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 : 사람이 중심이 되는 아주대학교병원, 사람으로 치료 받는 감동이 넘치는 휴먼 스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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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원 풍경과 그 안의 사람들

    아픔 나누며 함께 웃는 세상을 꿈꿉니다

      아주대학교의료원 의료봉사동아리가 지난 1월 6일부터 10일까지 4박 5일 동안 필리핀 세부에 위치한 밍글라닐라 보이스타운에 의료봉사 활동을 다녀왔다. 이곳은 저소득층 청소년 약 2,400명이 숙식하며 기술 교육을 받는 학교다. 의료봉사동아리 해외 의료봉사진료환자 435명(내과 123명, 소아청소년과 112명, 산부인과 51명, 응급의학과 110명, 소아정형외과 39명)참 여 자 내분비대사내과 정윤석 교수, 소아청소년과 배기수 교수, 산부인과 김미란 교수, 응급의학과 박은정 교수, 간호본부 외래A 최정순 파트장, 10층 이식병동 이희정 파트장, 혈액투석실 안희정 계장, 응급집중치료실 안정은 간호사, 진료협력센터 이세민 파트장·안예슬 주임간호사, 이승용 방사선사, 시설관리팀 이양석 계장 등 12명   01 함께한 모든 시간 행복했습니다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1개월 이상 기침 증상이 있었다는 말에 흉부 엑스선 검사를 시행했다. 그 결과 성인 4명에게 결핵이 의심되어 즉시 근처 결핵 보건소에서 치료를 받도록 안내했다. 평소 밤에 소변을 자주 보거나, 체중 감소 증상을 동반하는 당뇨병 환자도 새롭게 4명이나 확인했다. 이들에게 당뇨병 식이요법과 약제를 처방하고, 만성질환을 관리받도록 당부했다. 갑상선 질환자의 경우, 크기가 작고 변화가 없는 결절 환자는 추적관찰 진료를 받도록 했다. 갑상선 종양 크기가 8cm로 계속 커지고 있는 18세 남자 환자는 수술이 필요해 보여,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알아보기로 했다.의료 혜택에서 소외된 저소득층 현지 학생들, 주민들에게 의료봉사 활동을 펼치며 큰 보람을 느꼈다. 회원 모두가 자비로 휴가 시간을 내서 봉사활동에 참여해 감사하고, 모두 안전하게 잘 마치고 돌아와 기쁘고 너무 감사하다. 해외 의료봉사는 우리 모두에게 큰 행복이었다.정윤석 의료봉사동아리 회장(내분비대사내과)     02 더 나은 의료봉사를 위해 고민합니다진료한 소아나 청소년들은 주로 급성호흡기, 급성장염, 피부질환 등의 증상을 보였다. 이곳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피부질환이 많은데, 무좀으로 인한 화농성 피부염, 농피증, 옴, 머릿니 등 방치하면 증상이 심해질 수 있는 경우도 상당수였다. 옴 환자들은 전신에 부스럼과 같이 긁은 상처가 남아 있었고 무척 가려워했다. 진드기과에 속하는 옴은 눈에 잘 보이지 않고 피부 각질층 내부를 파고 다닌다. 옴 치료가 어려운 이유는 개인생활을 하는 사람과 달리 집단생활을 하는 경우, 옴벌레가 피부 접촉뿐만 아니라 옷·침구류를 통해 주변 사람에게 전파되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옴이 있는 학생들을 모두 치료해도, 방학 때 집에 다녀오면 또 옮겨 오기 때문에 관리가 어렵다.의료봉사를 다니며 환자에게 어떻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한다. 우리 봉사단은 각자 경험한 보람과 아쉬움을 나누며, 더 나은 봉사를 위해 머리와 가슴을 나눌 것이다.배기수 교수(소아청소년과)    03 우리 마음이 더 따뜻해졌어요응급의학과에는 간단한 상처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가 많이 찾아왔다. 피부 감염 환자, 내향성 발톱 환자도 많았는데 일부 환자는 증상이 오래되어 수술이 필요했다. 다음 봉사에 수술이 가능한 의료진이 동행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지역 특성상 소아, 특히 저체중아 진료에 특화된 의사도 필요해 보였다. 또 학생들에게는 다치면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간단한 상처 소독법과 치료법도 교육했다.아직도 세상에는 의료적 도움이 필요한 곳이 많다. 우리가 방문한 곳의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에도 열심히 생활하며 행복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봉사’라는 이름으로 찾은 그곳에서 우리의 마음을 더 많이 치유받고 돌아왔다.  박은정 교수(응급의학과)   04 해외 의료봉사는 계속됩니다지난해 11월부터 준비한 해외 의료봉사를 떠나기 위해 봉사단은 진료과 등을 정하고,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의료봉사에 필요한 물품·약품을 지원받는 등 차근차근 준비했다. 보이스타운에 계신 세 분의 수녀님은 학교 관리도 잘하시고, 하루 세끼를 살뜰히 준비해주셔서 모두 맛있게 먹었다. 