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 : 사람이 중심이 되는 아주대학교병원, 사람으로 치료 받는 감동이 넘치는 휴먼 스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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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꿈꾸는 의료인

    의술과 인술을 갖춘 의사를 꿈꾸다, 재활의학과 윤영천 레지던트

     레지던트 4년차, 전문의로 가는 마지막 길목을 지나고 있는 윤영천 레지던트. 연차가 쌓여가면서 하얀 가운에 담긴 의사로서의 사명감은 나날이 무게를 더해가는 중이다. 열정과 패기로 가득했던 수련 생활을 보내고 신뢰와 실력을 갖춘 전문의를 꿈꾸는 윤영천 레지던트를 만나보았다.  레지던트 4년차, 책임감과 사명감요즘 윤영천 레지던트는 하얀 가운에 재활의학과라는 소속이 새겨졌던 4년 전을 떠올릴 때가 많다. “모든 것은 윗 년차에게 보고하고 상의하라”고 귀가 닳도록 들었던 레지던트 1년차 시절. 그때는 레지던트 4년차 선배가 그렇게 대단해 보일 수가 없었다. 물론 작은 실수에도 호되게 돌아오는 꾸지람에 마음이 상한 적도 있었지만 말이다.“제가 4년차가 되니 그때 선배님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전공의들을 책임지는 역할이 레지던트 4년차의 몫이니까요. 후배들이 좋은 의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본보기가 되어야 하죠. 연차가 쌓일수록 의사라는 이름의 무게감과 책임감도 함께 늘어가는 것 같아요.”그렇다고 마냥 무서운 치프 선생님(레지던트 4년차)을 떠올려서는 안 된다. “타고나길 남한테 싫은 소리를 못 한다”는 윤영천 레지던트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후배들을 이끄는 따뜻한 선배다. 한발 앞서 그 과정을 겪어 봤기에 후배들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도 쓴 소리를 할 때가 있다. 환자와 관련된 일만큼은 누구보다 단호하다.“몰라서 실수를 했다면 다시 알려주면 되지만 본인의 부주의나 안일함으로 일어나는 실수는 절대 해서는 안 돼요. 우리의 일은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니까요.”윤영천 레지던트가 잘 못하는 쓴 소리를 또 해야 하는 때가 있으니, 회장이라는 직함으로 레지던트를 대표할 때다. 아주대학교 전공의 연합회 회장이자 경기도 전공의 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윤영천 레지던트. 전공의들의 고충을 귀 기울여 듣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해야 하는 자리다보니 책임감도 크다.“소소한 의견들을 수렴해 전달하는 것부터 전공의 휴가는 어떻게 할 것인지, 월급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전공의 처우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합니다. 기념품 제공 등 인턴들에게 소속감을 주기 위한 활동을 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죠. 전공의의 역할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고 배우게 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뛰어난 의술과 따뜻한 인술요즘 갓 들어온 1년차 레지던트와 늘 동행하고 있다는 윤영천 레지던트. 아직은 모든 면에서 서툴기 때문에 1년차가 놓치거나 실수하는 부분을 채워나가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다시 1년차를 경험하는 것 같다”는 윤영천 레지던트. 그는 인턴 수련을 마치고 평생 전공을 선택할 때 주저 없이 재활의학과를 택했다.“어려서부터 스포츠를 유별나게 좋아했어요. 보는 것도 하는 것도. 의사라는 꿈이 생기면서 스포츠 재활 분야에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학창시절 FC서울로 실습을 나가 스포츠 재활을 직접 경험하면서 꿈이 좀 더 명확해졌고요. 전문 스포츠인 뿐만 아니라 일반 체육인들이 부상을 당했을 때, 재활을 통해 다시 운동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이 생긴 거죠.”아주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에서 보낸 레지던트 수련 과정은 그 꿈에 대해 한 발 다가서는 시간이었다. 최고의 실력을 갖춘 교수님들 밑에서 실력을 쌓아갈 수 있었고 부모님과 동기, 여자친구의 응원이 있어 힘든 시간도 잘 견뎌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수련 기간 동안 만난 수많은 환자들은 더 좋은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을 선물해준 가장 고마운 존재다.“인턴 과정을 거쳐 레지던트가 되면 주치의가 돼요. 