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 : 사람이 중심이 되는 아주대학교병원, 사람으로 치료 받는 감동이 넘치는 휴먼 스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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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을 수 없는 환자

    뜨거운 열정으로 환자를 돌보다 - 외과병동 장지연 주임간호사

      장지연 주임간호사는 ‘간호사는 나의 천직’이라고 말한다. 입바른 말이 아닌 진심이다. 생사를 오가는 환자를 돌보는 일에 몰입하다 보니 다른 길을 돌아볼 새 없이 외과병동에서만 1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녀와의 대화 속에, 여전히 식지 않는 열정이 뜨겁게 번지고 있었다.  외과병동의 터줏대감 오랜만에 외과병동을 찾은 환자들에게 그녀는 익숙하고도 반가운 얼굴이다. 혹자는 “아직도 여기 있어?”라고 농 섞인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첫 일터로 아주대학교병원에 들어온 그녀는 그 후로도 지금까지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 간호사가 같은 병동에서 이토록 오래 근무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 처음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병원 사정이 있었지만, 지금은 스스로 ‘외과 체질’이라고 할 만큼 이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 사람들이 간호사라는 직업의 단점으로 꼽는 3교대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신규 간호사 때는 질문 하나 하는 것도 무서워서 제가 묻고 싶은 것만 물었어요. 혹시라도 실수한 건 아닌지 집에서도 내내 스트레스를 받으며 병원 생각만 했죠. 하지만 지금은 환자가 입원하는 순간, 수술하고 회복하는 과정이 그림 그려지듯이 머리에 떠올라요. 이제는 ‘천직’이다 싶을 정도니까요.” 하루에도 몇 건의 수술 환자가 있는 외과병동의 하루는 잠시도 앉아 있을 틈 없이 분주하게 돌아간다. 생명과 직결되는 일을 하는 간호사이기에, 작은 실수 하나도 허투루 지나칠 수 없다는 마음이 현재의 그녀를 만들었다. 오랜 훈련으로 이제 응급 상황에서도 몸이 먼저 움직인다. 그녀의 판단과 처치 덕분에 위기를 넘긴 환자의 보호자가 ‘덕분에 살았어요’ 하고 감사 인사를 전해 올 때면 ‘내가 뭘 했다고’ 싶으면서도 보람이 밀려든다. 외과병동에서 신규 간호사들이 궁금한 것이 있을 때면 가장 먼저 찾는 이도 그녀다.   간호사는 나의 운명 놀랍게도 어린 시절 그녀는 주사 맞는 것이 무서워 병원 근처도 가기 싫어했던 아이였다. 그래서 부모님조차도 그녀가 간호사가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생각이 달라진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98학번인 그녀는 고등학교 때 IMF를 경험한 세대. 대학 원서를 쓰면서 진로를 고민하던 그녀에게 담임교사가 간호학과에 지원해볼 것을 권유했다. ‘설마 되겠어?’ 했지만, 합격증을 받았다. 혹시라도 적성에 안 맞아 중도 포기할까 염려 했던 부모님의 반대도 거셌다. “학교에 다니면서 실습을 하는데, 다행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즈음 TV에서 <종합병원>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어, 졸업하면 아주대학교병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면접 때도 그 이야기를 했는데, 아마도 좋게 봐주셨던 거 같아요.” 물론 실제 병원 생활은 드라마 같지 않았지만, 때로는 그보다 더 한 감동의 순간도 적지 않다. 희귀질환으로 10대에 장루 처치를 받은 환자가 무사히 대학에 가고 결혼 소식까지 전해온 적도 있다. 투병 중에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 환자들을 생각하면, 때때로 찾아오는 고충도 씻은 듯 사라진다. 앞으로도 할 수 있는 한, 환자 곁을 지키는 간호사로 남고 싶다는 장지연 주임간호사. 하루하루 자신의 소명을 지켜가는 그녀가 있기에, 한결 마음 편히 외과병동의 문을 두드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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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병원 어떻습니까

    감사와 신뢰가 빚어낸 가장 좋은 合 , 영상의학과 원제환 교수와 이종성 님

     예전에는 부부의 연을 맺기 전에 반드시 궁합을 봤다. 너른 공간에 집을 한 채 올릴 때에도 인근의 땅과 물의 조화를 봤다. ‘어울림’은 아주 먼 옛날부터 그토록 중요한 요소였다. 오늘 만난 영상의학과 원제환 교수와 이종성 님은 의사와 환자 역시 좋은 합을 보여줄 때 가장 좋은 치료효과를 볼 수 있다고 믿는 인물들. 서로에 대한 감사와 믿음으로 훈훈했던 그 만남의 시간을 살짝 엿보았다. 아주대학교병원과의 아주 특별한 인연 일반적으로 대개의 환자는 아래에서 위로, 즉 지역 병원을 최초로 내원한 뒤 최종 종착지로 서울의 큰 병원을 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종성 님은 조금 남다른 행보를 보여줬다.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대형병원에 다니다가 아주대학교병원으로 내려온 것이다.“간암을 치료하고자 서울 모 병원을 다니면서 색전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나니 색전술로 안 된다면서 간이식 수술을 받자고 하더라고요. 