나는 진료협력센터 안예슬 선생님과 함께 약국에 배정받았다. 처음 하는 일이라 익숙하지 않아 밀려오는 환자에 당황했지만 나중에는 손발이 척척 맞았다. 산부인과 김미란 교수님은 여성 진료 외에도 장비와 물품도 점검해주셨다.의료봉사단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몫 이상을 해내며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었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학생들이 감사의 뜻으로 전통의상을 입고 열심히 공연하는 모습을 보며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  해외 의료봉사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오는 4월에는 이번 봉사에서 인연이 닿은 18세 남학생의 갑상선 수술이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수술할 수 있기까지 병원장님, 대외협력팀, 갑상선내분비외과의 도움이 있었다. 환자가 수술을 잘 받고 학교로 돌아가 나중에 건강한 모습으로 해후하기를 바란다.이양석 계장(시설관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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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원 풍경과 그 안의 사람들

    의료봉사 100회 맞은, 아주대학교의료원 의료봉사동아리

      아주대학교의료원 의료봉사동아리가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 가족을 대상으로 한 의료봉사 100회를 맞았다. 지난 10월 20일 진행된 아주대학교의료원 의료봉사동아리의 100번째 의료봉사에는 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등 30여 명이 참여하여 봉사활동을 펼쳤다. 이날 방문한 외국인 환자 수는 63명으로, 인도, 네팔 등 다양한 국적의 환자들이었다.2007년 창립한 아주대학교의료원 의료봉사동아리는 창립 후 12년 동안 1만1,484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의료봉사동아리는 단순 진료 활동에서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며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의료봉사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의료봉사를 진행하며 수술이나 치료가 필요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치료하지 못하는 환자들을 위해 재단법인 대우재단의 후원을 받아 베트남, 인도 등의 외국인 근로자 총 20명에게 의료비 약 4천만 원을 지원했다. 회원들은 국내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자비로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의료 낙후 지역을 방문해 의료봉사활동을 펼쳤다.아주대학교의료원 의료봉사동아리는 아주대학교병원과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재단법인 대우재단 등의 후원으로 혈액검사, 초음파검사 등이 가능한 여건을 갖추고 전문 진료 규모와 영역을 넓혔다. 특히 치과 진료 시스템은 매번 의료봉사 때마다 문전성시를 이룬다. 외국인에게 치과 진료는 비용과 접근성에서 거의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지난 11월 14일 열린 의료봉사 100회 기념식에는 임상현 진료부원장, 임홍식 행정부원장, 김영호 치과병원장, 서은정 간호본부장, 정윤석 의료봉사동아리 회장과 회원 등 60여 명이 참석했다.정윤석 회장은 “12년 동안 의료봉사에 참여한 동아리 회원들과 또 수많은 도움의 손길과 후원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활발한 의료봉사활동으로 의료 사각지대의 어려운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히며 더 활발한 나눔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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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원 풍경과 그 안의 사람들

    우리의 작은 나눔이 보다 큰 나눔으로 이어지기를