내 환자가 생기는 거죠. 그만큼 책임감과 사명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어요. 재활의학과 특성상 환자 분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게 돼요. 환자들을 설득시켜서 운동치료나 작업치료 등 적절한 재활을 시켜야 하니까요. 미운 정 고운 정이 흠뻑 들죠. 치료를 마치고 나가실 때는 ‘선생님 덕분에 건강하게 퇴원합니다’라는 인사를 해주시는데, 그 말 한 마디면 힘들었던 것이 사라져요.”윤영천 레지던트는 요즘 재수생 시절을 보내느라 못 봤던 드라마 <하얀거탑>을 다시 보는 중이다. 아주대학교병원 곳곳이 나올 때마다 반갑기도 하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의사의 길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된다는 윤영천 레지던트. 그의 꿈은 장준혁(김명민 분)과 최도영(이선균 분) 사이 어디쯤을 향하고 있다. 환자가 신뢰할 수 있는 뛰어난 의술과 따뜻한 인술을 갖춘 의사. 레지던트로 보낸 4년의 수련 기간이 든든한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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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꿈꾸는 의료인

    건강으로 가는 길의 동반자, 8층 동병동 이소영 주임간호사

     이소영 주임간호사에겐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는 잠언과도 같은 글귀가 있다. 바로 ‘범사에 감사하라’다. 하루하루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병원생활이지만 그녀는 작은 일에도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오늘도 환자의 회복을 위해 전념을 다한다. 아주대학교병원과 함께 성장한 베테랑 간호사1994년 아주대학교병원의 개원과 함께 이소영 주임간호사도 간호사로 첫발을 내딛었다. 새 병원에서의 첫 근무.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한 신입간호사의 마음은 기분 좋은 설렘과 약간의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23년, 아주대학교병원은 국민의 신뢰를 받는 최상의 의료기관이 되었고, 이소영 신입간호사도 어엿한 주임간호사로 성장했다.“아주대학교병원의 역사와 발자취를 같이 했다고 생각하니 벅찬 마음이 듭니다. 개원 초기엔 여러모로 고생스럽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시작을 일군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지금은 아주대학교병원이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고, 간호사란 직업도 여성 전문직으로 자리를 잡아 더욱 뿌듯합니다.”2016년, 신경외과 병동에서만 12년 동안 근무했던 이소영 주임간호사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8층 동병동으로 근무지가 옮겨진 것이다. 원래 동병동은 성형외과/외상외과 병동이었다. 하지만 2016년 6월 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가 오픈하면서 동병동에서 근무하던 간호사의 절반이 외상센터로 옮겨갔다. 그리고 각각 다른 병동에서 근무하던 간호사들이 동병동에 배치됐다.“처음엔 조금 어수선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안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환자 케어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같은 외과 병동에서 일했다 하더라도 병동마다 새롭게 일을 배워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점이 오히려 리프레시 되었다고 할까요? 현재 8층 동병동엔 성형외과/외과 계열 환자들이 주로 입원하세요. 대부분 2박 3일 안에 퇴원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3교대로 이어지는 간호사의 일상은 참 치열하다. 시시각각 변하는 환자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살피며 신속하게 대처하는 업무의 무게감도 만만치는 않다.“항상 인간적인 간호사가 되고 싶어요. 간호사도 사람이다 보니 업무에 쫓기다 보면 마음까지 딱딱해지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더 건네는 자세를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얼마 전 이소영 주임간호사는 가슴 뭉클한 경험을 했다. 여명(餘命)이 얼마 남지 않은 DNR(심폐소생거부) 환자가 8층 동병동에 입원했다. 