정확히 알 수 있는 거니까 충분히,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할 때까지 모두 다 들어줘야 합니다. 시간에 쫓겨서 환자의 이야기를 덜 들으면 정확한 진단이 어렵고 과하게 치료하거나 덜 치료할 수 있어요.”김상현 교수는 “많이 듣고 정확히 진료, 진찰한 뒤 꼭 필요한 것만 치료한다”며 척추는 정상적인 건 잘 살려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손을 안대고 치료할 수 있는 게 가장 좋은 거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오직 진단과 치료, 수술에만 집중하는 그의 스타일은 VIP 환자에 대한 압박감 역시 당연하게 소멸시켰다. 일단 수술에 들어가면 VIP든 아니든 신경을 안 쓴다는 것. 수술 환자의 30%가 교수님, 학장님 등 지인인데 들어갈 때 마다 긴장하고 떨면 어떻게 치료를 하겠냐고 반문을 하는 그를 보면서 그가 왜 명의일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답을 다시 한번 구한다.“치료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오직 병, 환자밖에 안 보입니다. 고민과 생각은 수술 전에 다 끝내고 일단 수술이 진행되면 계획대로 착착 해 나가는 거예요. 변수조차도 전부 수술 전에 계산을 끝내놓는 거죠.”좀 더 완성도 높은 수술을 향한 끝없는 연구와 열망, 남들이 포기할 때 홀로 포기하지 않고 밤을 지새우는 몰입…. 생명과 회복에 대한 그의 뜨거운 열의는 오늘도 환자의 꿈과 희망에 닿고 있다. 

    자세히보기
  • 글자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