      어느 의사 부부의 오래된 약속“아주대학교의료원이 벌써 25주년이라니, 어느새 청년이 다 됐군요.”“미국에서 돌아와 창립 멤버로 고생하던 때가 아직도 선한데…. 세월이 참 빠릅니다.”나란히 팔짱을 끼고 선 김효철 전 아주대학교의료원장과 김현주 의학유전학과 명예교수의 눈 속에 추억이 아련하다. 부부는 아주대학교의료원 개원 25주년을 기념해 각각 1억 원씩 출연하며 화제가 됐다.“오래 전부터 계획한 일이었어요. 개원 30주년에 기부할 계획이었는데,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실천하고 싶어 시기를 앞당겼지요.”김효철 교수는 ASOS(Ajou Smart Online School)를 포함한 의학문헌정보센터와 의과대학 발전기금으로 1억 원을 기부했다. 아주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을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의과대학의 전체적인 발전에 필요한 것이 ‘정확한 정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옛날에도 구글이 있었으면 내가 최우수 학생이었을 텐데….(웃음) 이제 PC나 스마트폰을 활용해서 얼마든지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찾는 시대입니다. 고급 정보를 보다 더 정확하게 제공한다면 의료원의 미래에 큰 도움이 되겠지요. 환자와 보호자에게 꼭 필요한 의료정보를 발굴하고 분석하여 궁극적으로 의료서비스에 적극 활용하길 바랍니다.”  김현주 교수는 유전학클리닉과 전문유전상담사 교육 및 양성 기금으로 1억 원을 기부했다. 한국희귀질환재단 이사장이기도 한 김현주 교수는 ‘희귀질환의 대모’라 불린다. 1994년 우리나라 최초로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에 의학유전학과를 신설하고, 아주대학교병원에 유전학클리닉을 개설하여 난치성 유전질환인 희귀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헌신해왔다.“‘의학유전학’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 국내 최초로 임상유전학을 환자 진료에 응용한 것이 아주대학교병원입니다. 21세기를 ‘유전의료 시대’라 말합니다. 각 개인의 유전적 특성을 알아내는 기술이 급속하게 발달하여 이를 이용한 맞춤의료가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확한 유전 정보를 환자와 가족에게 제공하여, 환자와 가족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최선의 결정을 내릴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유전상담 서비스’가 아직 많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25년 전, 아주대학교병원은 국내 최초로 유전학클리닉을 개소하고 유전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에는 국내 최초로 ‘전문유전상담사’ 교육 및 양성을 위한 대학원 과정을 설립한 만큼, 우리 의료원이 사명감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전문유전상담사’ 육성에 선두적인 역할을 하여 희귀질환 환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의료원의 100년, 200년을 위해“1995년, 교통사고로 2개월 정도 아주대학교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어요. 지난 25년 동안 환자중심병원으로 발전해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김현주 교수는 의료인의 인성교육은 앞으로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 제4차 의료산업에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조언도 덧붙였다.“의료 현장을 경험한 사람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일궈낸 변화들이겠죠. 왜 필요한지 설득하고, 실천해서 얻어진 거예요. 의료는 ‘소셜케어’, 사회복지 정부 정책과 잘 연결되어야 해요. 각 분야에서 일하는 의료인들이 환자 입장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관련 정책 마련을 위해 힘을 보탰으면 합니다.”김효철 교수는 아주대학교의료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개원 10주년 비전선포식을 개최한 경험이 있다. 당당하면서도 성대했던 비전선포식을 아직도 인상 깊게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아주대학교의료원이 지난 25년간의 공헌을 바탕으로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전국, 세계적으로도 최고의 기관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를 위해 좋은 사람이 의료원에 들어와야 하고, 좋은 사람을 양성하는 시스템도 필요하겠지요. 100년, 200년이 돼도 ‘아주 좋은 아주대학교의료원’이 되길 기원합니다.”의료인으로서 평생 봉사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이 주변 도움 덕분이었다는 김효철·김현주 교수. 도움이 필요할 때 받을 수 있고, 또 줄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나눌 수 있어 오히려 더 기쁘다는 두 교수의 모습은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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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원 풍경과 그 안의 사람들