의식이 온전치 않은 환자였지만 이소영 주임간호사는 오고가며 ‘오늘 통증은 좀 어떠시냐’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녘에 병실을 찾았는데 그 환자의 배우자가 ‘이 사람이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한다’며 꼬깃꼬깃한 지폐를 건네시려는 게 아닌가.“깜짝 놀라서 손사래를 치며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마음만 받겠다고 말했어요. 말 몇 마디 건넨 것뿐인데 그렇게 고마워하시다니 제가 더 감사했죠. 저는 환자와 보호자를 보며 감동과 감사를 느낄 때가 참 많아요. 신경외과 병동에 근무할 때의 일인데, 항상 긍정적으로 환자를 살피는 보호자가 있었어요. 간병을 하다보면 일상이 허물어질 때가 많은데 웃음과 희망만은 놓지 않으셨죠. 환자가 손가락만 움직여도 감사하는 그 보호자의 모습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이소영 주임간호사는 아버지의 권유로 간호사가 됐다. 그녀가 신입간호사이던 시절, 일이 너무 힘들어 아버지를 찾아가 그만두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그녀의 아버지는 ‘간호사는 아픈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감사한 직업’이라며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조언했다. 지금 이소영 주임간호사는 아버지의 조언을 가슴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 8층 동병동에 입원한 모든 환자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병원 문을 나설 때까지 그녀는 환자의 동반자로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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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원 풍경과 그 안의 사람들

    “깜은 한궉” 선천성 심장병 베트남 아기 건강 찾아

      심장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베트남 아기가 아주대학교병원과 경기도의 해외환자 나눔의료 사업의 무료 수술 덕분에 건강을 찾게 됐다. 이 희망 이야기의 주인공은 농 티 투이 두엔(Nong Thi Thuy Duyen, 1년 11개월)이다. 두엔은 하노이에서 차로 10시간 가량 북쪽으로 올라가야 갈 수 있는 중국과 인접한 Bac Can 지역에서 Tay족(베트남 비주류 종족으로 교육, 의료, 복지 혜택 받기 어려움)의 소작농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두엔의 엄마 호앙 티 레(Hoang Thi Le, 22세) 씨는 두엔이 생후 2개월 즈음 동네 보건소로 진료를 온 현지 병원 의사에게 아기의 심장이 너무 빨리 뛴다는 소리를 들었다. 두엔을 데리고 찾아간 하노이 비엣덕 병원(Viet Duc Friendship Hospital)에서는 아기에게 심장병이 있으니 검사와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두엔의 부모는 앞이 캄캄했다. 첫 아이를 출생 6개월 만에 심장병으로 잃었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문제를 간신히 해결하는 형편이라 딸의 치료비를 물어보고 어쩔 도리 없이 아픈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속수무책으로 딸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두엔의 부모는 병원에 다녀온 지 2개월 정도 지나서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비엣덕 병원에서 선의재단과 연락이 됐고, 선의재단을 통해 경기도와 아주대학교병원이 시행하는 해외한자 나눔의료 사업의 혜택을 받게 된 것이다. 12월 21일 엄마 레 씨와 입국한 두엔은 바로 아주대학교병원에 입원하여 정확한 상태를 알아보기 위한 검사를 받았다. 소아청소년과 정수인 교수는 심초음파 등 검사를 통해 “두엔은 좌심실과 우심실 사이 중간 벽에 구멍이 있는 심실중격결손증(VSD)”이라고 진단하고 “결손이 자연폐쇄할 가능성이 낮고 방치하면 심한 폐혈관 폐쇄질환(아이젠맹거증후군) 등 합병증 가능성도 있어 수술해야 한다. 환아가 너무 어려서 힘든 점은 있지만 환자의 상태를 볼 때 지금이 수술 적기”라고 판단했다.   12월 26일 아침 소아심장외과 권위자인 홍유선 교수(흉부외과)가 두엔의 심실중격결손 교정술을 집도했다. 홍 교수는 “두엔의 가슴을 열고 심실중격결손을 폐쇄하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약 2주간 수술 상처 관리와 6개월 정도 심내막염 예방에 주의를 기울인 후 환아의 상태가 안정되면 앞으로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두엔은 수술 후 심하게 움직여 수술 다음날인 27일 수술부위 흉골을 재고정하는 수술을 한차례 받았으나 수술 후 큰 합병증 없이 순조롭게 회복하고 있다.   