아들이 둘 있었지만 둘 다 결혼을 한 상태이고 도저히 자식들에게 간 이식을 받을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종성 님은 마음을 비웠다. 그리고-그의 표현대로라면-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아주대학교병원 간센터의 왕희정 교수에게 가보라는 귀띔을 해줬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만난 왕희정 교수는 “간 수치가 적합한 수치가 되거나 PET-CT 결과가 괜찮으면 절제수술을 할 수 있겠다”고 했고 이종성 님은 아주대학교병원에서 간 이식이 아닌 절제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수술 이후에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한마디로 삶이 얼마 안 남았다고 믿었던 제게 왕희정 교수님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생명의 은인이 되신 겁니다.” 이종성 님이 환한 미소를 짓는다. 그렇다면 오늘 만남의 주인공인 영상의학과 원제환 교수와 이종성 님은 어떻게 만난 것일까? “지금은 굉장히 좋아지셨지만 지난 2월에 황달이 매우 심한 상태에서 제게 오셨습니다. 종양이 담도를 막아서 담즙이 못 내려 가니까 황달이 심하게 왔던 거지요.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처음 원제환 교수가 시술을 했던 건 경피경간담도배액술이었다. 초음파를 보면서 배액관을 유치하는 시술인데 출혈이나 감염의 위험성 외에도 백(bag)을 달고 다녀야 하는 점 때문에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꽤 큰 시술이었다. “우리 과에서 하는 시술은 전신마취가 아니라 부분마취입니다. 또 꽤 아픈 시술이기도 해요. 이종성 님께는 사전에 시술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드렸으며 서로 충분한 대화를 나누었고 이종성 님께서 통증을 잘 참아주셨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시술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애에 감동하다 이종성 님은 원제환 교수에게 경피경간담도배액술 이후 스텐트를 삽입하면서 백을 제거하는 등 총 3번의 시술을 받고 퇴원하면서 아주대학교병원에 감사의 편지를 전했다. 말로 감사를 전해도 될 것인데 굳이 병원 측에 편지를 보낸 이유를 묻자 이종성 님이 매우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스텐드를 심고, 배액관의 위치 변경 및 제거를 하는 모든 과정에서 너무 친절하게 가족처럼 대해주셨습니다. 제가 묻기도 전에 시술 과정, 통증 정도를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주셨어요.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다녔던 서울의 모 대형병원은 환자를 돈으로 취급하는 듯했는데 그때와는 너무도 다른 기분을 느낀 거지요. 환자 입장에서 의료진은 하느님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잘해주느냐에 따라서 환자의 기분은 좋아질 수도 있고 가라앉을 수도 있지요. 아주대학교병원 내원 5년 차에 좋은 교수님들을 많이 알게 돼서 매우 행복했고 퇴원하는 마당에 감사인사를 꼭 남기고 싶었습니다.” 이종성 님은 덧붙여 “가만히 지켜보니 혈관조영실이 굉장히 힘든 과”라면서 “새벽부터 밤 10시까지 다들 너무 고생을 하시는데 이걸 병원에서 꼭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소통과 교감이 만드는 기적 이종성 님의 이야기를 듣는 원제환 교수의 얼굴에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가 감돈다. 면전에서 칭찬을 듣는 게 쑥스럽기 짝이 없지만 한편으로는 의료진의 수고와 고생을 보듬어 준 그 마음에 대 한 하염없는 고마움 때문이다. 무엇보다 환자와의 소통과 교감은 평소 원제환 교수가 진료와 시술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 원제환 교수는 그 마음이 전해졌다는 것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환자들은 시술을 받기 전에 자기가 어떤 치료를 받을지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동의서를 받을 때 이러저러한 치료방법을 설명해드리고 여러 옵션이 있다는 걸 충분히 이해한 다음에 선택을 해야 하는 거죠. 모든 환자들은 자신이 어떻게 치료를 받고 치료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충분히 알 권리가 있습니다.” 원제환 교수는 “제 가족들도 아파서 병원에 다녀오면 제게 전화를 해서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이 이러저러한 말을 했다고 하는데 전해 들은 저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며 이는 “제 가족도 의사 선 생님한테 들은 설명이 충분하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환자들에게 치료와 시술에 대해 쉽게 설명하고 반복해서 알려주는 원제환 교수의 평소 태도는 결국 환자를 자신의 가족처럼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환자와의 소통과 교감이 오직 의사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종성 님은 시술할 때부터 늘 고맙다고 인사를 하신 환자였습니다. 바쁜 와중에 사실 그 말처럼 큰 힘이 되는 말이 없거든요. 어떤 환자 분은 일단 불신을 하면서 오는 분이 계십니다. 뭔가 시 술을 추가해서 이익을 얻으려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색안경을 끼고 보시는 거죠. 