    의료봉사는 내 오랜 꿈과 만나는 시간입니다

      내가 가진 시간과 능력을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는 것은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던 모습일 것이다. 우리 가까이에서 다정한 이웃으로 의료인의 초심을 이어가고 있는 아주대학교의료원 의료봉사동아리. 12년간 200회가 넘는 의료봉사를 실천한 ‘선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한 달에 한 번 문을 여는 ‘우리 동네 무료 병원’매월 2번째 일요일 수원 인계동 은혜와 진리 교회. 몽골,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 파키스탄, 아프리카, 남미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찾아온다. 이들 중 절반가량이 진료 차트가 있는 정기 방문 환자다. 의료봉사동아리를 이끌고 있는 내분비대사내과 정윤석 교수는 안정적인 의료봉사를 펼치는 데 교회의 도움이 크다고 감사를 전했다.의료봉사동아리는 2007년 창립했다. 2005년부터 의료봉사단체인 서울 그린닥터스와 함께 봉사하던 정윤석 교수가 아주대학교의료원 내 10여 명의 의사, 간호사와 뜻을 모은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화성 외국인복지센터, 안산 외국인진료센터, 이천 한나요양원 등 소외된 이웃을 찾아 봉사했다. 하지만 의료봉사가 연속되지 못하고 장비를 챙겨 먼 거리를 이동하다 보니 실제 진료시간은 부족했다.“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 근로자와 결혼 이주민, 다문화 가족들을 대상으로 가까운 지역, 지정된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봉사하자는 의견이 자연스럽게 모아졌습니다. 그렇게 아주대학교의료원과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모이는 현재의 교회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다양한 진료과와 의료종사자, 자원봉사자 등이 참여하면서 진료 범위도 확장했다. 웬만한 병원 못지 않은 인원과 장비를 갖춘 ‘움직이는 병원’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100명이 넘는 회원들이 2~3개조로 나누어 번갈아 가며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순간“우리가 치료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동자여서 몸이 아프면 생계가 곤란해져요. 또 그들은 우리 산업을 책임지는 사람들이잖아요. 정성스럽게 치료해주면 결국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최근에는 임신을 간절히 바라는 인도 여성을 산부인과 진료에 연결하기도 했다. 이렇듯 의료봉사는 단순히 누군가를 무료로 진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의 진심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규모가 커지고 체계가 잡혀가면서 정해진 예산이나 지침에 따라 의료봉사를 하기 때문에, 때로는 그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환자를 만날 때도 있다. 정윤석 교수는 정성을 다하여 함께 고민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의료봉사가 무조건 베푸는 것으로 보이지만 일방통행의 마음은 아니라는 것이다.“우리가 펼치는 작은 의료행위에 거듭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숙연해집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 깊이 감동받곤 합니다. 의료봉사를 통해 우리가 얻는 것이 더 많습니다.”의료봉사동아리는 당분간 한 달에 한 번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정기 의료봉사를 유지하면서, 국내의 장애인이나 고아원, 양로원 등 진료받기 어려운 상황의 사람들을 도울 계획이다. 실제로 몇 년전부터 용인 한울공동체에 자원봉사 형태로 지원을 하고 있다.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난민들을 도울 방법도 찾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해외에서 꾸준히 봉사할 지역을 찾을 계획이다.