이에 대해 레 씨는 “첫 아이를 심장병으로 잃고 얻은 두엔이 심장병인 걸 알았을 때 너무나 두려웠고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때에는 억장이 무너졌다”고 회상하고 “두엔에게는 다른 바람 없이 건강하게 자라주기 바라고 커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기를 바랄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주대학교병원에 온 지 20일 만에 아기가 건강한 모습으로 집으로 갈 수 있어 정말 기쁘고 두엔을 위해 애써 주신 아주대학교병원과 경기도, 선의재단 등 모든 분에게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가슴 깊이 거듭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인사했다.  탁승제 병원장은 “아주대학교병원과 경기도의 좋은 파트너십 덕분에 절망에 빠진 가정에 희망으로 주게 됐다. 두엔이 베트남으로 돌아가 건강하고 밝게 자라기를 기원하고, 아주대학교병원은 앞으로도 경기도과 협력하여 해외환자 나눔의료를 적극 실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아주대학교병원은 2009년부터 현재까지 베트남을 대상으로 의료인 연수 82명, 현지 의료봉사 3회, 학술대회 2회 개최 등 다양한 보건의료사업을 진행해 왔다. 경기도와는 동일한 사업을 통해 2015년에 한 번도 서거나 걸어본 적 없는 캄보디아 환아(당시 17개월)를 수술하여 걸을 수 있도록 도와준 적이 있다. 경기도는 의료 나눔문화를 확산하고 경기도 우수 의료기술을 해외에 홍보하기 위해 2014년 글로벌 나눔의료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을 통해 2017년까지 러시아, 베트남, 카자흐스탄, 몽골, 캄보디아, 키르키즈스탄 등에서 환자 12명이 혜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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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병원 어떻습니까

    신장암 수술환자 유지분 님, 새 삶의 희망이 솟아오르다

     세상에 암을 진단받고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유지분 님도 청천벽력과도 같은 신장암 진단에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을 느꼈다. 그럴 때 환자가 의지할 곳은 오직 의료진뿐. 유지분 님이 아주대학교병원 의료진들의 따뜻한 손길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는 이유다.  기적을 만든 ‘삼고초려’ 만약 제갈량이 유비를 만나지 못했다고 가정해보자. 당대의 뛰어난 서생으로 이름났을지언정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기억될 수 있었을까.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가 있었기에 제갈량은 중국 삼국시대의 전설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갑자기 삼국지 이야기를 하는 건 유지분 님에게도 생명을 살리고 기적을 만든 삼고초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2016년 국가건강검진에서 사구체에 문제가 있으니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는 소견을 받았어요. 당장 병원에 가야했지만 너무 두려웠죠. 결국 2017년 6월이 돼서야 아주대학교병원 신장내과 신규태 교수님을 찾아갔어요. CT검사 결과 신장암 1기 라고 하더라고요. 가족력도 없는데 신장암이라니 정말 놀랐죠. 신규태 교수님이 바로 비뇨기과에 가서 진료를 볼 수 있게 해주셨는데 제가 비뇨기과 앞까지 갔다가 돌아 나왔어요.” 몇 년 전 남편을 대장암으로 떠나 보낸 터라 암수술이 더욱 무서웠던 것이다. 이제 남은 삶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주변정리를 시작한 그녀에게 어느 날 아주대학교병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신규태 교수님이 간호사를 통해 전화를 주셨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 나중에 더 고생할 수 있으니 빨리 병원에 오라고 하셨지만 저는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컸어요. 제가 계속 병원에 가지 않자 무려 3번이나 전화를 주셨어요. 또 제 보호자로 등록되어 있는 딸에게도 연락을 하셨죠. 아니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환자 하나 살리자고 이렇게 노력하는 분이 있다니, 정말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유지분 님은 말한다. ‘신규태 교수님은 내 생명의 은인’이라고. 