그런 상태에서 시술을 하게 되면 자꾸 오해를 하게 되고 제가 당부하는 것은 물론, 뭔가 추가적으로 치료가 필요하다고 얘기해도 잘 안 따르십니다. 결국 치료가 더 어려워지고 치료의 효과도 떨어지는 상황이 되는 거죠.”  원제환 교수의 표정에 안타까움이 서린다.  믿음에 대한 보답 원제환 교수는 이종성 님에게 받았던 신뢰로 인해 치료와 효과 면에서 더 큰 효과를 거두었다고 확신한다. “환자분에게 받는 믿음을 좋은 결과로 보답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라는 말로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와 교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기도 했다. 그 말에 이종성 님도 화답을 한다. “여러 환자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 나름의 규칙이 있듯이 환자에게도 환자의 도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마음먹었을 때 병의 회복 속도도 빠르고 더 빨리 퇴원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원제환 교수 또한 이종성 님의 손을 꽉 맞잡는다. “저희가 먼저 이종성 님께 격려를 받았습니다. 이종성 님께서는 워낙 의지가 강하고 긍정적인 성품이라 끝까지 잘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어요. 이종성 님이 해주신 감사인사의 위력을 누구보다 크게 느끼고 다정한 말 한 마디에 큰 용기를 얻었으니 감사 인사는 저와 저희 방 식구들이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의사로서 제가 믿고 있는 가치를 매 순간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군인으로 나라를 지키는 데 평생을 바쳤던 이종성 님. 그리고 환자의 건강을 지키는 데 삶의 절반을 쓴 원제환 교수. 의사와 환자로 만났지만 두 사람이 한마음으로 빚어낸 조화는 삶을 더 아름답게, 건강하게 만든 가장 소중한 가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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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꿈꾸는 의료인

    신경외과 황의현 레지던트, 생명을 살리는 사명감을 안고

      고단한 일상도 사명감으로 극복 황의현 레지던트가 의사라는 직업을 택하게 된 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목사 아버지를 둔 덕에 어려서부터 생명을 살리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 그만큼 의사라는 직업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어릴 적 천체물리학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했던 꿈도 있었지만, 아버지를 통해 느끼게 된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마음이 그를 의사의 길로 이끌었다. 지금은 비록 레지던트 3년차로 수련 과정에 어려움도 많지만, 그렇게 택한 길이기에 생명을 살리는 일에 대한 꿈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응급 상황의 대처에 신속성을 요하는 신경외과의 특성상 일과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촌각을 다투는 일인 만큼 긴박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온 신경을 집중해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가 있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잠을 청해도 새벽에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수술도 보통 3~4시간에서 길게는 12시간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만큼 몸과 마음의 피로를 쉽게 풀 수 없는 힘든 일상의 연속이다.  짧은 ‘일탈’, 그 이후 연이은 연장근무와 살인적인 수술 스케줄이 불러온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일탈’을 감행한 적도 있다. 레지던트 1년차 시절, 1주일에 3~4차례의 뇌압 측정 수술과 계속되는 연장근무에 그는 동기와 함께 병원을 박차고 나왔다. 1년차 레지던트로서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근무 여건이 그에게 용기 아닌 용기를 심어준 것이다. 그날 일정을 다 마친 새벽 2시경, 동기와 함께 무작정 병원 밖으로 나와 고깃집으로 향했다. 고기를 실컷 먹고 나서 동기와 함께 30분간 고민 끝에 거제도로 향했다. ‘2일만 쉬고 오겠습니다’라는 쪽지 한 장 달랑 남기고 말이다. 하지만 거제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에서는 그 쪽지를 보고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무단 외출이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지만 “딱 하루만 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숙소에 들어가 저녁까지 잠만 잤다. 쌓였던 피로는 어느 정도 풀렸지만 뒷일에 대한 수습 때문에 마음은 천근만근이었다. 다음날 10시 짧은 외출을 마치고 병원에 복귀했다. 크게 혼날 각오를 하고 담당 교수님을 찾아갔는데, 교수님께서는 오히려 고깃집 상품권을 주시면서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정상 출근해라”라며 독려해주셨다. 