“해외에 의료봉사 갔을 때였어요. 중학생 나이 정도 되는 아이가 팔이 골절된 채 왔어요. 정형외과 교수님이 부목을 해주었지만 계속 치료해줄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해외 봉사도 한 지역을 꾸준히 방문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습니다.”10년 넘게 의료봉사를 실천해온 의료봉사동아리의 꿈은 지금처럼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면서 새로운 봉사 모델을 찾는 것이다. 정윤석 교수는 그 길에 동행하고 있는 회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의료원 직원이 아니거나 정년퇴직 후에도 의료봉사에 참여하는 분들에게 특히 감사를 표했다.“원래 ‘의료’는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인데, 병원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상업적인 면이 많이 부각되었어요. 의료인들이 처음 가졌던 마음, ‘선의’를 되새길 수 있는 것이 의료봉사입니다. 내가 처음 의사나 간호사, 약사 등이 되고 싶었던 마음을 떠올려보세요. 내 시간을 누군가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전하는 경험은 어릴 때 꿈꾸던 이상을 실현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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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원 풍경과 그 안의 사람들

    의료인으로서 잘할 수 있는 일을 나눕니다

      다양한 형태의 활동이 있지만 특히 ‘의료봉사 활동’에는 어떤 특별한 ‘힘’이 있다. 기독신우회 의료봉사단은 소외 당하고 상처 받은 이들을 위해 나눔과 베풂을 실천하는 것이 주어진 사명이라 생각한다. 봉사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의미 있고 소중한 일임을 잘 아는 까닭이다. 작은 계기로 시작한 첫 나눔의 기억기독신우회 의료봉사단의 첫 활동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던 시절, 안과 안재홍 교수를 비롯한 여러 의료진이 이들을 진료하기 위한 나눔이 시작이었다.“우리가 가진 ‘의료’라는 달란트를 소외받은 분들을 위해 의미 있게 쓰자고 생각했어요. 처음 의료봉사활동을 갔던 교회에서 만난 300여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합법적으로 체류하지 못하던 분들도 있어서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처지였어요. 그래서 우리를 보고 너무 반겨주고 고마워했어요.”그렇게 기독신우회 의료봉사단이 조직되었고, 본격적으로 국내외 의료봉사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의료봉사단은 국내외 의료사각지대에 직접 찾아간다. 국내 봉사활동은 지속적인 활동으로 내실을 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열정으로 1년에 4~6차례 수원 지역을 포함하여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다. 의약품과 의료기기 등 만반의 준비를 해 가지만 현장 진료에는 한계가 있다. 중증 환자나 당장 수술이 필요한 이들은 병원으로 연계해 치료받을 수 있도록 중간 역할을 하는 것도 봉사단의 일이다.“하지정맥류가 심한 환자를 만나 흉부외과 교수님에게 도움을 청한 적이 있는데, 다음 봉사활동에서 그분이 건강한 다리를 보여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행복했습니다.”안재홍 교수는 봉사를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 감동을 체험하기를 소망한다.  봉사는 가슴 뿌듯하고 행복한 일기독신우회 의료봉사단은 해외 의료봉사 활동을 갈 때 아주대학교의료원이 지원하는 약품과 의료기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각자가 부담하는 자비량으로 진행한다. 해외 의료봉사단은 20~30명으로 구성하는데, 사전조사를 통해 현지 상황에 맞는 의료 봉사자와 봉사팀을 구성하고 현지에서 통역 등 자원봉사자가 합류한다.안재홍 교수는 처음 떠난 몽골 해외 의료봉사 활동을 다녀오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몽골 평원을 이동하다 황량한 곳에 차량 두 대가 전복된 것을 발견했어요. 방금 사고가 난 현장에서 정형외과, 신경외과 교수님들이 부상자를 지혈하고 다친 다리에 부목을 하는 등 응급처치로 급한 상황을 해결했습니다.”이 우연한 기회에 봉사단원들의 마음은 ‘우리가 제대로 도울 일이 있을까’에서 ‘우리가 무언가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해외 봉사활동에서 만나는 이들은 빈민가, 쓰레기 매립장 등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의료 소외계층이다. 