수술을 포기하려던 유지분 님은 신규태 교수의 삼고초려보다 더 한 정성에 감복해 병원에 가기로 결심했다.  내민 손을 잡자 찾아온 희망 유지분 님은 2017년 7월 비뇨기과 추설호 교수에게 진료를 받고, 그 다음달인 8월 28일에 신장암 수술을 받았다. 그토록 무서워했던 수술이었지만, 어느새 그녀는 건강을 회복해 행복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 “추설호 교수님을 처음 뵌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납니다. 저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어주셨는데 그 미소를 본 순간, 용기가 솟아 났거든요. 또 신장은 한쪽을 절제해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다며 하나하나 꼼꼼하게 설명해주셨죠. 친정아버지처럼 느껴질 만큼 참 자상하세요.” 유지분 님에겐 고마움을 전하고픈 의료진이 또 있다. 바로 1주일의 입원기간 동안 친절하게 챙겨준 간호사들이다. 하루 24시간 내내 밝은 미소로 환자들을 대하는 간호사들이 있어서 수술 후 더욱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일일이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간호사들에게 참 고마워요. 제가 옷 입는 것도 먼저 도와주는 등 여러모로 참 친절한 도움을 많이 받았답니다.” 혹여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동안 불편했던 점은 없었을까. 유지분 님은 ‘그런 적 없다’고 여러 번 손사래를 친 끝에 ‘밤에 회진을 돌던 레지던트 의사가 너무 바빠 보여 말 걸기가 어려웠다’며 이야기를 꺼낸다. 밤새 환자를 진료하느라 피곤할 거란 걸 이해하지만 수술을 받은 환자입장에선 궁금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또 원무과에서도 환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조금만 더 상세히 설명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전한다. “원래 몸이 아프면 마음에도 여유가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그런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아주대학교병원에서 만난 대부분의 의료진들은 참 다정하고 세세하게 마음을 써줬어요. 그 덕에 제가 이렇게 새 삶을 얻었으니 정말 감사하죠.” 수원에 거주하고 있기에 아주대학교병원을 개원 초기부터 다녔다는 그녀는 ‘암 수술은 서울 큰 병원에 가서 하라’는 지인들의 조언에도 자신의 소신대로 아주대학교병원을 택한 걸 다행으로 여 긴다. 수술을 두려워하며 삶에서 도망치려 했던 자신에게 끝까지 손을 내밀어준 신규태 교수와 환한 웃음과 최고의 실력으로 환자의 마음까지 치유해준 추설호 교수와 같은 의료진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아프고 두려운 순간에 힘이 되어준 아주대학교병원이 있어 앞으로의 삶도 참 든든하다는 유지분 님. 2018년 새해를 맞이하는 그녀의 미소 속에 새 삶의 희망이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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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꿈꾸는 의료인

    환자의 삶 속에 다가가는 행복한 의사, 소아청소년과 천은재 레지던트

      세상 모든 부모들의 소원은 내 아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 그런데 부모만큼이나 간절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건강을 바라는 사람이 있다. 소중한 생명을 구하고 싶어 의사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어 선뜻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하게 되었다는 그. 어린 환자들에게 언제나 다정다감한 천은재 레지던트다.  컴퓨터 소년,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되다“여기 소아청소년과 선생님들은 누구나 하고 있는 거예요. 저는 제일 귀여운 걸로 골랐어요.”싱긋 웃으며 주머니에 달려있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그는 레지던트 4년차. 소아청소년과 의국의 최고참인 천은재 레지던트다.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들이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공동구매한 명찰 장식이 유독 사랑스럽다. 아픈 아이들의 울음을 뚝 멈추게 할 수 있는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리라.레지던트 최고참이라 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선입견이 무색하게 따뜻한 미소로 어린 환자들에게 다가가는 천은재 레지던트. 