미안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몰랐지만, 오히려 그 날의 교수님의 모습에서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 게 되었다.  환자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할 터 환자를 돌보는 일에 심혈을 기울일 때 환자의 병세는 호전되게 마련이다.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역시 환자를 돌보는 일에 대한 남다른 사명감을 갖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알버트 슈바이처와 이종욱 박사를 롤모델로 삼았고, 세계보건기구(WHO)에 들어가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선진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정책 만드는 일에 동참하는 것을 꿈꾸기도 했다. 후진국에 사는 사람이라고 해서 선진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불평등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그 때의 꿈을 잠시 접어두었지만, 언젠가는 후진국에 선진 의료 기술을 전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신경외과 레지던트로서 환자를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버지처럼, 환자를 자식처럼 생각하고 돌보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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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을 수 없는 환자

    공감이 빚어낸 더 큰 감동 - 소아외과병동 이경숙 주임간호사

      환자를 대하는 일은 비단 그들의 병을 치료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질병 치료 이전에 그 질병을 제대로 파악하고 환자의 아픔에 공감해야 한다. 이경숙 주임간호사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한다. 15년차,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간호사라는 직업을 통해 수많은 환자를 대하며 느낀간호사의 사명을 소통과 공감으로 꼽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소아 환우에 대한 각별한 애정어린 시절 할머니 문병 갔을 때 처음 간호사를 봤는데, 할머니를 치료하는 간호사의 모습에서 ‘아우라’가 비췄다고. 할머니를 돌보는 정성과 태도에서 막연히 느낀 동경이라는 그 때의 감정이 지금의 이 간호사를 만든 우연한 계기였다. 그렇게 시작된 간호사란 직업과의 인연, 지금은 간호사로써 느끼는 보람에 감사할 일이 더 많이 생기고 있다. “많이 힘드셨죠? 그 한마디 말에도 그렇게 고마워하실 수가 없어요. 환자들에게 주사 놓고 약 주는 일 외에는 특별히 해주는 것이 없는데도 말이죠. 그럴 때 간호사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간호사의 소아 환우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소아 병동에서 근무한 기간이 긴 점도 이유라면 이유일 수 있지만, 환아나 보호자와의 오랜 소통을 통해 형성된 특별한 감정이 그녀가 소아 환우에 남다른 애정을 갖는 가장 큰 이유이다.희귀질환에 걸려 태어나자마자 병원에 다니던 아이, 결국에는 합병증으로 어떤 약도 처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은 세상을 떠난 환우를 생각하면 당시의 안타까움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는 이 간호사. “그 아이는 오랜 기간 병원에 입원하면서 중환자실에도 여러 번 입원했습니다. 부모의 입장을 생각하면 그만큼 가슴 아픈 일은 세상에 없을 것 같은데, 잘 견뎌내 주셨습니다. 심지어 우리 간호사들과 이야기 할 때는 항상 밝은 모습을 잃지 않으셨고요. 밝은 모습을 잃지 않는 모습에 더 큰 사명감이 생겼죠.” 소아암 환우를 위한 더 큰 사명그런 안타까운 일을 겪은 그녀지만 간호사 일에 대한 좌절이나 회의보다는 보람을 더 느낀다. 중환자를 다루는 일은 분명 힘들고 어렵지만 그 환자들은 누구보다 여리다. 그래서 그런 환자들을 보면 부담감보다는 책임감이 앞선다. 겪어보지 못한 질병에 고통 받는 만큼 작은 것 하나도 더 신경 써서 알려주고 보살펴줘야 한다. 보호자가 알아야 할 세세한 정보 하나까지 알려주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치료하는 과정을 통해 보람도 느낀다. 그런 사명감과 보람 때문에 그녀는 지금보다 더 많은 역량을 소아암 환우에 쏟고 싶어한다. 때로는 치료가 목적이 아닌 통증 완화를 위해 입원하는 중환자를 돌보는 일도 한다. 더 이상 손 쓸 수 없어 치료를 종료하고 생명 연장을 위해 입원하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도 여느 아이들 못지않게 잘 놀고 잘 웃는다. 밝은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그런 아이를 돌보는 부모의 꿋꿋한 모습, 결과는 좋지 않지만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소중한 생명을 다루는 간호사로서의 희로애락을 느낀다.“저도 한 아이의 엄마로서 아픈 아이를 둔 부모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엄마의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고 있어요.”환아는 물론 환아의 보호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며 환자의 마음을 보듬는 이경숙 간호사. 그녀의 사랑이 빚어낸 감동은 오늘도 환자들의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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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꿈꾸는 의료인