작년 인도네시아 의료봉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3일 동안 많은 도움을 준 발치, 스케일링 등 치과 진료와 내과, 안과 진료 등 총 1,400건에 달하는 진료로 빠듯했지만 당장의 피로감보다 도움을 더 주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 안재홍 교수는 해외 봉사활동에서 만난 현지 중학생 자원봉사자 이야기를 전했다. 당시 사춘기로 방황하던 아이가 부모님이 놀랄 정도로 안정되게 변한 것을 보며 봉사의 놀라운 힘을 새삼 느꼈다고 한다.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현지 주민들이 너무 고마워 하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많은 것을 얻고 돌아온다는 기독신우회 의료봉사단. 이 따뜻한 마음을 기억하며 기쁜 마음으로 다음 봉사활동을 준비하고, 이 ‘선순환’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우리 봉사단은 늘 환자들을 실질적으로 돕기 위해 고민합니다. 다행히 의료인이기 때문에 몸이 아픈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의약품을 지원해주는 아주대학교의료원을 비롯해 봉사에 참여하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젊은 선생님들이 더 많이 참여해 기독신우회 봉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합니다.”조건 없이 남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 가슴 뿌듯하고 행복한 일이다. 봉사는 분명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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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병원 어떻습니까

    인공와우 수술로 세상의 소리를 듣게 되었어요

      아주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정연훈 교수의 인공와우 수술로 소리를 듣게 된 이윤아 환아의 보호자 이지은 님이 행복을 찾은 이야기를 전한다(신생아 및 영유아 청각조기진단재활 심포지엄 수기 최우수상 작).   “선생님, 윤아가 못 듣는다는 느낌을 받으신 적 있나요?”윤아는 두 달 전 24개월 차 영유아 검진 언어평가에서 하위 소견을 받았다. 그 후로 아이를 유심히 관찰했지만 못 듣는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그렇다고 윤아가 말을 따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눈에는 예쁘게만 보여 혹시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까 싶어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담임선생님께 여쭤보았다.아마 ‘설마 못 듣겠어?’라는 생각과 선생님이 ‘아니요’라고 확인해주실지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에이~ 어머니, 어린이집 생활을 얼마나 잘하는데요. 언어는 느릴 수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아이가 듣지 못한다고요?‘왜 말이 느린 걸까? 소근육 활동이나 사회성 등 기타 발달사항은 또래보다 빠른 편인데, 유독 언어만 느린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 발달검사만 기다리지 말고 다른 검사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아이도 말이 늦은 편이었지만 책 제목을 이야기하며 가져 오라고 하면 그 책을 정확히 찾아왔었다. 윤아는 ‘기저귀 가져와’ 같은 상황 지시 수행 능력에 비해 책을 찾아오는 수행 능력은 제로였다.“어머니, 윤아가 많이 못 듣네요. 이 정도 청력이면 장애 3급입니다. 대학병원에 가서 보청기를 착용하고 인공와우 수술을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인.공.와.우.처음 듣는 그 네 글자가 얼마나 낯설고 생소했는지 또 무서웠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운전대를 움켜쥔 채 행여나 아이가 깰까 봐 소리 죽여 울었다. 그러다 생각했다. ‘어차피 못 듣겠구나….’ 그 생각을 하니 더욱더 마음이 아팠다.수술하기에는 이미 늦은 연령이라 하루하루가 아쉬울 때라는 의사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다음 날 예약도 없이 아주대학교병원을 찾아가 무작정 기다렸다. 아닐 거라는 믿음으로 여러 상급 병원에 예약해둔 상태였다. 그 중 한 곳에서만이라도 좋으니 윤아의 청력검사 결과가 잘못되었다는 진단이 나오기를 기대했지만 바람은 바람일 뿐이었다. 