그는 사실 일찍부터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었던 소년이었다. 컴퓨터에 흥미도 있고, 재능도 있어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될 것이라던 모두의 예상과 달리 의사가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모든 컴퓨터 프로그램은 1과 0으로만 이루어져요. 다양성에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복잡한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하다가 생물에 관심이 생겼죠.”그렇게 생물의 정점에 있는 사람에 대한 학문을 하기로 정한 그를 의사의 길로 이끈 결정적 사건은 어머니의 두경부종양 수술이었다.“어머니의 투병을 보면서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 생명을 살리는 이 일이 숭고하다는 생각이 들었죠.”그런데 정작 어머니는 아들이 의사가 되는 것을 썩 반기지는 않으셨다고 말하며 천 레지던트가 웃는다. 의사의 길이 쉽지 않기에 막내아들의 얼굴을 자주 볼 수 없을 거라는 걱정에서였다고. 어려울수록 더 채워져 가는 법칙예상대로 의사의 길은 힘들다. 돌보아야 할 환자가 있으면 밤을 새서 지켜야 하는 일이 빈번했다. 성격상 외과가 맞지 않다는 걸 알고, 해맑은 아이들에 끌려 선택한 소아청소년과도 만만치 않다. 그 중 갓 태어난 여린 생명을 돌보는 신생아집중치료실은 몇 배의 노력과 세심함이 필요하다. 힘든 수련과정을 거치며 보호자인 부모님들을 이해시키고 안정시키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라는 것도 깨달았다.“아이들은 아프면서 큰다는 말처럼 아프더라도 금방 나아요. 아이들이 예쁘기도 하고, 치료한 만큼 성과를 볼 수 있으니까 그런 점이 신나죠.”  마음 주는 만큼 다가오는 어린 천사들을 바라보며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완벽한 의사가 되기 위한 길은 아직 많이 남아있지만, 그는 부쩍 의사로서 채워져 가고 있음을 발견한다.잘 치료돼서 퇴원한 환자보다 놓쳐버린 어린 생명들이 마음 깊이 남아 ‘무언가를 더 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보호자 마음도 더 들여다보아야 하지 않을까?’ 되새김질하며 갈고 닦은 결과다.그는 전문 영역에 있어서는 치열하지만, 환자에게는 쉽게 다가가는 의사를 꿈꾼다.“환자를 가지고 경쟁하는 의사보다 삶을 함께하는 따뜻한 의사가 되고 싶어요. 그런 거 있죠.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있으면 아이들이 다가와 안기며 웃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의사….”상상만 해도 행복한 모습. 물론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그러나 어려운 순간에도 힘이 되어주시는 교수님과 선배님들, 반대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아들의 선택을 믿어주는 부모님, 간호사로 같은 길을 가며 지난 10월 영원한 동반자가 된 아내가 있어 그는 진정한 의사의 길을 더욱 성큼성큼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내년이면 공중보건의로 복무하게 돼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천은재 레지던트에게는 또 한 가지 하고 싶은 일이 있다. IT와 의학지식을 접목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병원에서 컴퓨터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호출되곤 하는 그의 컴퓨터 소년 본능이 3년간의 공중보건의 기간 동안 소환될 예정이라며 하하 웃는다.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니 아이들의 미소를 닮아가는 천은재 레지던트. 생활 속 친근한 의사, 의학지식을 대중화하는 의사로서의 그의 꿈이 하루 빨리 열매 맺기를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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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병원 어떻습니까

    심장판막 수술환자 이균영 님, 따뜻한 보살핌으로 건강한 심장, 활기찬 삶을 되찾다