    믿음 주는 편안함과 소신으로 최고의 치료를, 비뇨기과 심강희 레지던트

       슬픔이나 언짢음, 즐거움과 같은 마음속의 생각은 대개 표정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의 인상은 마음에 따라 좌우된다고 한다. 바쁘고 힘든 레지던트 생활 속에서도 언제나 웃는 얼굴, 보는 사람에게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편안함과 듬직함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의 마음은 어떤 모습일까? 사람 좋기로 소문난 비뇨기과 심강희 레지던트. 그를 만나 그가 꿈꾸는 의사의 길을 들어보았다. 자의 반, 타의 반 의사가 되다“의사요? 어머니가 해보라고 해서 하게 됐어요. 세상 물정 모르는 고등학생이 뭘 알았겠어요. 그런데 하고 보니 할 만하더라고요.” 웬만하면 포장을 할 법도 한데, 스스럼없이 툭 던지는 한마디에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의사는 전문적 지식으로 무장해(?) 왠지 어려운 사람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일시에 무너진다. 꾸밈도 없고,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소탈하다.바쁜 생활 속에서 잠시 짬을 내어 마주한 비뇨기과 심강희 레지던트. 말로는 직업에 대한 고민 없이 우연히 의사의 길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그는 듬직한 책임감이 느껴지는 사람이다.“응급실이든 입원환자든 모두 내 책임 하에 있을 때가 있어요. 의사라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더라도 그런 상황을 책임있게 버텨내야만 해요.”직업에 대한 큰 고민 없이 우연처럼 의사의 길을 선택했다고는 하지만, 하면 할수록 그에게 의사는 책임감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 똑똑함보다 인성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 일이다. 매일매일의 즐거운 최선심강희 레지던트의 전공과는 비뇨기과다. 어릴 때는 세상물정을 몰라 자의 반 타의 반 의대를 지망했지만, 의대 공부를 하고, 인턴 과정을 겪으며 그는 망설임 없이 비뇨기과를 선택했다.“의사라는 직업이 전문적인 영역이긴 하지만, 좀 더 특별하고 전문적인 무언가를 하고 싶었어요. 기왕이면 수술하는 의사이고 싶었고요. 인턴과정에서 비뇨기과를 겪어보니 교수님들이나 선배, 동료들 관계가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여서 참 좋았어요. 그런 여러 가지를 따져보고 결정하게 되었죠. 결과는 만족이고요.” 비뇨기과는 특성상 어르신 환자가 많은데, 어딘가 이상을 느껴 찾아오신 어르신들에게 그가 가진 분위기는 안정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환자분들이 저를 보고 특별히 마음의 안정을 느낀다거나 그러시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암 수술 받고 치료받으러 오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얼굴부터 이름까지 외우게 되고, 더 신경이 쓰여요. 암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신 분들이라 자세하게 설명하고 안심시켜 드리려고 노력하죠.”그는 의사로서 해야 할 당연한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하지만 좋은 사람에게서 나는 좋은 향기는 주변에 퍼지기 마련이다.  최선을 위한 두려움 없는 선택믿을 수 있고,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의사를 만난다는 것은 치료 과정에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심강희 레지던트는 의사에게는 소신과 강단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부터 의사를 꿈꾸었거나, 존경하는 의사 누구누구를 바라보며 성장하지는 않았기 때문일까. 그는 어떤 의사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이상적인 모습보다는 현실적으로 환자를 치료하며 맞닥뜨리는 모습을 먼저 생각한다.“저는 기본적으로 치료를 위해서는 의사가 주도하고 환자가 따라오는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의사는 분명히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이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줄 필요는 있지만, 의사 나름의 소신을 갖고 치료를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거죠.”치료방법의 선택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의사의 몫이어야 한다면, 더 책임 있는 치료를 위해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경험하고, 더 완벽해지기 위해 잘 버텨내야 할 것이다.의사라는 직업은 그에게는 현실이고, 현실 속에는 아직 헤쳐 나가야 할 숙제들이 남아있다. 그가 몸담고 있는 비뇨기과에 더 많은 사람이 지원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선배로서 그가 가진 고민이자 숙제 중 하나다.“비뇨기과 전공을 생각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라고 조언해주고 싶어요. 삶에 선택을 해야 할 많은 상황이 있지만, 자신의 적성에 잘 맞는다면, 하고 싶다면 주저 없이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어머니의 바람으로 의사의 길을 택했고, 자신의 소신으로 전공 과를 선택해 걸어온 길. 앞으로 길은 또 어디로 향할지 모르지만, 그의 바람은 명확하다. 지금까지 배운 전문적인 지식과 스킬을 제대로 발휘하는 정말 좋은 의사로 일하고 싶다는 것. 한번 정한 삶의 길을 최선을 다해 가고 있는 그에게서 산과 같은 듬직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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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꿈꾸는 의료인