수술을 결정하고 돌이켜본 나날들“윤아 귀가 안 들려서 속상해? 윤아가 말을 못해서 그래?”첫째 아이가 물었다. 명랑한 윤아의 모습을 보면 눈물이 밤새 하염없이 쏟아졌다. 그러다 동이 트면 정신을 차리고 와우 기기를 조사하고 여러 세미나에 참석했다. 수술 후 재활 등에 대해 검색하고 관련 서적을 읽고, 밤이 되면 자는 아이를 보면서 꿈은 아닐까 생각하며 울면서, 그렇게 3개월을 보냈다. 생각보다 덤덤하게 수술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윤아는 수술이 끝난 직후 회복실에서 한 시간을 목 놓아 울었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수술을 그리 힘들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았다. 그것만이 감사했다.누군가 내게 말했다. ‘엄마가 아이가 듣는지 못 듣는지도 몰랐냐고….’ 돌이켜보면 내가 알 수 있는 상황이 많았던 듯하다. 아이가 부르면 쳐다보고 과자 먹자고 하면 뛰어오던 때를 더듬어 보니 그때마다 곁에 건청인 첫째 아이가 있었다. 아마 윤아는 언니를 보고 눈치 빠르게 행동했던 것 같다. 아이를 앉혀놓고 색이나 모양, 동물 등을 인지하는지, 개월 수에 맞게 어휘가 느는지 좀 더 예민하게 관찰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렇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눈치채기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청력이라는 것에 무지했으니까. 둘째 아이이다 보니 첫째 아이 때보다 아이가 취하는 몸짓이나 눈짓에 무뎌진 부분이 있었고 당연히 누구나 듣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이제껏 보청기나 인공와우를 착용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한 경험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윤아가 아니었다면 나 역시 들리지 않는 사람은 모두 수화를 사용한다고 알았을 것이 분명하다. 의료진, 가족 모두가 바라는 아이의 행복윤아 머리의 반짝이는 와우 기기를 보며 이게 무엇인지 묻거나 불빛 나는 머리핀이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우리 동생이 못 들어서 그런 거예요. 근데 이제 들을 수 있대요. 조금 있으면 말할 수도 있을 거예요.”올해 일곱 살이 된 첫째 아이가 윤아의 와우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먼저 이야기하는 기특한 모습에 마음이 편해진다. 윤아에게 언니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첫째가 말한 대로 윤아는 말을 하게 되었다. 오히려 지금은 언니에게 이런 상황에선 이런 말을 해야 한다며 짧은 말이지만 언어치료 시간에 배운 대로 지시를 해 나를 웃음 짓게 한다.윤아가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 등 앞으로 극복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윤아의 재활은 이제 막 출발선을 지났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를 얻는다고 했다. 우리 윤아에게는 청력 대신 다른 능력이 주어졌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이 글을 통해 아주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정연훈 교수님을 비롯한 많은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모두 한마음으로 윤아를 위해 노력해주셨다. 또한 윤아 곁엔 언제나 가족이 함께하니까 좌절하거나 외로워하지 말고 지금처럼 밝게, 자신에게 주어진 미래를 슬기롭게 극복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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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꿈꾸는 의료인

    의술과 인술을 갖춘 의사를 꿈꾸다, 재활의학과 윤영천 레지던트

     레지던트 4년차, 전문의로 가는 마지막 길목을 지나고 있는 윤영천 레지던트. 연차가 쌓여가면서 하얀 가운에 담긴 의사로서의 사명감은 나날이 무게를 더해가는 중이다. 열정과 패기로 가득했던 수련 생활을 보내고 신뢰와 실력을 갖춘 전문의를 꿈꾸는 윤영천 레지던트를 만나보았다.  레지던트 4년차, 책임감과 사명감요즘 윤영천 레지던트는 하얀 가운에 재활의학과라는 소속이 새겨졌던 4년 전을 떠올릴 때가 많다. “모든 것은 윗 년차에게 보고하고 상의하라”고 귀가 닳도록 들었던 레지던트 1년차 시절. 그때는 레지던트 4년차 선배가 그렇게 대단해 보일 수가 없었다. 물론 작은 실수에도 호되게 돌아오는 꾸지람에 마음이 상한 적도 있었지만 말이다.“제가 4년차가 되니 그때 선배님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전공의들을 책임지는 역할이 레지던트 4년차의 몫이니까요. 