      호흡곤란의 원인, 건강검진으로 잡아내다“아주대학교병원 덕분에 더 활기차게 살고 있습니다.”올해 초 심혈관질환으로 입원해 수술을 받은 이균영 님. 수술한 지 4개월이 되어가는 그는 퇴원 후 정기검진을 위해 아주대학교병원에 들를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갑작스레 찾아온 건강의 이상을 되돌려준 곳이라는 생각에서다.“저는 원래 건강 하나는 자신했었던 사람이었어요. 병원 출입이라고는 모르고 살아왔었죠.” 그런데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편치 않은 증상이 느껴졌다. 당장 응급실로 실려가야 할 정도는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넘길 법도 했지만, 문득 그 전에도 간혹 비슷한 증상이 있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뭔가 이상이 생겼음을 직감한 이균영 님. 망설임 없이 아주대학교병원을 찾았다. 화성에서 화장품 대리점을 운영하며 지역사회 활동을 활발히 하던 그는 평소 지인들이 “아주대학교병원이 정말 좋은 병원”이라고 칭찬하던 얘기를 기억하고 있었다.그가 찾아간 곳은 병원 외래가 아닌 아주대학교병원 건강증진센터였다. 이왕 병원에 가는 김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몸에 이상이 없는지 철저히 검사 받아볼 생각에서였다. 건강증진센터 조승안 팀장과의 상담으로 검진을 받으면서 가슴 쪽에 이상 증세가 있다며 특별히 꼼꼼하게 검사해 줄 것을 청했다. 연간 2만여 명이 검진을 받는다는 경기도 최대 규모의 건진센터답게, 상담에서 검진, 결과 안내까지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진행됐다. 검진 결과 심장판막에 이상이 생겼음을 알았고, 즉시 흉부외과와 연계해 수술 스케줄이 잡혔다.  10시간의 수술, 두려움이 없었던 이유심장판막수술은 가슴을 열고 이상이 생긴 심장판막을 바꿔줘야 하는 큰 수술에 속한다. 걱정하는 마음이 들 법도 한데, 이균영 님은 두려움 없이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평소 다져온 건강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병원과 의료진에 대한 무한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주대학교병원의 건강증진센터와 흉부외과 의료진과의 유기적인 연계 덕분에 빠르게 수술 스케줄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신호였다.“한참 기다려야 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빠를 줄은 몰랐어요. 결과 받고 2~3일 만에 수술을 했으니까요. 저를 담당해주신 흉부외과 임상현 교수님을 뵙고는 더 믿음이 생겼죠. 제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도 해주셨고, 회복하고 퇴원할 때까지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말을 많이 해주셨어요.”과거 10여 년 간의 군 생활 덕분에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군인 정신으로 똘똘 뭉친 그였지만, 수술실로 들어가면서는 ‘혹시 잘못되면 가족은 어찌할까…’하는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10시간 가까운 수술을 견디고 나온 그에게 희소식이 있었다. 당초 인공판막으로 교체하는 수술을 생각했는데 다행히 자신의 판막을 재건하는 것으로 충분했다는 것이었다. 환자의 입장에서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신경써준 의료진들 덕분이었다.  백의의 천사, 따뜻함에 감동하다“고마운 의료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분이 있어요. 입원한 동안 밝게 웃으며 환자들을 대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먼저 웃으며 다가와주니 아픈 와중에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었지요.”이균영 님의 특별한 고마움의 대상은 바로 흉부외과 김화순 간호사다. 다른 의료진들도 고맙고 친절했지만, 김화순 간호사는 스스럼없이 환자를 ‘아버님’이라 부르며 불편한 곳은 없는지 가족처럼 챙겼다. 힘든 근무 환경일 텐데도 상냥하게 웃으며 ‘백의의 천사’로 환자를 대하는 모습은 깊은 감동을 주었다. 치료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시원스럽게 의문을 해소해준 것도 다른 생각 않고 회복에만 전념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말한다.“저 같은 사람은 병원 출입을 생전 안 하니까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하나하나 일러주고, 안내해주고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모습들이 정말 따뜻하다고 느껴졌어요.”이균영 님은 아주대학교병원과 의료진의 환자 중심 마인드에 치료받는 내내 감동 받았다고 말한다. 아주대학교병원에 대한 애정으로 그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지만, “환자들에 대한 세심한 안내가 의료진 개개인의 친절이 아닌, 시스템적으로 갖춰졌으면 좋겠다”는 주문이다. 병원 운영진들이 보지 못하는 곳을 지나치지 않고 이야기해주는 이균영 님의 애정 어린 조언이 더없이 감사하다.