    실력과 사랑으로 치유하는 의사를 꿈꾸다

    실력과 사랑으로치유하는 의사를 꿈꾸다 - 아주대학교병원 차보환 인턴장 드라마는 허구지만 그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게 만드는 힘이 있다. 사람들에게 대학병원의 ‘인턴’이란 ‘선배들에게 혼나고 또 혼나다가 종내에는 도망칠 궁리를 하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라는 편견을 갖게 한 것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몇 편의 의학 드라마 덕분일 터이다. 그래서일까? 차보환 인턴장은 굉장히 독특해 보이는 인물이었다. 병동을 오가는 씩씩한 발걸음, 생기 넘치는 에너지, 결이 단정한 목소리까지. 인턴을 바라보는 세간의 편견을 날려버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그를 만나보았다.   인턴의 책임, 인턴장의 길“학교에서 공부할 때보다 인턴 생활이 훨씬 좋고 재밌습니다.”차보환 인턴장이 피곤한 기색 없이 활짝 웃는다. 이유를 묻자 딱 부러진 대답이 돌아온다. 책과 이론으로 공부를 했던 시절보다 직접 환자를 만나고 작게나마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기쁘고 보람차다는 답변이었다. 의사가 되고 싶었던 소년의 꿈은 그렇게 이곳 아주대학교병원에서 탱글탱글 결실을 맺고 있었다.“학창시절 내내 의대를 가고 싶었지만 대학교 때는 의공학을 전공했어요. 의사는 일대일로 환자를 진료하지만 의공학을 공부해서 지구 반대편 사람까지 치료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실험실과 논문작업이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의사가 되어 의공학을 같이 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바꾸었고 결국 의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환자상태에 따라 하루에 한 시간도 못잘 때가 허다하고 3~4시간을 자면 많이 잤다고 표현하는 고생스런 인턴 생활이지만 차보환 인턴장은 ‘인턴’의 역할에 대한 뚜렷한 책임감과 사명의식으로 이 모든 걸 씩씩하게 넘기고 있는 중이다.“교수님들과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환자에게 처방을 내릴 때 부드럽게 넘어가는 역할을 하는 게 저희 인턴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CT, MRI를 찍어야 하면 바로 찍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하고, 아침마다 회진명단 만들어서 전날 찍은 사진을 정리해 교수님들과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회진 전에 볼 수 있게 해드리는 거죠.”다행히 꼼꼼한 성격 덕을 크게 보고 있다며 차보환 인턴장이 다시금 미소를 짓는다.인턴이자 인턴장으로서 그의 하루는 다른 사람보다 1.2배쯤 더 바쁘다. 바쁜 인턴생활 와중에도 인턴장으로서 교육수련부의 공지를 동기들에게 전달하고 뭔가를 제출해야 하면 의견을 취합해 전하며 매주 간식을 주문하는 일까지 도맡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이익도 없는, 순수하게 동기를 위한 봉사정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차보환 인턴장은 기꺼이, 즐겁게 해내고 있는 중이다.“스트레스요? 인턴방에서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풀고 있습니다. 힘든 일, 잘 안 풀리는 일에 대해서 각자 사례로 조언을 주고받고 교수님이나 레지던트 선생님 흉도 보고(웃음) 라면도 먹으면서 동료애를 나누고 있어요.”  환자들의 마음까지 보듬는 의사차보환 인턴장은 자신의 성향을 ‘외과적’이라고 말한다. 가슴이 아프다, 라고 환자가 말하면 심장, 폐, 식도 등 어디가 아픈지를 분별해야하고 각 알고리즘 플로우에 의해 어떤 약을 쓰냐 판단해야 하는 내과에 비해 ‘수술을 하면 바로 결과가 나오는’ 외과가 좋다는 명쾌한 이유에서였다.“찢어진 부위를 봉합하면 회복이 되잖아요. 전 그런 게 재밌습니다. 내과는 평생을 가며 관리를 해야 하는 거라면 외과는 그냥 낫게 해주는 거니까 그 명확한 결과를 보는 게 좋아요. 성형외과를 지망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실력을 쌓는 것만큼이나 환자들과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그의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이곳에 와서 첫 텀을 소화기내과에서 돌았을 때 일이었어요. 그때 간이 안 좋아서 입원을 하셨던 젊은 환자분이 계셨는데 제가 복수를 빼는 동안 시간이 걸리니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편하게 농담도 하는 사이가 됐죠. 그런데 피가 연이어 터지면서 참 허망하게 가버리셨습니다. 