후배들이 좋은 의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본보기가 되어야 하죠. 연차가 쌓일수록 의사라는 이름의 무게감과 책임감도 함께 늘어가는 것 같아요.”그렇다고 마냥 무서운 치프 선생님(레지던트 4년차)을 떠올려서는 안 된다. “타고나길 남한테 싫은 소리를 못 한다”는 윤영천 레지던트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후배들을 이끄는 따뜻한 선배다. 한발 앞서 그 과정을 겪어 봤기에 후배들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도 쓴 소리를 할 때가 있다. 환자와 관련된 일만큼은 누구보다 단호하다.“몰라서 실수를 했다면 다시 알려주면 되지만 본인의 부주의나 안일함으로 일어나는 실수는 절대 해서는 안 돼요. 우리의 일은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니까요.”윤영천 레지던트가 잘 못하는 쓴 소리를 또 해야 하는 때가 있으니, 회장이라는 직함으로 레지던트를 대표할 때다. 아주대학교 전공의 연합회 회장이자 경기도 전공의 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윤영천 레지던트. 전공의들의 고충을 귀 기울여 듣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해야 하는 자리다보니 책임감도 크다.“소소한 의견들을 수렴해 전달하는 것부터 전공의 휴가는 어떻게 할 것인지, 월급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전공의 처우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합니다. 기념품 제공 등 인턴들에게 소속감을 주기 위한 활동을 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죠. 전공의의 역할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고 배우게 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뛰어난 의술과 따뜻한 인술요즘 갓 들어온 1년차 레지던트와 늘 동행하고 있다는 윤영천 레지던트. 아직은 모든 면에서 서툴기 때문에 1년차가 놓치거나 실수하는 부분을 채워나가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다시 1년차를 경험하는 것 같다”는 윤영천 레지던트. 그는 인턴 수련을 마치고 평생 전공을 선택할 때 주저 없이 재활의학과를 택했다.“어려서부터 스포츠를 유별나게 좋아했어요. 보는 것도 하는 것도. 의사라는 꿈이 생기면서 스포츠 재활 분야에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학창시절 FC서울로 실습을 나가 스포츠 재활을 직접 경험하면서 꿈이 좀 더 명확해졌고요. 전문 스포츠인 뿐만 아니라 일반 체육인들이 부상을 당했을 때, 재활을 통해 다시 운동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이 생긴 거죠.”아주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에서 보낸 레지던트 수련 과정은 그 꿈에 대해 한 발 다가서는 시간이었다. 최고의 실력을 갖춘 교수님들 밑에서 실력을 쌓아갈 수 있었고 부모님과 동기, 여자친구의 응원이 있어 힘든 시간도 잘 견뎌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수련 기간 동안 만난 수많은 환자들은 더 좋은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을 선물해준 가장 고마운 존재다.“인턴 과정을 거쳐 레지던트가 되면 주치의가 돼요. 내 환자가 생기는 거죠. 그만큼 책임감과 사명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어요. 재활의학과 특성상 환자 분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게 돼요. 환자들을 설득시켜서 운동치료나 작업치료 등 적절한 재활을 시켜야 하니까요. 미운 정 고운 정이 흠뻑 들죠. 치료를 마치고 나가실 때는 ‘선생님 덕분에 건강하게 퇴원합니다’라는 인사를 해주시는데, 그 말 한 마디면 힘들었던 것이 사라져요.”윤영천 레지던트는 요즘 재수생 시절을 보내느라 못 봤던 드라마 <하얀거탑>을 다시 보는 중이다. 아주대학교병원 곳곳이 나올 때마다 반갑기도 하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의사의 길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된다는 윤영천 레지던트. 그의 꿈은 장준혁(김명민 분)과 최도영(이선균 분) 사이 어디쯤을 향하고 있다. 환자가 신뢰할 수 있는 뛰어난 의술과 따뜻한 인술을 갖춘 의사. 레지던트로 보낸 4년의 수련 기간이 든든한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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