이균영 님은 오늘, 퇴원 이후 두 번째 외래 진료를 받았다. “임상현 교수님께서 진료를 보시고는 순조롭게 회복이 되고 있다고 하셔서 안심이 됩니다. 간혹 손끝이 저린 듯한 증상도 회복과정에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는 말을 들었어요. 이제 큰 제약 없이 일상생활도 할 수있다니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이균영 님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다음 정기진료가 있는 3개월 후에는 더 건강해진 모습, 더 활기찬 삶을 살아갈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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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꿈꾸는 의료인

    뜨거운 열정으로 환자를 돌보다 - 외과병동 장지연 주임간호사

      장지연 주임간호사는 ‘간호사는 나의 천직’이라고 말한다. 입바른 말이 아닌 진심이다. 생사를 오가는 환자를 돌보는 일에 몰입하다 보니 다른 길을 돌아볼 새 없이 외과병동에서만 1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녀와의 대화 속에, 여전히 식지 않는 열정이 뜨겁게 번지고 있었다.  외과병동의 터줏대감 오랜만에 외과병동을 찾은 환자들에게 그녀는 익숙하고도 반가운 얼굴이다. 혹자는 “아직도 여기 있어?”라고 농 섞인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첫 일터로 아주대학교병원에 들어온 그녀는 그 후로도 지금까지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 간호사가 같은 병동에서 이토록 오래 근무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 처음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병원 사정이 있었지만, 지금은 스스로 ‘외과 체질’이라고 할 만큼 이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 사람들이 간호사라는 직업의 단점으로 꼽는 3교대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신규 간호사 때는 질문 하나 하는 것도 무서워서 제가 묻고 싶은 것만 물었어요. 혹시라도 실수한 건 아닌지 집에서도 내내 스트레스를 받으며 병원 생각만 했죠. 하지만 지금은 환자가 입원하는 순간, 수술하고 회복하는 과정이 그림 그려지듯이 머리에 떠올라요. 이제는 ‘천직’이다 싶을 정도니까요.” 하루에도 몇 건의 수술 환자가 있는 외과병동의 하루는 잠시도 앉아 있을 틈 없이 분주하게 돌아간다. 생명과 직결되는 일을 하는 간호사이기에, 작은 실수 하나도 허투루 지나칠 수 없다는 마음이 현재의 그녀를 만들었다. 오랜 훈련으로 이제 응급 상황에서도 몸이 먼저 움직인다. 그녀의 판단과 처치 덕분에 위기를 넘긴 환자의 보호자가 ‘덕분에 살았어요’ 하고 감사 인사를 전해 올 때면 ‘내가 뭘 했다고’ 싶으면서도 보람이 밀려든다. 외과병동에서 신규 간호사들이 궁금한 것이 있을 때면 가장 먼저 찾는 이도 그녀다.   간호사는 나의 운명 놀랍게도 어린 시절 그녀는 주사 맞는 것이 무서워 병원 근처도 가기 싫어했던 아이였다. 그래서 부모님조차도 그녀가 간호사가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생각이 달라진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98학번인 그녀는 고등학교 때 IMF를 경험한 세대. 대학 원서를 쓰면서 진로를 고민하던 그녀에게 담임교사가 간호학과에 지원해볼 것을 권유했다. ‘설마 되겠어?’ 했지만, 합격증을 받았다. 혹시라도 적성에 안 맞아 중도 포기할까 염려 했던 부모님의 반대도 거셌다. “학교에 다니면서 실습을 하는데, 다행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즈음 TV에서 <종합병원>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어, 졸업하면 아주대학교병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면접 때도 그 이야기를 했는데, 아마도 좋게 봐주셨던 거 같아요.” 물론 실제 병원 생활은 드라마 같지 않았지만, 때로는 그보다 더 한 감동의 순간도 적지 않다. 희귀질환으로 10대에 장루 처치를 받은 환자가 무사히 대학에 가고 결혼 소식까지 전해온 적도 있다. 투병 중에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 환자들을 생각하면, 때때로 찾아오는 고충도 씻은 듯 사라진다. 앞으로도 할 수 있는 한, 환자 곁을 지키는 간호사로 남고 싶다는 장지연 주임간호사. 하루하루 자신의 소명을 지켜가는 그녀가 있기에, 한결 마음 편히 외과병동의 문을 두드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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