살려달라고,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애원하셨던 젊은 환자분이 급작스럽게 사망한 일은 제게 죽음의 무게를 최초로 느끼게 한 시간이었어요. 의사로서의 사명감, 깨달음, 예측불허의 상황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됐죠.”잠시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어린 시절 막연했던 의사라는 직업의 실체가 잡히고 의사로서 어떤 길을 걸을지 생각하게 했던 그 시간들이 고스란히 역류해 오는 표정이다.“환자분들은 우리 말 한마디, 한마디를 크게 생각하십니다. 저희가 가볍게 흘린 말들도 중요하게, 소중하게 생각하시죠. 그런 환자분들을 제 가족이다 생각하고 따뜻하게 대해드리고 싶어요. 환자분들의 정서적인 면까지 생각하고 챙길 수 있는 그런 의사가 되고자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실력은 물론 기본으로 갖춰야겠죠.”냉정과 열정, 이성과 감성, 두 마리 토끼를 끌어안고 의사로서의 길을 정진하겠다는 그의 다짐. 그를 주치의로 둘 미래의 환자들이 부러워지는 순간, 그리고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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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력과 신뢰의 상호작용이 빚어낸 새 삶 - 이식혈관외과 오창권 교수&김미애 님

    실력과 신뢰의상호작용이 빚어낸 새 삶 - 이식혈관외과 오창권 교수&김미애 님 아주대학교병원은 지난 2013년 신장이식 500례를 달성한 데 이어 최근 신장이식 700례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식 후 5년 생존율과 10년 생존율이 모두 90%가 넘을 정도로 우수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아주대학교병원에서 700례 돌파는 신장이식 명문가로서의 위상을 보여주는 한 단면. 오늘 만난 김미애 님 역시 신장이식에 관해 탁월한 전문성과 이력을 보여온 아주대학교병원의 특혜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신장 교환이식이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만나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 낸 이식혈관외과 오창권 교수와 김미애 님의 즐거웠던 만남을 살짝 엿보았다.   신장 교환이식을 준비하다김미애 님이 처음 몸의 이상을 느낀 건 치과에서였다. 발치를 했는데 도무지 지혈이 되질 않아 본인은 물론 치과의까지 크게 당황을 했던 것이다. 이런 저런 방법을 써 봐도 피가 멈추지 않자 치과에서는 김미애 님에게 종합검진을 받아보라고 권유를 했고 병원에 간 김미애 님은 자신이 고혈압이라는 것, 그리고 신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때가 2014년 12월이었다.지역병원과 아주대학교병원을 오가던 그녀가 오창권 교수를 처음 만났을 당시 오 교수는 환자의 상태를 ‘위독한 상황’이라고 표현했다.“신장의 기능을 100이라고 보면 생활에 필요한 것이 약 20~30입니다. 이 때 검사 상이든 불편한 게 생기든 그게 몸 밖으로 표현이 되면 그때는 이미 신장 70~80의 기능은 없어지고 생활에 필요한 것도 남지 않은 상황이라고 봐야 해요.”처음에는 투석을 염두에 두고 대비를 해달라고 주문했으나 오창권 교수는 환자의 나이가 젊은 것, 신장 기능의 회복이 어려운 것을 감안, 이식에도 큰 가능성을 두었다. “김미애 님의 경우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에게서 신장을 이식받기 위해 혈액형 부적합 이식 시행을 위한 준비를 하다가 교환이식 적합 대상자를 찾았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장은경 코디네이터의 역할이 매우 컸지요.”통상 교환이식은 준비시간이 더 소요되는 수술이다. 이식에 이르기까지 적합성을 위한 수많은 검사는 물론 대개 같은 날 수술을 하는 게 보편적이기 때문에 양쪽 집안의 4명이 모두 수술 가능한 일정 조율까지 필요하기 때문이다.오창권 교수의 경우 특히 기증자의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수술 준비 과정은 좀 더 엄격하고 치밀하게 진행됐다.“상대측과 잘 맞는지를 보면서 기증자가 안전한지를 검토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늘 그 쪽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가족을 위해 신장을 기증하는 분이 이식 과정에서 신체적인 유해가 되어서는 안 되니까 늘 기증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사회에서 기대하는 것도 그런 것이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데 자신이 희생되는 부분이 있어서는 안 되잖아요. 그럼 훗날 누가 기증을 하려고 들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안전에 위해가 될 만한 것은 준비 과정에서 철저히 대비합니다.” 오창권 교수의 말에서 의사로서의 본분은 물론 사회적 책무까지 다하려는 올곧은 의지가 풍겨 나온다.  환자를 위한 최적의 면역억제 조합 연구2016년 3월 31일에 시행된 수술은 순조로웠다. 인간의 신체구조는 모두 다르지만 각자의 상황에 따라 맞춤형으로 안전하게 수술이 시행됐기 때문이다.“모든 과정이 순탄했어요. 기증자의 신장이 김미애 씨의 몸에 들어와 적응을 잘 했고 걱정할 일은 특별히 생기지 않았습니다. 수술 이후에는 정기적으로 와서 약을 받고 검진을 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특히 수술 직후인 초기에는 좀 자주 와야 합니다. 거부반응이 생길 수 있거든요. 약을 지시에 따라 정확하게 복용하는 게 필수입니다.”신장이식을 받은 환자들이 쓰는 면역억제제에 큰 관심을 갖고 최적의 면역억제 조합을 찾는 데 심혈을 기울여온 의사로 명성이 높은 오창권 교수는 수술 이후의 관리가 더 중요함을 힘주어 설명했다. 더불어 김미애 님은 주치의의 지시를 누구보다 성실히 잘 따라준 환자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한마디로 모범생이었지요.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하면 말 그대로 충실히 따라주는 환자였어요. 우리 몸에는 타고난 성질이 있는데 다른 게 들어오면 쫓아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생기지 않도록 평생 동안 약을 써서 눌러놔야 해요. 약을 중단하거나 거르면 바로 신장이 망가지는 이유가 그겁니다. 관리는 필요요소인데 저는 권해드리고 안내해드리는 것까지는 할 수 있어도 대신 해드릴 수는 없거든요. 그러니 본인의 노력이 아주 필수적이죠. 본인이 잘 따라오면 본인도 좋은 거지만 제 입장에서도 더 없이 좋은 일입니다.”오 교수의 칭찬에 김미애 님이 쑥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사실 의사와 환자 사이에는 늘 무어라 단정 짓기 힘든 묘한 분위기가 감돌기 마련이다. 자신의 생명 혹은 운명을 제3자에게 맡기는 환자나, 타인의 건강 혹은 삶을 책임지는 의사 사이에는 의무나 임무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창권 교수와 김미애 님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은 꽤나 흥미로웠다. 수술이 성공리에 잘 끝나서였기 때문일까.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가 아니라 친척 어르신이라도 뵈러온 듯 김미애 님이 풍기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이 더없이 인상적이었다.“교수님은 처음에 뵀을 때부터 저를 편하게 해주셨어요. 늘 확신 있게 딱 이거다, 라고 짚어서 말씀을 해주시니까 신뢰가 갈 수밖에 없었고 제가 ‘잘 될까요?’ 라고 물으면 ‘못 고칠 것 같느냐?’고 반문을 하셨죠. 그럼 저는 그냥 웃으면서 ‘믿어요’ 라고 말씀을 드렸어요.”수술 전에 궁금한 것들은 다 물어보셨느냐고 묻자 김미애 님이 다시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궁금한 게 별로 없었어요. 제가 미처 궁금해 하기도 전에 꼼꼼하게 다 말씀해주셨거든요.”김미애 님의 칭찬에 사뭇 깐깐해 보이는 오창권 교수가 소년처럼 어쩔 줄 몰라 한다. 자신에 대한 칭찬을 바로 코앞에서 듣기가 면구스럽다는 것이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 오 교수의 수줍어하는(?) 낯선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 여세를 몰아 환자를 대하는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지를 질문하자 오 교수가 고개를 갸웃한다.“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어떤 의도를 갖고 환자를 대하는 게 아니어서… 그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거죠.”철학이니 뭐니 하는 거창한 명분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앞에 앉은 환자에게만 집중한다는 그의 말에서 그가 왜 명의로 불리는지 숨겨진 비밀을 엿본 기분이다.  장기기증에 더 많은 관심을현재 김미애 님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자신을 도와준 오 교수의 성심에 열심히 답하는 중이다. 어머니 덕분에 타인의 신장을 받았으니 건강하게 오래 사용하기 위해 꾸준히 약을 챙겨먹고 식이요법에도 굉장히 신경을 쓰며 매일 매일을 열심히 살고 있는 것. 오 교수가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 “5년, 10년이지나도 이 마음이 퇴색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를 한다.“궁극적으로 이식의 목적은 환자의 활동성을 높이기 위해서 입니다. 투석을 하면서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그 번거로움을 없애주는 거죠. 약을 먹으면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활동을 하면 사회재활이라는 측면에서 젊은 환자의 삶의 질이 달라지게 되니까요.”더불어 오 교수는 장기기증에 관한 긴 부탁의 말을 덧붙였다. “연예인들의 장기기증이나 사회 저명인사들의 장기기증 등을 통해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의사 입장에서는 우리 사회가 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갖기를 바랍니다. 사망자는 물론 뇌사 장기기증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장기이식의 혜택을 받기를 바라요. 누군가의 삶을 구하고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란 결국은 서로를 도우면서 살아가는 과정이니까요. 더불어 신장 기능이 원활하지 않은 분들도 장기이식의 가능성이 주어진다면 열심히 노력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서도 잘 알아둬야 하고 장기이식 대기등록을 통해 희망을 버리지 말아주십시오.”연거푸 감사인사를 잊지 않는 김미애 님, 끝까지 관리를 잘해야 한다며 정기적으로 얼굴을 보자고 독려를 잊지 않는 오창권 교수. 둘의 만남은 ‘서로를 향한 무한한 신뢰가 빚어낸 기적’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던 한없이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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